![]() 최윤진 감독 ‘소주전쟁’. ㈜쇼박스 제공 |
![]() 최윤진 감독 ‘소주전쟁’ 포스터. ㈜쇼박스 제공 |
우리에게는 전국을 평정했던 ‘참이슬’을 만들어낸 진로소주 회사가 1997년 외국자본골드만삭스에 의해 어이없는 위기를 겪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영화 ‘소주전쟁’은 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세기 말인 1990년대를 되돌아보자. 당시 우리의 가장들은 회사에 충성하는 회사원들로 가득했다. 기혼여성의 사회진출이 드물었던 시절이라서였을까. 필자가 대학에 몸담았을 적만 해도 나이 적은 후배교수들조차 “남자란 아침 밥숟가락을 놓자마자 밖으로 나가야 해요”를 기정 원칙인 양 얘기를 했다. 가정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나 애정을 일터에 쏟는 가장들이 많았다는 얘기다. 딱 그런 인물이 국보소주 재무이사 표종록(배우 유해진)이다.
대한민국이 IMF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전국을 평정하리만큼 소주계의 강자인 국보소주도 예외없이 자금난에 휘청거린다. 이 타임을 놓치지 않고 글로벌 투자사(기업 사냥꾼) 솔퀸의 명석한 직원 최인범(배우 이제훈)이 서울에 파견된다. 그는 목적을 감춘 채 컨설팅을 가장하여 국보에 접근, 최종부도를 이끈 주역이다. 회사가 곧 인생이라 믿던 종록은 무능력한 회사 대표 석진우(배우 손현주)에게 ‘멍청한 X…’ 욕을 얻어먹어 가며, 인범을 글로벌 금융전문가라 철썩같이 믿어가며 고군분투하다 종래는 뒤통수를 크게 얻어맞는다.
그렇다면 인범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있을까. 그는 서울대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 미국 자본주의의 물이 든 인물이다. 그에게 회사란 월급의 의미, 즉 일한 만큼 돈을 받는 그저 객체에 불과하다. 인범과 종록은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한다. 그런 만큼 나중에는 서로의 인생관에 조금씩 호환가치를 나눠 갖는다. 이 호환가치는 우리의 국민소주 회사가 비싼 수업료를 치르고 얻은 깨달음일지도…. 부제가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도덕적 위험)’였다가 ‘빅 딜(Big Deal: 큰 거래)’로 바꾸어졌다. 필자로서는 원 부제가 더 적절해 보인다. 시대가 사람의 가치관을 바꿔놓는다 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변치 않아야 할 도덕적 가치관은 중요하니까.
영화를 관람하고 난 후, 생각할 거리가 많아졌다는 후일담이 좀 있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놀라웠다. 필자로서는 영화가 갖는 소재의 비중에 비해 드라마틱하게 풀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좀 남았지만, 이 정도의 후일담을 남기는 거라면 주제나 소재의 성공이 아닌가 싶다. 영화 개봉에 붙는 안타까운 뒷얘기도 있다. 영화 제작 도중 원작자가 나타남에 따라 제작사에서는 감독을 공동저자로 위치를 재조정하고 영화나 포스터에 감독 크레딧을 빼놓은 점이다. 앞으로 저작권 분쟁 사례로 남을 것이므로, 영화에서처럼 불미스럽지 않도록 바람직한 방향의 해결을 고대해본다.
언젠가 성경에 ‘소주’가 기재돼 있다는 얘기로 들썩였던 저녁식사 자리가 있었다. ‘포도주’는 마땅히 있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는 좌중의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종래에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목사님께 전화를 드려 알아냈다. ‘내 입에선 포도주와 소주가 나온다’(미가2:11)를 위시하여 5군데 정도 등장하지만, 소주에 대한 긍정적 의미는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성경을 번역하는 데 있어 그 사회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의미에서 ‘소주’ 단어가 등장했을 것으로 유추된다. 같은 구절을 가톨릭 성서에 ‘독주’로 번역하는 것을 보면. 영화에 등장하는 ‘술 소비량 1위국’이 우리나라라는 통계는 아무래도 놀랍다. 달고 쓴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주는 국민소주 때문이라지만, 1위 만큼은 다른 민족에게 내어주기를 바라본다.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