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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쓴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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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쓴 편지

양가람 사회부 기자

게재 2020-06-16 13:52:10

"그녀는 노래하고, 난 그녀 위해 노래 만들고/ 하루 종일 아름다운 시 읽는다네./ 건초더미 우리 집에 남몰래 누워 있으면/ 아, 인생은 아름다워라 6월이 오면." - 시 '6월이 오면' 중

영국의 시인 로버트 브리지즈는 6월을 청춘의 낭만 쯤으로 묘사한다. 그에게 6월은 사랑하는 이를 위해 편지 쓰기 좋은 달이었다.

2020년 6월, 대한민국의 수많은 발달장애 부모가 먼저 간 이들과 발달장애 자녀들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는 낭만이 아니라 비극에 가까웠다. 어떤 글은 시가 되어 하늘에 닿았고, 어떤 글은 미처 발화(發話)되지 못하고 가슴 깊은 곳에 묻혔다.

편지 속에서 부모는 스스로를 죄인으로 불렀다. 아이는 하늘에서 보내준 선물이었지만, 세상은 남들과 조금 달랐던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결국 이 땅에서 아이는 부모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무거운 숙제가 됐다.

지난 3일 광주의 한 도로변 차 안에서 A씨가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20년이 넘게 아들을 온 몸으로 품으며 살아온 A씨에게는 다른 이름들이 남아있지 않았다. 꽃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던 그녀는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발달장애 아들을 둔 엄마'라는 이름만 갖게 됐다. 이 사회에 중증의 어른아이를 받아 줄 곳은 없었다. 24시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녀는 결국 차 안에서 발버둥치는 아들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전 (그런 선택을 할) 용기가 없었을 뿐이에요." 또다른 발달장애 부모의 고백은 제자리걸음 중인 복지 제도의 단면을 보여준다. 지난 2014년 발달장애 부모의 눈물겨운 희생으로 '발달장애인법'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발달장애인은 '부모 밖에 책임질 수 없는 존재'다. 부모 없는 발달장애 자녀들의 행복은 감히 꿈꿀 수 없어서, 지금도 수많은 발달장애 부모가 자녀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우리 집 현관엔 항상 신발 두 켤레가 놓여 있다./ 아들 신발과 내 신발./ 아들의 신발이 내 것의 두 배가 된 지도 오래./ 언제까지 내가 함께해 줄 수 있을까./ 아프지 말아야지. 아프지 말아야지. / 오늘은 든든한 보디가드 아들과 단풍 구경이라도 가야겠다." - A씨의 생전 자작시 '신발'

지난 11일 오전 광주시청 앞에 A씨의 살아생전 청아한 목소리가 울렸다. 자작시에는 아들과 함께 잘 살아보겠다는, 그래서 아프면 안된다는 다짐이 묻어있었다. 얼마나 긴 계절들을 버텨야 '용기 없던 이'들이 자녀에게, 자녀들은 다른 사랑하는 이에게 낭만적인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오는 6월도 낭만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