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탁의 '인사이트'>지금, 빌게이츠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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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칼럼
김홍탁의 '인사이트'>지금, 빌게이츠의 머릿속엔 무엇이 있을까?
  • 입력 : 2019. 11.11(월) 15:02
  • 편집에디터


사람이 배설한 대변에서 마실 수 있는 물을 뽑아낼 수 있다면, 그것은 기술일까, 기적일까? 게다가 그 대변을 태워퇴비까지 만들 수 있다면? 점점 더 기적에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일을 해낸 사람은 기술자도 아니고, 마술사도 아닌 기업인 빌게이츠다. 빌게이츠는 2000년 그의 아내와 함께 '빌앤멜린다 게이츠 파운데이션(Bill&Melinda Gates Foundation)'이라는 재단을 만들었다. 아직도 이 세상에 만연한 기아, 빈곤, 질병 등의 문제를 퇴치하기 위함이었다. 빌게이츠는 재산의 많은 부분을 재단에 기부했고, 이 일을 하기 위해 1년에 약 50억 달러를 쓰고 있다.

빌게이츠가 대변을 태워 퇴비를 만들고 마실 수 있는 물을 뽑아내려고 생각한 것은 뉴욕타임즈의 기사에서 비참하고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아프리카에선 대변을 정화시키지 않고 그냥 하천에 내다버리는데, 그 오염된 물을 아이들이 마시다 보니 장염에 걸려 설사하는 일이 잦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하루 이틀치 약을 먹으면 금세 멈추는 설사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빌게이츠는 설사로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그는 즉시 세계개발보고서를 읽기 시작했고, 저개발국가 아이들 12%가 5세 이전에 죽고 1년에 3백만명이 땅에 묻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그러나 정화시설과 하수관을 설치하여 현대식 위생시설을 갖추기에는 수백억달러의 자금이 투여되어야 했다. 빌게이츠에게는 적은 비용의 획기적인 위생 시스템 개발이 필요했다. 그는 피터 재니키(Peter Janicki)라는 기계공학자를 불러들여 '옴니프로세서'라는 장치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대변을 태워 퇴비를 만들고 거기서 나오는 증기로 증기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며, 발생되는 열은 소변과 대변 속 수분을 살균하여 먹을 수 있는 물을 만드는 완전체였다.

빌게이츠가 새로운 장치를 고안한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실행하는 실천력이 놀랍다. 가령 아프리카 아이들이 오염된 물을 먹고 죽어간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1,2초간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 후 지나칠 것이다. 몇몇은 해당 NGO에 문의하여 기부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뛰어든다. 빌게이츠가 그런 인물이고 그런 사람이 세상을 바꿔왔다. 그가 일 년에 일주일을 비워서 외딴 곳에서 홀로 책을 읽고 생각을 가다듬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읽는 책들은 대개 예방의학,에너지,환경,알고리즘,딥러닝,의사결정 등에 관련된 책들이다. 그의 머리 속엔 지속가능이란 키워드가 낙인처럼 새겨져 있는 것이다. 혁신은 그저 그런 변화를 통해 오지 않는다. 혁신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 속에서 잉태된다. 판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빌게이츠가 자신과 별관계 없어 보이는 저 먼 곳의 불행에 뛰어든 것은 지구가 하나의 생태계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질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아프리카만의 문제가 아니다. 아프리카가 썩으면 지구가 썩는 것이다. 지구가 지속가능하지 않은데, 어찌 인류의 미래를 논할 것인가? 이러한 환경 생태계 사슬은 미국산 쇠고기 패티가 들어있는 햄버거를 먹을 때도 확인할 수 있다. 소가 사료을 먹고 트림할 때 뿜어내는 메탄 가스 분자는 이산화탄소 분자 23개에 해당된다. 이를 추산해 보면 햄버거 하나 먹을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양은 24시간 에어콘을 작동시켰을 때 발생하는 양과 맞먹는다. 한국에서 먹는 햄버거 하나가 대량 사육되는 미국 소의 트림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지속가능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은 이처럼 일상생활 곳곳에 산재해 있다.

대한민국 사회도 이미 지속가능을 걱정해야 할 시기에 돌입했다. 저개발국가 처럼 질병이나 기아로 시달리는 사람은 흔치 않지만, 빈부격차, 계층격차, 그리고 지역격차를 해소할 균형발전의 관점에선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어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지역에 자본과 인력과 인프라가 몰려 있는 대한민국은 서울민국이라 부르는 것이 타당할 듯 싶다. 반면 광주 전남지역만 보더라도 경제가 둔화되고, 고령화 마을이 늘면서 지역소멸이란 끔찍한 단어가 주제어가 됐다. 지역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마련된 인프라도 제대로 활용을 못해 전시물이 되어버린 상황도 목격된다. 이제 정치를 필두로 경제, 교육, 환경 문제 등에서 지속가능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효율있는 국가 정책, 기업의 상생경영, 그리고 도시농어촌 재생을 위한 지역 공동체의 노력 삼박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정치의 지속가능 공학을 만들어내는 일이 절실하다. 정치의 패러다임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정치를 통해 결정되는 정책이 김씨이씨박씨의 일상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제와 기술의 패러다임이 급변함에 따라 기업 환경과 일상생활의 생태계가 확연히 바뀌어가고 있는데, 정치는 이전 상황의 데자뷰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업은 4.0시대의 생존 레이스에 돌입했는데, 정치 시스템은 여전히 1.0이다. 지난 10여년 간 수립된 수많은 정책들이 우리의 지속가능 생태계를 구동하고 있는지 살펴 보면 성공한 것을 꼽기가 쉽지 않다. 지속가능은 우선 지속가능을 방해하는 핵심 요소를 찾아내는 것에서 시작된다. 많은 정책보다는 원인을 확실히 도려낼 한 방이 필요하다. 인구절벽이 온다는 데, 13년간 143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투여하고도 오히려 출산율은 0.977로 떨어져 세계 최저다. 출산장려금은 자식을 갖기로 마음먹은 부부에게 도움이 될 뿐, 출산을 포기한 부부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지속가능 정책은 실질적인 솔루션이어야 한다. 처방이 듣지 않으면 빠르게 처방을 바꿔야하지 않겠는가.



기술과 제도가 아무리 훌륭해도 세상을 바꾸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늘 고민하는데, 제대로 된 사람이 일을 맡게 되면 그 '무엇을' 과 '어떻게'는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우리에게 인류의 지속가능을 위해 글로벌 아젠다를 제시하고 세상을 바꾸어가는 빌게이츠 같은 사람이 나타나줄 것을 기대하진 않는다. 국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위정자들이 그들의 머리 속에 대한민국의 제대로 된 지속가능을 담아주길 기대한다. 사실 그들의 머리 속에 무엇이 있는 지 심히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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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