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나무 정령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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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나무 정령과 숲
  • 입력 : 2020. 05.06(수) 13:37
  • 편집에디터

"의민은 문자를 알지 못하고 오로지 무격(巫覡)만 믿었다. 경주에는 사람들이 '두두을(豆豆乙)'이라고 부르는 목매(木魅)가 있어 의민이 집에 당을 세워 이를 맞아두고 매일 제사하여 복을 빌었다. 홀연 하루는 당중에서 곡성이 있는지라 의민이 괴이하여 물으니 내가 너의 집을 수호한 지 오래 되었는데 이제 장차 하늘에서 벌을 내리려하는지라. 내가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곡한다 하더니 얼마 안 되어 패하였다. 유사가 벽 위의 도형 제거하기를 주청하매 고하여 이를 흙(으로) 바르게 하였다." '고려사' 「열전」 이의민조의 내용이다. 목매는 나무로 깎아 만든 인형일 것이다. 벽 위에 나무로 세워두고 매일 제사하며 복을 빌었던 이 신격의 출처는 무엇일까? 이를 목랑 혹은 두두을(豆豆乙, 두두리)이라 하고 비형랑을 이은 도깨비로 해석하는 것이니, 이 당시 도깨비의 영험이 매우 컸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형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는 없다. 굳이 상상해본다면, 후대의 나무 허수아비나 제웅(짚으로 만든 사람모양의 물건)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훗날 나타나는 제웅직성이나 제웅치기(打芻戱) 민속의례도 이와 관련 있어 보인다.

오래된 나무의 정령(精靈), 두두리 목랑(木郞)

다시 '고려사' 권54 「志」 권8의 내용을 참고한다. "고종 18년 10월 을축, 동경(경주)에서 달려와 아뢰기를 목랑(木郞)이라는 자가 있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적영에 이르노니 적의 원수는 모모인입니다. 우리들 다섯 사람이 적과 더불어 교전하고자 10월 18일로 기약하였으나 만약 병장과 안마(鞍馬)를 보내주시면 우리들이 문득 첩보를 보낼 것입니다 하고 인하여 목랑의 시를 최우에게 보내니 이르기를 오래 살고 일찍 죽고 재화가 있고 상서가 있음은 본래 일정한 것이 아닌데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일찍이 알지 못한다. 재화를 없애고 복을 받게 함은 어려운 일이니 하늘이나 인간 중에 나를 두고 누가 하리오 하였다. 최우가 그것을 자못 믿어 사사로 화첨 안마를 준비하여 내시 김지석에게 주어 보내었으나 그 뒤에 효험이 없었다. 목랑은 곧 목매다." 목매의 영험한 실력을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목매는 재화가 있고 상서(祥瑞)가 있음을 예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화를 없애고 복을 받게 하는 캐릭터다. 여기서 주목할 것이 나무인형, 혹은 제웅에 대한 성격이다. 연구자들에 따라 다르지만 목랑 곧 두두리를 오래된 고목의 정령으로 해석해온 이들이 많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마을마다 존치했던 당신(堂神)이나 골맥이신 따위가 우리가 호명해 온 도깨비의 후신일지도 모른다.

삼국유사의 도화녀와 비형랑

도깨비 관련 연구자들은 도깨비의 어원 및 최초의 기록을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나오는 '비형랑설화'로부터 시작한다. 왜 이 설화를 도깨비의 시원으로 삼았던 것일까? 누군가에 의해 시작된 이 해석은 큰 비판 없이 수용되어왔던 것 같다. 아직까지는 큰 이견이 없다고나 할까. 여기서 도깨비의 역할에 대해 다시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대체로 비형랑설화를 시원 삼는 논의들은 도깨비의 기능을 중시하거나 모티프삼은 해석들이기 때문이다. 비형랑 설화의 표면적 기능은 귀신들을 쫓아내는 것이다. '고려사'에서는 목매(木郞, 豆豆乙)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외적까지 물리친다고 했다. 영묘사 3층 불전은 비형랑이 그 무리들과 하룻밤 만에 호수에 다리를 놓아 만든 사찰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대로 비형랑의 설화를 도깨비의 기원이라고 인정한다면 도깨비의 기능은 명확하다. 모두 귀신을 쫓아내거나 하룻저녁 만에 다리를 놓거나 외적을 물리치고 가정에 화평을 주는 신격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두 가지가 있는 듯하다. 비형랑이 그 무리를 시켜 하룻밤 만에 다리를 놓았다는 이적을 전거 삼는 것이 하나요, 도깨비를 다시 어떻게 상상할까에 대한 관심이 또 다른 하나다. 논자들이 주목하고 확대 재생산한 목랑(木郞, 두두리)이 그 중심에 있다.

시아우와 니아스 섬사람들이 믿는 숲의 정령

나무로 만든 인형 혹은 막대기를 도깨비라고 부른다는 점에서 근대기에 채록된 도깨비의 실체들, 방망이나 몽당 빗자루 따위와 연관되는 측면을 상상하게 해준다. 도깨비를 흔히 절굿대 방망이나 빗자루, 부지깽이 등으로 고백하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이 이야기의 근원을 살피기 위해 머나 먼 상기에 군도의 시아우 섬과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인근의 이야기를 청해 들을 필요가 있다. "시아우(Siaoo)섬 주민들은 숲속이나 외딴 거목 속에 거주하는 숲의 정령을 믿는다. 보름달이 뜨면 그 정령이 은신처에 나와 돌아다니는데, 그는 머리가 크고 팔다리가 아주 길며 몸체가 육중하다. 사람들은 이 숲의 정령을 달래기 위해 음식과 가금류, 염소 따위의 공물을 정령들이 출몰하는 장소에 갖다 바친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서 해안에 있는 니아스(Nias)섬 사람들은 나무가 죽으면 거기서 빠져나온 정령이 귀신이 된다고 생각한다. 이 귀신은 야자나무 가지에 그냥 올라타기만 해도 나무를 죽일 수 있으며, 집을 떠받치는 기둥 한 군데에 깃들여 집안의 모든 아이를 죽게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 어떤 나무에는 떠돌이귀신이 항상 거주하고 있어서, 그 나무가 상하게 되면 귀신이 빠져나와 재앙을 일으키러 다닌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나무를 경외하여 잘라내지 않도록 조심한다."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가 짓고 이용대가 옮긴 '황금가지'(한겨레출판, 2003)의 한 대목이다. 프레이저의 보고가 우리 도깨비를 설명하는 데 얼마나 유용할지는 모르겠지만, 외딴 거목 속에 거주하는 숲의 정령이 도깨비에 대한 설명을 보완하는 것만큼은 틀림없어 보인다. 보름달이 뜨거나 그믐달이 뜨는 밤 도깨비는 그들의 은신처인 마을숲과 수변의 늪, 혹은 연안의 개펄을 돌아다닌다. 큰 바다와 큰 산을 교접하는 전이지대, 산신 용왕 등과 같은 정격(定格)의 신과 사람의 사이를 조율하는 전이지대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도깨비들이 크고 웅장하거나 현저하게 중요한 절일이나 제사에는 초청받지 못하지만 언제나 숲이나 개펄, 늪지에서 장난을 치거나 물고기를 몰아다 준다.

개펄 숲과 마을 늪으로 돌아가야 할 때

"침향(沈香)을 만들려는 이들은, 산골 물이 바다를 만나러 흘러내려가다가 바로 따악 그 바닷물과 만나는 언저리에 굵직굵직한 참나무 토막들을 잠궈 넣어둡니다. 침향은, 물론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이 잠근 참나무 토막들을 다시 건져 말려서 빠개어 쓰는 겁니다만, 아무리 짧아도 2~3백년은 수저(水底)에 가라앉아 있는 것이라야 향내가 제대로 나기 비롯한다 합니다. 천 년쯤씩 잠긴 것은 냄새가 더 좋굽시요, 그러니, 질마재 사람들이 침향을 만들려고 참나무 토막들을 하나씩 하나씩 들어내다가 육수와 조류가 합수(合水)치는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은 자기들이나 자기들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건져서 쓰려는 게 아니고, 훨씬 먼 미래의 누군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후대들을 위해섭니다." 서정주 시인의 「침향(沈香)」 중 일부다. 몇 년 전 이 지면을 통해 매향(埋香)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신라시대부터 인도 등지에서 수입하여 귀하게 대접받던 나무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으니 참나무를 개펄에 묻어 그 효능을 기대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바닷물과 강물이 만나는 지점에 향나무를 묻어 천년 후에 오실 미륵을 기다린다는 메시아 신앙의 일단이었다는 점 불문가지다.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든다. 합수지점에 묻었던 참나무가 혹시 나무의 정령 목매(木魅)는 아니었을까? 혹은 개펄에 묻은 참나무들이 나무의 정령이 되어 도깨비로 전화(轉化)된 것은 아니었을까? 사람들은 이 도깨비들이 출몰하는 전이지대에 메밀떡과 생메밀, 어느 지역에서는 소 한 마리 분량의 뼈와 그리고 약간의 음식들을 갖다 바친다. 도깨비는 즉각적인 응답을 해주는 편이어서 당장 풍어를 제공하기도 하고, 하룻저녁 만에 어살을 쌓아 고기를 가득 잡아주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무와 숲과 늪들을 경외하여 여러 가지 영험담 이야기를 지어내서 유포하고 그 공간을 지키려 애를 써왔다. 매우 중요한 어떤 공간이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고 눈여겨보지도 않는 그야말로 비어있는 공간들, 숲과 늪과 갯벌들 말이다. 혹시 도깨비들은 이들 정격의 나무와 숲과 개펄을 경시하여 잘라내고 막고 불을 지르고 간척한 후과로 생긴 존재들 아닐까?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하룻밤 만에 호수를 잇는 다리를 만들던 비형랑이, 목랑이라는 나무인형나 절굿공이가 될 수 있으며, 수많은 민담의 도깨비들이 몽당 빗자루와 부지깽이류의 나무막대기가 될 수 있단 말인가. 필연, 이들이 나무와 숲의 정령이 아니면 그 무엇이란 말인가. 숨 쉴 수 없이 다그치고 몰아치는 현대인들의 삶 속에서 도깨비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할까? 나는 그것을 여백이라고 생각한다. 바다와 강 사이의 개펄 혹은 습지,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아무 기능도 없어 보이는 그 여백 말이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들어가지 못하는 비무장지대 같은 곳이다. 하지만 거기에 보다 큰 기능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좀 더 고상한 말로 표현하면 마음의 여유다. 완벽하지도 않고 똑똑하지도 못한 도깨비는 우리 마음을 무장해제 시켜준다. 이름도 빛도 없이 살아가는, 어디에도 내세울 것 없는 자들을 포섭하고 투영해주는 도깨비들과 천년을 개펄에 묻혀 새로 올 '다시천년'을 준비하는 나무 정령들을 상상한다.

남도인문학팁

'돗구+아비', 절굿공이를 성찰할 까닭

권재선은 「한국어의 도깨비(鬼)와 일본어의 오니(oni)의 어원과 그 설화의 비교」에서, '돗가비'의 어원이 둔갑을 잘 한다는 '둔갑이(遁甲이)'에서 왔다고 주장한다. 둔갑이가 줄어서 '갑이(甲이)'가 되고 '도술(道術)'이란 명사가 관형어로 붙어 '도술갑이(道術甲)이'가 되었다가 다시 '도갑이(道甲이)'로 줄고 두 낱말 사이에 사이시옷이 들어가 '도-ㅅ-가비>돗가비'가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망량(魍魎)'에 근거하여 귀가 긴 사람의 형상이란 뜻으로 '톳기아비'라 하였고 이 말이 축약되어 '톳갸비'가 되었다가 '톳쟈비'가 되고 '톳자비>토째비>토채비>도채비'로 변했다고도 한다. 이들 모두 오래된 나무의 정령 목랑이 남근 모티프롤 수용하게 된 전거들이다. 낱말에 대한 추적은 다양하지만 길쭉하고 뭉턱한 남성의 심볼을 투사시켰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김정란이 「도깨비 설화와 연금술」이란 글에서 밝힌 '절구'의 여러 지방 고어를 살펴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일단이 보인다. 절구의 고형은 '졀구, 졀고'다. 평안도 방언은 '덜구'다. 지역별로 '덜구댕이', '돗구방', '도구대' 등으로 불린다. 남도지역에서는 도굿대라고 불렀다. 도깨비하고 발음이 좀 비슷한 발음일까? 절구가 나무정령의 의인화라도 이룬 것일까. 하지만 어원의 맥락만을 가지고 도깨비의 실체에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여러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그간의 학설 '돗구(도굿대)+아비(남성)'를, 그 정령이 걸어 나온 오래된 나무와 숲과 갯벌 혹은 마을의 늪지대를 전제하지 않고 해석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거진 숲. 뉴시스

창녕 우포늪. 뉴시스

창녕 우포늪. 뉴시스

영암군 채지리 매향비-고 최덕원 사진

제웅(허수아비)을 만들어 굿하는 장면(사진 이또아비토, 1972)

흑산도 수리 갯제의 용신 허수아비(최덕원, 다도해의 당제에서 발췌)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