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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비판 얼룩진 부산의 5·18… 여전히 갈 길 먼 전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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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비판 얼룩진 부산의 5·18… 여전히 갈 길 먼 전국화

5·18을 향한 다양한 '시선' ⑤ 5·18을 경험한 타지역 사람들
“잘 모른다” 무지·무관심… 5·18은 먼 나라 얘기
'사태·폭동' 인식 다수… 유공자 명단 요구하기도
"진상규명 위해선 정치색 버리고 서로 양보해야"

게재 2020-06-07 14:58:16
지난달 28일 (사)전국모범자운전연합회 부산지부 사상지회 회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사)전국모범자운전연합회 부산지부 사상지회 회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사회 갈등이라고 하면 '지역감정'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전라도와 경상도는 그 옛날 삼국시대부터 역사적으로도 매우 오랜 기간 서로 대립해 왔다. 전라도는 전라도끼리, 경상도는 경상도끼리 사람들이 뭉쳐 반목이 깊어지면서 도가 지나쳐졌다. 뚜렷한 이유 없이 다른 지역을 맹목적으로 싫어하고 비난하게 됐으며, 여기에 정치색까지 덧씌워져 진보 대 보수, 민주당 대 통합당이라는 프레임이 뿌리 깊게 새겨져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향한 두 지역의 시선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5·18을 언급하는 행위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만연했다. 5·18의 전국화, 세계화를 외치고 있는 지금도 부산에서 '민주화운동'이라는 말을 꺼내면 인정하기보다는 의심과 비난의 눈총을 보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40주년을 맞아 5·18에 대한 각 지역의 다양한 생각을 담아내고자 하니 조금만 도와주세요." 광주에서 온 기자가 취지를 설명하고 인터뷰를 시도하자 부산 시민들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다 답하곤 했다. 진지하고 조리 있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무지·무관심으로 답변하지 않거나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경우도 많았다.

5·18 당시 광주 소식을 텔레비전과 라디오 등을 통해 전해 들었던 부산사람들은 40년이 지난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부산 거리에서 마주친 평범한 시민들에게 물었다.

●무지·무관심… '사태'로만 기억

응답한 시민 중 절반 이상은 5·18이 왜, 어떻게 일어나게 됐는지조차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수많은 사람이 국가 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지만, 당시 생업에 쫓겨 살았던 평범한 부산 시민들에게 5·18은 먼 나라 얘기였다.

장병대(70)씨는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5·18 소식을 듣긴 했지만, 먹고 살기 바쁠 때라 신경 쓸 새가 없었다"면서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거치며 각지에서 흔히 있었던 학생운동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했다.

염기선(61)씨에게도 5·18은 많은 사람이 희생된 안타까운 사건 정도로만 기억됐다.

염씨는 "워낙 동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고 내 이웃이나 가족과 연관된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심각한 사건이 일어났다고만 생각했다"며 "독재에 저항해 일어난 민주주의 투쟁이었다고는 생각하지만, 부끄럽게도 자세히 알지 못하며 나 역시 지역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진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신군부 조작에 귀먹고 눈멀어

수십명의 부산 시민들을 만나면서 다양한 견해를 들어볼 수 있었지만, "5·18은 민주화운동인가"하는 질문에는 동의하지 않는 이가 많았다. '광주 사태'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폭동'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몇몇 있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박현택(67)씨는 텔레비전을 통해 5·18 소식을 접했다. 광주 시민이 버스에 올라 무력시위를 벌이는 영상, 시민군들이 군인처럼 총을 지닌 채 버스를 타고 시내를 도는 사진이 흘러나왔고 방송에서는 이를 '폭동'이라고 규정했다.

박씨는 "전라도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구든 당시에는 5·18을 폭동으로 알았을 것"이라며 "텔레비전이든 라디오든 광주에서 선동으로 인한 소요사태가 벌어져 군대가 진압 중이라는 방송만 내보냈다"고 기억했다.

윤병옥(65)씨는 80년 5월 당시 군 수송기 관계자로부터 5·18 소식을 직접 접했다고 했다. 그는 5·18이 정치권력에 대한 저항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광주 시민들이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한 채 부정적인 견해를 견지했다.

윤씨는 "88년 국회 광주청문회 때 5·18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면서도 "당시 노태우 정부도 충분히 사과했다. 부당한 정권에 저항한다는 취지라고 하더라도 무력을 사용한 광주 시민들이나, 이를 진압한 신군부나 결국 도긴개긴"이라고 했다.

●40년간 정리 지지부진 "질렸다"

부산 시민들에게 5·18은 온전히 공감하기 어려운 먼 지역 얘기다. 40년이 지났어도 지지부진한 진실규명, 덧씌워진 정치색으로 인해 조장된 수많은 분란까지.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나"며 지친 기색을 내비쳤다.

신관우(58)씨는 "5·18이 민주주의 운동으로 인정받은 지 오래고, 문재인 정부 들어서 각종 지원과 혜택도 많아진 것으로 아는데 뭘 얼마나 더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등을 내세우며 더 많은 것을 얻으려 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희생이었던 5·18이 화합과 상생이라는 본래의 방향성을 잃고 갈등과 대립의 근원으로 전락했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모(72)씨는 "5·18하면 이제 분란의 상징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물론 당사자들에게는 억울한 사건일 테니 명백히 밝히고 싶겠지만 서로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있어서 갈등만 깊어지고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유공자 공개 요구 등 불신 만연

인터뷰에 응답한 부산 시민들이 공통으로 낸 목소리 중 하나는 바로 '유공자 명단 공개'였다. 이들은 "그게 그렇게까지 못 밝힐 정도의 것인가"라고 생각하며, 분란을 잠재우고 진실을 규명할 또 다른 방법으로 여기고 있다.

문창환(59)씨는 "매년 정권이 바뀔 때마다 5·18 유공자가 대규모로 늘어나고 있으며, 전혀 관계없는 정치인들이 유공자가 된 것이 문제"라며 "대한민국과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진짜 유공자들의 희생이 모호한 기준의 유공자 선정으로 평가절하되고 있다"고 했다.

이어 "항쟁에 참여했던 이들,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만을 유공자로 인정해 진정한 국민적 영웅으로 만들어야 5·18에 대한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감히 밝히고 쳐내 다른 지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유공자 선정 과정에 대한 의혹과 지원, 혜택이 너무 과하다는 시각도 있다.

김모(76)씨는 "5·18 당시 시위에 참여하지도 않고 그저 지나가다가 잡혀가 경찰서에서 하루 자고 나왔는데 유공자로 인정받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면서 "혜택도 어마어마하다. 교육비 면제, 가산점 등 취업 특혜, 의료 지원까지 아무리 유공자라지만 국민의 혈세가 과도하게 집중된 것 같다"고 했다.

●정치색 버리고 지역감정 해소해야

부산 시민들이 5·18에 대해 선입견을 품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는 5·18이다. 80년 5월 광주 시민들의 피해와 희생 자체에 대해서는 십분 공감하고 매우 안타까워하는 부산 시민들이지만, 지역감정과 정치적 프레임이 씌워져 당파싸움의 매개물로 전락한 5·18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남 장흥 출신으로 부산에 정착한 김재호(65)씨는 "5·18 하면 영·호남 갈등이자 민주당·통합당의 다툼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면서 "호남 출신으로 부산에서 살면서 부당한 일을 여러 번 겪었다. 취업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선거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시체가 출마해도 호남에서는 민주당, 영남에서는 통합당이 당선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며 "이렇게 뽑힌 정치인들은 자신의 입지를 굳히고 이익을 챙기기 위해 5·18을 맹목적으로 옹호하거나 비판한다. 민주당이나 통합당이나 순수하게 5·18을 위하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몇이나 되겠는가"라고 했다.

40주년을 맞으면서 미약하게나마 광주와 부산이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김용군(56)씨는 "지난해 영·호남의 대립은 사상 최악의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며 "당시 한국당 국회의원들의 망언부터 시작해 여러모로 갈등만 깊어졌었다. 황교안 전 총리가 광주를 방문하자 온갖 항의와 물병이 날아들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가 사과하는 등 분위기가 많이 호전됐고, 많은 통합당 정치인들도 40주년 5·18 주간에 광주를 방문했다"면서 "광주 역시 이들에게 호의를 보이고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5·18에 대한 인식이 한층 개선된 느낌"이라고 했다.

김용선(61)씨도 "지역, 사회적 환경 등으로 인해 5·18에 대한 입장은 저마다 다르지만, 결국 민주화운동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면서 "모두가 5·18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올해 반드시 진상을 규명해야 하며, 5·18의 본질을 흐리는 지역 갈등과 정치색을 청산에 영·호남 지역민과 정치인들을 비롯한 국민이 앞장서야 한다"고 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