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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_삶과 죽음에서 예술(명화 속 질병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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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_삶과 죽음에서 예술(명화 속 질병이야기)

게재 2020-03-17 13:25:35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미술관, 공연장, 영화관을 찾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겼다. 국가 위기단계가 '심각' 수준으로 격상된 이후 주요 박물관, 미술관, 공연장은 일제히 문을 닫았다. 세계적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전시 일정이 잇달아 미뤄지거나 취소되었고 한국 아티스트들 또한 국내외 활동이 점점 어려워졌다.

도시에서 동네에서 마주치는 마스크로 반쯤 가려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진실과 관계 회복을 찾아야 할까?

가난한 사람, 부자인 사람, 능력이 있든, 없든, 못났든 잘났든,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선 다 똑같은 인간이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과 행복들이 사라졌고, 말도 안 되는 스토리의 전염병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우왕좌왕, 매일 울려대는 재난문자에 마음 졸이며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 줄을 섰다. 앞으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릿속이 매말라가고 기분이 한없이 다운되어 간다. 막연한 현실에 대한 갈증을 예술은 어떻게 꿈꾸게 하는가?

그럼 나는 이 사회 속에서 어떤 존재이고, 우리는 사회 속 어떤 바이러스로 살고 있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 가 만든 잠시 멈춤의 시간 안에서 우리는 멈춰서 내 자신을 천천히 뒤돌아보게 되었다.

미국 칼럼리스트 제니퍼 라이트의 저서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 13가지> 에서는 위생과 보건 환경이 취약했던 20세기 이전 역사와 20세기 이후에 들어와서도 계속되는 신종 바이러스들의 공격에 대처하는 인간성 수호의 현재 문명 모습과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많은 철학자와 예술가들이 시대적 재난과 불안의 위기를 기회 삼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마지막 남은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작업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지금의 우리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각종 바이러스와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한다면 문명적 위기에 대한 감성적 위로와 면역력을 우리는 '순수한 예술' 로부터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예술을 통한 회복 방식과 원인을 찾으려 노력해야 할까? 그렇다면 우리는 예술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바라고 있는 것일까? 결국 나는 무엇을 느끼려고 하고 있나? 사실 이 수많은 물음 속에 답은 뚜렷하게 떠오르질 않았다.

이번 칼럼에서는 20세기 이전의 다양한 명화 작품에서 나타난 전염병과 관련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담고 있는 그림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런 영화 같은 현실이 명화 작품 속에는 어떻게 그려져 있을까?

20세기 전 수많은 전염병 중에서 인류를 죽음의 공포에 몰아넣은 전염병을 꼽으라면 단연 페스트다. 흑사병으로 불리는 페스트 병은 페스트균에 의해 발생하는 급성 전염병이다. 페스트균은 숙주 동물인 쥐에 기생하는 벼룩에 의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1. 작가미상_흑사병_1346
1. 작가미상_흑사병_1346

△1. 작가미상_흑사병_1346

13~14세기 중기 전 유럽에서 대유행을 하면서 희생자가 굉장히 많았다.

2.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자화상_파리루브르박물관
2.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자화상_파리루브르박물관

△2. 니콜라 푸생 자화상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를 그린 작품이 바로 푸생의 <아슈도드에서 창궐한 흑사병(La Peste d'Asdod dit les Philistins frappés de la Peste)> 이다.

이 작품은 17세기 프랑스의 거장이자 신고전주의의 대표 화가인 니콜라 푸생 (NICOLAS POUSSIN)이 흑사병을 주제로 그린 대표적인 작품이다.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와 배치, 그림을 통해 이상적인 미를 추구한 그림을 표현했다. 또한 신고전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 "회화 창작에서 기본은 주제와 그 전개방식이 전쟁이나 영웅적인 행동, 종교적인 테마 같은 위대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비천한 주제들은 되도록 피해야 한다. 일상적 묘사에 치중하는 화가들은 그들의 열등한 재능을 그런 하급 주제를 통해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라는 주장을 펼치며 '장려양식Grand Manner'를 창시했다.

2-1.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_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_파리루브르박물관소장_1630.
2-1.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_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_파리루브르박물관소장_1630.

△2-1. 작품이미지_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_아슈도드에서 창궐한 전염병_파리루브르박물관소장_1630

16세기에 제작된 작품 <아슈도드에서 창궐한 흑사병>은 구약성서 사무엘기에 나오는 역병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당시 성서에 있는 이야기라 할지라도 전염병이란 주제는 사실 신고전주의에서 다루는 이상적인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는 주제였다. 게다가 당시 유럽에서는 예술 작품을 보는 것이 물리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질병과 같은 부정적인 내용을 묘사한 작품도 드물었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푸생이 이 주제의 작품을 그린 것은 로마에서 유행했던 전염병에 대해 많은 관심과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런 관심이 그림으로까지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다. 17세기 당시에는 평가가 좋지 않았던 작품이지만, 현재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많은 관람객들이 손꼽는 명작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아카데믹한 삼각구도 부분이며 건물들과 인물의 배치가 안정적인 삼각형 형태를 이루면서 전형적인 투시법을 이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 속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표정과 전염병의 우울한 분위기와 대조적인 효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또한 그림 속 쥐가 그려진 모습, 페스트와 같은 전염병이 공기를 통해 전염되어 입과 코를 막으며 표현된 인물들에서 푸생이 그림을 그릴 때 주제와 관련된 자료와 연구를 철저히 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이후에도 이 작품은 단순히 명화를 넘어 의학적인 면과 건축적인 면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3. 쥘 엘리 들로네(Jules Elie Delaunay)_로마의흑사병(La Peste a Rome)_18세기
3. 쥘 엘리 들로네(Jules Elie Delaunay)_로마의흑사병(La Peste a Rome)_18세기

△3.작품이미지_쥘 엘리 들로네(Jules Elie Delaunay)_로마의흑사병(La Peste a Rome)_18세기

쥘 엘리 들로네(Jules Elie Delaunay) 는 페레이르(Péreire) 저택과 파이바(Païva) 저택의 장식화를 그리면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벽면을 차지하는 대형화를 그리는 화가들을 좋아했던 비평가 테오필 고티에(Théophile Gautier)를 비롯한 이들은 들로네가 1869년 살롱에 출품한 이 그림을 보고 의아해 했다. 고티에는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진지한 분위기가 그림을 지배하고 있어 크기만 조금 더 크다면 아름답고 좋은 역사화가 될 것이다. 크게 확대되어 넓은 전시실에 걸린다면 <로마의 흑사병(La Peste a Rome)>은 살롱전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호평 받을 것이다."

그림 속 화면의 구성, 공포의 표현 등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가로 176.5센티미터, 세로 131센티미터인 그림이 조금 더 큰 크기로 그려지지 않은 것은 확실히 아쉬운 일이다. 고티에는 그림이 드러내는 암울하고 격정적인 분위기에 감탄하며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푸른빛을 띠고 있는 몇 명의 생존자들은 벽을 따라 기이하게도 조용히 줄을 서 있다. 그들은 이 역병에 걸린 도시의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죽음의 눈에 띄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듯하다. 흰색의 날개를 단 천사는 한 집 앞에서 멈추어 파괴의 정령에게 이 집을 손짓으로 가리키고 있다. 마른 몸매에 굳어 있는 창백한 얼굴, 불쾌한 공기로 만들어진 듯한 이 정령의 모습은 두려움을 준다. 강렬한 공포를 순화시키기 위해서 그림의 배경에 희미한 행렬이 빛을 비추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는 모습이 흡사 먼 곳에서 비추는 한줄기 희망을 연상시키고 있다. 이제 하늘의 복수는 끝났고 흑사병은 사그러들 것이다." 이 시적인 묘사는 황량함과 도시의 위압감, 흑사병 환자들의 무기력함과 중앙부 인물들의 폭력성, 복잡한 공간과 조화로운 구성 등 서로 반대되는 요소들을 담고 있는 그림의 신비한 매력을 잘 전하고 있다. 고티에는 특히 들로네의 "주제와 잘 어울리는 진지한 색채, 장엄하고 엄격한 양식, 참신한 구성"을 평가했다고 한다.

4. 작가미상_흑사병(Peste)_로마바르베니니박물관 소장_17세기
4. 작가미상_흑사병(Peste)_로마바르베니니박물관 소장_17세기

△4. 작품 이미지_작가미상_흑사병(Peste)_로마바르베니니박물관 소장_17세기

17세기 로마에서 흑사병은 신에 대한 믿음과 기도는 간절했지만, 흑사병의 전염병 예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흑사병의 원인균은 쥐들이 옮기는 벼룩에 의해 전파되기 때문이다. 병원체는 벼룩을 죽이지 않으며, 감염된 벼룩이 숙주인 쥐를 물어 병을 옮겼다. 만일 쥐가 페스트로 죽으면, 벼룩은 새로운 숙주를 찾아 이동하며 이 과정에서 전염이 변위되고 확산되는 바이러스였다. 당시 유럽 사람들은 전염 과정을 과학적으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전염병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잉글랜드 인구는 흑사병 상륙 이후 단 100년 만에 577만 명에서 227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사회 및 경제 시스템은 뿌리부터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흑사병이 가져온 변화는 사회마다 달랐다. 서유럽은 봉건제가 해체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노동력이 급감하는 가운데 농노의 협상력이 높아졌던 것이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에서는 1381년 와트 타일러가 이끄는 농민 반란이 발발해 런던 일대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타일러가 이끄는 반란군은 결국 무릎을 꿇고 타일러도 처형되고 말았지만, 농노들을 예전처럼 구속하려는 시도는 점차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봉건적인 노역이 자취를 감춘 가운데 잉글랜드 국민소득은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면, 동유럽은 정반대 일이 벌어졌다. 서유럽에 비해 동유럽 영주는 더 넓은 땅을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 도시가 발달하지 못해 농노들이 자유를 찾아 이탈할 기회를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농노들은 그나마 있던 자유마저 빼앗기기에 이르렀다. 예를 들어 폴란드 코르친 지역에서는 1533년만 해도 영주에 대한 노역 대신 돈을 지불하고 있었지만, 1600년경에는 다시 강제 노역으로 환원되었다고 한다. 결국 흑사병이 유럽에 오기 이전만 해도 동유럽과 서유럽의 경제와 제도 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지만, 이후의 대응이 두 지역 간에 성취를 결정적으로 갈라놓는 분기점이 되었던 셈이었다.

5.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Baron de Gros) 자화상
5.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Baron de Gros) 자화상

△5.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Baron de Gros) 자화상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가, 앙투안 장 그로(Antoine-Jean Baron de Gros) 는 다비드의 3대 제자 중 한명이지만 다비드는 신고전주의인 반면 낭만주의 화가로 이름을 알렸다. 나폴레옹 시대 뛰어난 전쟁화를 많이 그렸다. 고전파의 마지막 거장으로서, 전통적 기법을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이며 색채의 명암이 뚜렷한 회화적 효과를 추구하여 낭만파의 선구자가 되었다. 특히 이 시기는 정부나 왕들이 미술에 대한 강압이 없기 때문에 많은 미술의 장르가 태어났다.

5-1. 앙투안 장 그로(Antoine Jean Gros)_자파의페스트환자를방문한나폴레옹(Napoleon at Pesthouse at Jaffa)_파리루브르박물관소장_1804
5-1. 앙투안 장 그로(Antoine Jean Gros)_자파의페스트환자를방문한나폴레옹(Napoleon at Pesthouse at Jaffa)_파리루브르박물관소장_1804

△5-1. 작품 이미지_앙투안 장 그로(Antoine Jean Gros)_자파의 페스트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Napoleon at Pesthouse at Jaffa)_파리루브르박물관소장_1804

앙투안 장 그로의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인 <자파의 페스트환자를 방문한 나폴레옹 (Napoleon at Pesthouse at Jaffa)> 그림의 중앙에 환자를 매만지는 사람은 바로 나폴레옹이다. 아프리카 원정을 떠난 나폴레옹과 프랑스 군대는 뜻밖의 전염병을 만나게 되었고, 환자들을 격리시킨다. 군인들은 혹여 자신에게 병이 옮을까 코와 입을 막고 있다. 하지만 작가 앙투안 장 그로는 그림 속에서 나폴레옹을 마치 신이나 우상처럼 표현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만지는 환자들이 마술처럼 짠! 하고 병에서 낫게 된다는 우상적 스토리를 담고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내용은 실제 역사의 기록과는 정반대다. 나폴레옹은 전쟁에 방해되지 않도록 전염병에 걸린 병사들을 독살하도록 명령했다. 역사와 반대로 기록된 이 그림은 위기에 처한 세상을 철저하게 속이고 있는 듯하다.

이후 파스퇴르가 19세기 말, 페스트균의 발병 원인과 치료법을 알게된 후 한 시대의 막을 내리게 되었지만 실로 엄청났던 그 시기의 흑사병으로 인한 희생은 아직도 수 많은 문헌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다. 전쟁과 기아, 각종 감염병, 자연재해 등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인간의 탐욕을 위한 생태계 파괴를 멈추지 않는다면 또 다른 바이러스의 재앙을 불러 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마다 인간은 현명하게 버텨내 왔고 살아왔다. 코로나19에 빼앗긴 일상이 뒤흔들고 있지만 완연해진 봄빛처럼 우린 또 버텨 낼 것이다. 우리 시대 위기적 극복의 역사를 비추어 볼 때, 인간은 고도화 된 산업화 속에서 자연을 정복함으로 인해 극도의 인간성을 획득해 나간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동물은 자연 안에서 자연과 함께 흙으로 돌아가고 흙에서 태어나는 원초적인 자연의 섭리를 따라 동물성을 획득하고자 했다. 이제는 우리 자연과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원초적 회귀로 돌아가 나 스스로를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인 듯하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우리의 작은 실천들, 그리고 과학적 연구를 통해 현명하게 극복해 나가리라 믿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시대적 상황을 기획자와 예술가들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것인가? 우리의 시대적 위기를 통해서 더 깊고 창의적인 예술과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 할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