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광장·천세진>예술과 허브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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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광장·천세진>예술과 허브공항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 입력 : 2020. 06.23(화) 15:03
  • 편집에디터

천세진(문화비평가· 시인)

2017년 11월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살바토르 문디(Salvator Mundi, 구세주)>가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000만 달러(약 5,400억원)에 낙찰됐다. <살바토르 문디>는 여러 가지로 화제였다. '남자 모나리자'로 불리며 특별한 아우라를 지닌 예수의 상반신을 그렸다는 점. 다빈치 작품 중 유일하게 개인소장이었던 점. <살바토르 문디>가 다빈치의 작품이라고 처음 주장한 미 뉴욕대 예술연구소의 다이앤 모데스티니 교수가 상당 부분을 복원했고, 그 때문에 위작 논란에 시달렸다는 점. 역대 최고 경매가. 구매자가 사우디아라비아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바데르 빈 압둘라 빈 무함마드 사우디 왕자였다는 점. 2017년 12월 UAE 아부다비 문화관광부가 <살바토르 문디> 매입 사실을 밝히고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첫 해외 분관인 '아부다비 루르'에서 작품을 공개할 것이라고 했지만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점 등이다.

흥미진진한 입방아는 호사가(好事家)들에게 맡겨두고 이 글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첫째, 4억 5천만 달러의 의미다. 희소성이 있는 그림이기는 하지만 한화로 5,400억 원에 달하는 가격이 터무니없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 의견에 대한 답은 그림을 소비로 보느냐, 투자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개인적 소비라면 가격은 터무니없다. 하지만 투자로 본다면 가격은 터무니없지 않다. 시간이 더 흐르면 탁월한 투자였다는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명화들의 가격 하락 사례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투자자가 누구냐다. 서양 예술시장과는 다른 환경을 가진 아랍문화권에서 그림을 사들였고, 경매 낙찰자가 사우디 왕세자였다는 점은 그림이 개인에서 개인으로 넘어가며 '대중시장'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떠돌게 되리라는 예측을 가능케 했었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UAE 아부다비 문화관광부가 등장했고, 개인 서재가 아닌 루브르 박물관의 해외 분관인 '아부다비 루브르'가 전시 공간으로 등장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좀 더 확대해보자. 첫째 예술작품과 공간성이다. 어떤 예술작품이든 공간성을 갖는다. 좁은 의미로는 예술작품이 자리하게 되는 캔버스와 벽, 광장 등이 되겠지만, 넓은 의미로는 예술작품이 탄생한 문화적 공간 전체를 아우른다. 소장된 곳의 공간성에 대해 문제제기가 계속 이어지는 것들은 다양한 형태의 조각예술품들이다. 그리스와 이집트 등을 비롯한 여러 문화권에서 탄생한 미술품들이 작품이 탄생한 공간을 떠나 유럽의 박물관들로 들어갔다. 이때 그 예술품들은 자신을 탄생시킨 공간문화에서 절연(絶緣)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물원의 동물들이 본래의 삶의 공간에서 절연된 것처럼 말이다.

현시대에 작품과 공간과의 관계를 따지는 문제제기는 어쩌면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이미 탄생의 공간들은 심각한 수준으로 파괴되어 버렸고, 그림의 경우에는 문화적 공간과의 연결성이 더욱 약하다. 그런 점에서 <살바토르 문디>가 아부다비로 간 것을 낯설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듯하다.

둘째는 그림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이다. 그림이 개인 저택에 걸린다면 굳이 이야기를 더 끌고 갈 필요도 없다. 2017년 11월 11일 개관한 '아부다비 루브르'가 전시공간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살펴보자는 것이다. '아부다비 루브르'에는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밀라노 귀족 부인의 초상>, 반 고흐의 <자화상>, 자크 루이 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이 전시되어 있다. 여기에 <살바토르 문디>가 더해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 세계 국가들은 자신들의 공항이 세계 최고의 '허브'가 되기를 갈망하며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아부다비 루브르'는 단순히 대중의 예술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예술적 동기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예술작품을 이용해 다른 '허브'공항들을 압도하는 경쟁력을 갖추려는 것이다. 아시아와 유럽 사이의 어느 공항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면, 여행객들은 <살바토르 문디>가 있는 곳을 택할 것이다. 인천공항은 동아시아 최고의 '허브 공항'중 하나다. 예술이 '허브 공항'의 경쟁력을 유지시켜주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발전 전략에 좀 더 무게 있는 고려사항으로 넣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