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마을의 담장 벽화-마을의 당산제와 줄다리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돈삼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마을 앞을 지키고 서 있다. 흡사 성곽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가까이 가서 보니 나무 네 그루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세월의 더께가 묻어나는, 크고 굵은 고목에서부터 비교적 젊은 나무까지 모였다. 오래된 나무이지만 가지가 많이 뻗고, 이파리도 우거졌다. 도란도란 화기애애한 가족 같다. 나무숲에는 마루 넓은 정자가 들어앉아 있다. 굳이 묻지 않더라도 마을사람들의 쉼터임을 알 수 있다. 정자 마루에 걸터앉았다. 나무 그늘이 시원하다. 바람도 솔솔 얼굴에 와 닿는다. 마음 같아선, 두 다리 쭈-욱 뻗고 드러눕고 싶다. 금세 낮잠이 몰려올 것 같다. "시원하요? 어디서 왔소? 여기가 우리마을 쉼터요. 가장 굵은, 이 나무는 수령이 500년은 넘었을 것이오. 해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나무요...
편집에디터2022.05.26 16:42김응문 일가 현창비를 세우는 이유는... 김응문 일가 현창비 옆에 세워져 있다. 이돈삼 김응문 장군 일가 현창비가 세워졌다. 김응문은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무안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주관한 제막식은 위령제, 진군식, 현창비 제막식, 진혼무, 마당극 순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혁명 기념일(5월 11일․황토현 전승일)을 앞둔 지난 5월 4일 무안 차뫼마을에서다. 김응문(1849∼1894)은 '김창구'로도 불렸다. 몽탄 일대의 접주로 활동하며, 전투 자금을 모으는 데 앞장섰다. 자신의 집에 대장간을 설치하고, 갖가지 무기도 만들었다. 마을주민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김응문은 농민군을 모아 백산전투, 황룡강전투 등에 참가했다. 전봉준이 이끈 동학농민군 주력부대가 공주 우금치에서 패한 뒤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해 11월 같은 무안 출신의 배...
편집에디터2022.05.12 16:32이순신의 표준 영정. 충민사에 위패와 함께 모셔져 있다. 이돈삼 여수는 이순신과 엮인다. 호남이 다 그렇지만, 여수는 더욱 각별하다. 임진왜란 때 여수는 삼도수군통제사가 머물던 통제영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여수에 부임해 온 건 1591년. 통제영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부터 1601년까지 10년 가까이 설치됐다. 하여, 여수는 이순신이 전라도 백성들과 함께 왜란을 극복한 현장이 됐다. 거북선을 처음 출정시킨 곳도 여수였다. 여수가 이순신이고, 이순신이 여수였다. 때마침 이순신 탄신(4월 28일)을 맞았다. 발걸음이 여수로 향하는 이유다. 연초록으로 싱그럽던 산천이 초록으로 짙어지고 있다. 계절도 초여름으로 향한다. 여수에는 이순신 관련 유적이 많다. 의미도 다 깊다. 널리 알려진 진남관을 비롯 선소, 고소대가 먼저 꼽힌다. 진남관은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진해루가 ...
편집에디터2022.04.28 17:10연홍도와 선착장 전경. 파랑과 빨강 계열의 지붕까지도 예술작품으로 변신했다. 이돈삼 연홍도(連洪島)는 미술의 섬이고, 예술의 섬이다. 예술의 섬으로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일본의 나오시마를 떠올리게 한다. 고흥 거금도와 완도 금당도 사이에 있다.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 신전리에 속한다. 바닷가에 가면, 안 쓰는 물건이나 폐품이 버려져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일쑤다. 연홍도는 버려지거나 쓰지 않는 어구를 활용해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을이 온통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집의 파랑과 빨강 지붕까지도 미술작품으로 만들어 놓았다. 갖가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섬길.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함께 예술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돈삼 갖가지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 섬길.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함께 예술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 이돈삼 연홍도는 섬 속의 섬이다. 고흥의 끝자락,...
편집에디터2022.04.14 14:58벽파마을 전경. 벽파방조제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이돈삼 진도대교를 넘어 해안도로를 따라 벽파마을로 간다. 지난 주말이었다. 울돌목에서의 명량대첩을 앞둔 이순신이 벽파진에 머물던 그때처럼 비가 뿌리고, 된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몸을 가누기 힘들 지경이다. 이순신은 1597년 8월 29일, 양력으로 10월 9일 벽파진에 통제영을 설치했다. 이순신은 울돌목으로 수군진을 옮기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며 명량에서의 전투를 그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벽파마을 전경. 벽파방조제에서 바라 본 풍경이다. 이돈삼 이순신은 명량대첩을 하루 앞둔 9월 15일(양력 10월 25일) 조수를 타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긴다. 울돌목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수의 군사와 배로 많은 수의 일본군과 일본의 전선에 맞서려면 울돌목의 좁은 해로가 제격이라는 판단...
편집에디터2022.03.24 14:43광양 추산마을 전경. 남도의 명산 백운산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이돈삼 완연한 봄날이다. 새봄에도 가볍게 다니려면 건강을 챙겨야 한다. 고로쇠 약수가 떠오른다. 효능은 이미 입증됐다. 자당과 나트륨, 마그네슘, 칼슘, 철분 등 무기물을 많이 머금고 있다. 비타민 B1, B2, C도 많이 들어 있다. 뼈에 이롭다. 위장병에도 특효가 있다. 골리수(骨利水)로 불린다. 고로쇠 약수 한 사발을 그리며 광양 추산마을로 간다. 백운산 자락은 고로쇠 약수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마을 담장부터 다르다. 도선국사와 고로쇠 약수에 얽힌 이야기를 벽화로 그려 놓았다. 좌선을 오래 한 도선이 다리를 펼 수 없었는데, 수액을 마시고 기운를 되찾았다는 이야기다. 다섯 토막의 삽화로 고로쇠 약수의 효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을에 사는 동양화가 김정국의 솜씨다. 이 약수로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도 ...
편집에디터2022.03.10 16:45만호동 전경. 목포진 역사공원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이돈삼 '보통학교 4학년 때 우리 가족은 드디어 목포로 이사했다. 그 전에 나는 틈만 나면 뭍으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혼자 일본에 가서 공부하겠다며 부모님을 조르기도 했다. 신문 배달을 해서라도 독학을 하겠다고 했다. …(중략)… 자식들을 뭍에서 공부시키겠다는 어머니의 의욕이 합쳐져 생활 터전을 옮기기로 결정한 것이다. 뭍으로, 큰 곳으로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정말 가슴 설레는 일이었다. 청운의 뜻을 품고 배에 올랐다. 1936년 가을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년 시절에 대한 회고다. 그의 자서전에 나오는 내용이다. 소년 김대중의 눈에 비친 목포는 말 그대로 별천지였다. 하의도 생활을 정리하고 함께 나온 어머니 장수금은 목포항이 내려다보이는 비탈진 언덕에서 영신여관을 운영했다. 그 '별천지'가 지금의 목포시 만호동이...
편집에디터2022.02.24 14:36돌산공원에서 내려다 본 돌산대교와 당머리마을 야경. 황홀한 조명에 마을이 빛나고 있다. 이돈삼 '여수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너와 함께 걷고 싶다/ 이 바다를 너와 함께 걷고 싶어/ 여수밤바다♬….' 마을 건너 돌산도에서 본 돌산대교와 당머리마을 풍경. 마을이 돌산대교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이돈삼 버스커버스커가 감미로운 목소리로 들려주는 '여수밤바다'를 흥얼거리며 여수로 간다. 그렇다고 오늘 목적지가 '여수밤바다'는 아니다. 화려한 밤바다의 조명 속에 들어앉은 여수 당머리다. 당머리는 코로나 시대 '비대면 여행지'로 제격이다. 전라남도 여수시 대교동(大橋洞)에 속한다. 대교동은 오래 전 남산동과 봉산동이 합해져 만들어졌다. 남산동은 예암산의 다른 이름인 '남산'의 아래에 자리...
편집에디터2022.02.10 16:49마을의 담장 벽화. 유팽로의 창의를 주제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돈삼 '합강(合江)'이란 지명이 여기저기에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를 가리지 않는다. 두 갈래 이상의 물길이 하나로 합쳐지는 지형을 가리킨다. 그 가운데 한 곳이 곡성 합강이다. 마을을 옥출산이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옥과천과 순창에서 흘러 내려온 섬진강물이 만나는 지점이다. 배산임수의 지형 그대로다. 마을 앞들에 있는 둥글고 작은 독메산의 이름을 따서 '도리산(道裡山)'으로도 불린다. 옥과군 수대곡면, 창평군 수면을 거쳐 지금은 '골짝나라' 곡성군의 옥과면에 소속됐다. 예부터 산과 물이 만나면 음과 양이 모이고, 음양이 어우러지면 생기가 일어난다고 했다. 그 자리가 명당이라는 얘기다. 곡성 합강은 의미가 더 깊다. 군계(郡界)이면서 도계(道界)에 해당된다. 전라남도 곡성군 옥과면과 전라북도 ...
편집에디터2022.01.27 15:10담양천변 뚝방마을 풍경. 관방제와 관방제림을 따라 마을이 형성됐다. 이돈삼 가분수다. 얼굴이 몸의 절반을 차지한다. 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가 선명하다. 얼굴 가득 엷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 모습이 정겹다. 돌로 다듬은 작은 석인(石人)이다. 그것도 2기가 가까이서 마주 보고 있다. 오른쪽이 할아버지다. 맞은편의 할머니보다 더 크다. 머리에 원유관(遠遺冠)을 쓰고 있다. 옛날에 지체 높은 사람이 쓰던 모자다. 얼굴에선 두꺼운 입술과 코가 도드라졌다. 눈은 움푹 패어있다. 턱 밑에 수염이 역삼각으로 길게 내려와 있다. 얼굴에서 인자함이 묻어난다. 왼편은 할머니다. 머리에 탕건을 썼다. 상대적으로 눈과 코, 입 등이 많이 닳았다. 얼굴 표정에는 인정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담양읍에 있는 석인상(石人像) 얘기다. 석인상은 담양군 담양읍 천변리 뚝방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다. 1838년...
편집에디터2022.01.13 16:20겨울날 월하마을 풍경. 귀촌인과 외지인들이 늘면서 전원마을로 거듭나고 있다. 이돈삼 코로나19와 함께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날마다 부산했던 마음도 조금은 차분해진다. '남도답사1번지' 강진으로 간다. 월출산 자락에 자리한 월하마을이다. 백운동정원과 강진차밭으로 조금은 알려진 마을이다. 마을과 백운동정원은 국립공원 월출산의 옥판봉 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속한다. 백운동정원은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정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꼽힌다. 문화재청에 의해 명승으로 지정됐다.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높여준다. 이돈삼 눈 내린 날의 백운동정원. 대숲까지 품고 있어 격을 더...
편집에디터2021.12.30 16:20바닷가에 돌을 쌓아서 만든 독살. 밀물 때 들어온 고기를 가둬서 잡는, 옛날식 고기잡이 법이다. 이돈삼 바다의 텃밭으로 간다. 말이 텃밭이지, 생물다양성의 보고다. 생태체험 관광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유용한 갯벌이다. 이 갯벌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지난 7월이었다. 세계자연유산이 된 갯벌은 신안을 중심으로 보성·순천, 충남서천, 전북고창을 한데 묶고 있다. 신안갯벌이 1100㎢로 가장 넓다. 보성·순천과 서천, 고창갯벌이 각 60㎢ 안팎에 이른다. 전남의 갯벌이 전체의 87%를 차지한다. 갯벌은 밀물과 썰물이 수만 년에 걸쳐 되풀이되면서 빚어낸 결과물이다. 그 가치가 무한하다. 갯벌에는 조개와 고둥, 게, 낙지 등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다. 물고기와 새들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우리 인간도 갯벌에서 유익한 식량을 얻...
편집에디터2021.12.19 14:35섬진강변 함허정. 누정에서 발 아래로 흐르는 강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이돈삼 대한민국은 섬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섬이 많다. 통계수치가 들쭉날쭉한 탓에 정확한 섬의 숫자는 귀신도 모른다고 한다. 334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유인도 277개, 무인도 1888개가 전라남도에 속한다. 2165개로 우리나라 섬의 3분의 2에 해당된다. 전남에서 섬이 가장 많은 곳은 신안군이다. 그 뒤를 여수, 완도, 진도, 고흥, 영광, 해남이 잇고 있다. 전라남도의 통계수치다. '골짝나라' 곡성에도 섬이 있다면, 믿을까? 곡성군 입면에 있다. 제월섬이다. 사전에서 섬을 찾아보면 '주위가 수역으로 완전히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라고 나와 있다. 내륙과 바다를 가리지 않는다. 섬의 분포 상태에 따라 제도(諸島), 군도(群島), 열도(列...
편집에디터2021.12.02 14:33비트. 색깔이 빨갛다고 '빨간 무'로도 불린다. 이돈삼 김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배추밭. 배추가 튼실하게 자랐다. 이돈삼 벼 수확을 마친 들판이 황량해졌다. 볏짚을 한데 뭉쳐놓은 곤포 사일리지가 허전함을 조금 덜어줄 뿐이다. 단풍 든 나뭇잎은 마지막 정열을 불태우고 있다. 산하가 초겨울을 향하고 있다. 튼실하게 자란 배추와 무, 비트 등 남새는 김장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고만고만한 집들이 스산한 바람이 서성거리는 들판과 나란히 이어져 있다. '나비'로 이름을 널리 알린 전라남도 함평군의 나산면 초포리다. 함평이씨가 모여 사는 마을이다. 불갑산에서 흐르기 시작한 해보천이 고막원천과 만나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초포리는 초포, 사촌, 환곡, 사산, 입석 등 5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옛날에 작은 포구가 있던 곳이라고 초포, 모래밭이 있었다고 사촌, 옥(玉) 고리의 모양새라고 환곡,...
편집에디터2021.11.18 16:17금남동 거리. 금남동은 곳곳이 문화재이고,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이돈삼 나주는 한동안 여행객들의 마음에서 밀려나 있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녔음에도 크게 단장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고대 영산강문화를 꽃피웠던 나주가 남도의 새로운 핫 플레이스(hot place)로 떠오르고 있다. 나주는 오래 전 전라도의 행정과 경제·군사·문화의 중심이었다. 983년 고려 성종 때 설치한 나주목(羅州牧)이 913년 동안 유지됐다. 이 기간 나주목사 306명이 부임했다. 나주를 '천년고도', '목사골'로 부르는 이유다. 나주는 북한산과 한강을 배산임수 지형으로 삼은 한양에 빗대 '작은 한양'으로 불렸다. 뒤로는 금성산을, 앞으로는 영산강을 두고 있다. 당시 나주는 인구로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에 꼽혔다. 흥선대원군이 '나주 가서 세금 자랑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로 세금을 많이 ...
편집에디터2021.11.04 15: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