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북한의 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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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남북한의 민요
  • 입력 : 2020. 07.01(수) 12:47
  • 편집에디터

2017년 5월 31일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에서 열린 2017 국민대통합아리랑 공연. 전남일보 자료사진

2018년 한국민속학자대회 주제를 '황해에서 경계에 선 한민족을 보다'로 정했던 이유가 있다. 민요를 통해 남북간 화해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실천전략 중 하나로, 북한민속학연구소 공명성 소장을 초청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그가 아리랑 전문가라는 점이 내 관심을 끌었다. 이 방면에 전문가이거나 힘이 있다는 명사들을 만나 약속을 받고, 북한관련 학회, 단체, 기관 등 루트를 뚫어보려 했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북한학자가 남한에 들어와 토론회에 참여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더욱 아쉬운 것은 참여하기로 이런저런 약속까지 했던 조총련 민요학자마저 뒤늦게야 오지 못한다고 했을 때였다. 선배 어르신들 다 제치고 젊은 학자가 먼저 나서 남한과 소통한다는 것을 용납하기 어려웠다는 후문을 들었다. 어렵기는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한 해였다. 역사적인 물길 교류의 현장인 인천과 황해에서 경계를 넘어서는 한민족을 상상해보고자 했던 내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런데 당시는 반짝 호황이기였다고나 할까. 10년의 벽을 넘어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남북한 공동체 혹은 동질성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해진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력이 불발되니 실망 또한 컸다. 더 큰 문제는 지금이다. 2019년의 질곡을 지나 2020년 올해는 보다 더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심호흡을 하고 또 다른 준비를 시작해가야 하지 않겠나? 호황기에도 어려웠으니 불황기에는 오죽하랴 생각이 들지만 어쨌든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 각 분야를 톺아봐도 아리랑 등 민요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작년 한국민속학회 학술대회에서 토론했던 내 소회의 일부를 공론화하여 고수들의 질정을 청해둔다.

교착상태에서 생각하는 남북한 민요의 시선

남북한 민요는 접근부터가 다르다. 남한이 전통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창조를 강조한다. 남한이 지역성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주체성을 강조한다. 남한이 토속민요에 권위를 부여한 반면 북한은 통속민요(전통에 기반한 창작민요)에 권위를 부여한다. 물론 북한도 주체성 외에 민족성, 지역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이른바 신민요류의 창작민요보다는 토속민요에 기대는 심리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런 점에서 시선이 중층적이다. 남한은 통속보다는 토속을, 창작보다는 전통을 더 중시하는 태도를 유지해왔다. 남한에서는 새롭게 만들어지고 재구성된 것보다는 예로부터 이어져 온 것에 대한 관심이 유독 컸던 것 같다. 판소리나 민화 혹은 민요를 포함한 전통이라는 호명들 속에서 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엇이 우리를 전통에 목말라하게 했는지 보다 세밀한 추적들이 있어야겠지만 어느 한 시대 예컨대 구한말의 풍경들을 오리지널로 인식하는 태도는 어떤 측면에서는 막무가내이기도 하다. 남북한 민요에 대한 각각의 관점들은 지난 70년간 생각이 다르고 접근 방법이 달랐음을 보여주는 증표들이다. 담양사람 박동실과 나주사람 안기옥이 분단 이후 북한에서 인민배우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다가 숙청당한 이유와도 연관된다. 박동실은 북한의 성악을 안기옥은 북한의 기악을 일으켜 세우려 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숙청당했다. 북한이 토속민요에 기반한 창작민요를 중시하게 된 것은 주체사상을 토대 삼은 북한 문화 전반의 재구성 때문이다. 후문에 의하면 민족성을 담보한다고 인정했던 남도의 소리 곧 남도창이 주체사상과 주체문화와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한다. 남한과 북한 민요의 구조가 다르다는 뜻일까?

남북한 민요의 랑그와 파롤, 무엇이 같고 다른가

전남대학교에서도 강의했던 백대웅은 구조주의 언어학을 창안했던 소쉬르의 이론을 받아 한국음악의 랑그(Langue)와 파롤(Parole)을 얘기한 바 있다. 사회적이고 체계적인 측면을 랑그라 하였고 구체적인 발화의 실행과 관련된 측면을 파롤이라 했다. 문제는 남한과 북한에서 얘기하는 민요분석 틀의 편차다. 남한의 민요이론은 이보형의 주장에 의지하는 바 크다. 예를 들어 남도지역을 육자배기토리권이라고 호명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토리론'이 그 중심에 있다. 지역의 언어를 '사투리(19세기에는 ᄉᆞ토리)'라고 호명하듯 지역의 노래를 '토리'로 이해하는 방식이다. 북한의 민요이론은 리창구의 주장에 의지하는 바 크다. 민요의 조식(mode)이 5음음계로 구성되었으며 5개의 조식은 3음렬(tetrachord)결합이라는 학설이다. 하지만 내가 아는 한 북한도 남한의 토리론을 참고했다. 민요는 크게 문학과 음악으로 대별할 수 있다. 남한의 민요 문학이론은 주로 강등학의 분류와 MBC민요대전의 분류에 의지하면서 지역별 특성, 토속성을 강조해왔다. 북한은 민족성, 민중성, 대중성 등을 강조해왔다. 남한으로 치면 통속적이면서 창작민요에 해당하는 음악들이 언필칭 전통음악의 우위를 점한 이유는, 그 안에 이른바 주체사상을 담아내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남북한 민요의 랑그와 파롤은 같은가 다른가. 실제 북한의 민요는 서양음악에 기대는 바 크다. 그러면서도 악학궤범에 의지하기도 한다. 이중적이라고 할까 중의적이라고 할까. 주체와 민중, 대중을 민요라는 틀에 담아내기 위한 고육책일지도 모른다. 랑그의 같음과 틀림을 말하기 이전에 접근의 태도와 풀이하는 해석의 결이 다르다는 점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뿌리가 같으니 남북한 민요는 같은 것이요, 지역이 다르니 다른 것이다. 남한은 외세에 대한 반응인지는 몰라도 토속적인 것과 전통적인 것을 강조하는 반면 북한은 주체사상을 포획할 수 있는 창작과 재구성 쪽을 강조한다. 북한의 전통악기를 이른 시기에 개량하여 서구화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북한은 오랫동안 미국의 경제제재 등으로 인한 심각한 압박을 받고 있다. 민요는 물론 전통음악 자체를 주체 강조 쪽으로 재구성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라고나 할까. 이들도 전통을 강조한다. 하지만 그 전통이 남한에서 얘기하는 전통과는 결이 다르다. 궁중음악은 지배계급의 음악이기 때문에 배제하면서도 악학궤범은 준용한다. 조선의 정체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민중적인 것, 그 중 가장 대표적인인 것으로 민요를 내세우고 그 안에 주체사상을 담아왔다. 조선노동당 정책에 부합하는 계급성, 민족성, 대중성을 담아낸 장르가 북한의 민요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이 함께 할 수 있는 지역성과 토속성을 갖춘 노래를 예로 들어본다. 남도지역의 농부가(판소리 춘향가에 삽입되어 있음), 상주 모심기, 쾌지나칭칭나네, 옹헤야 등이 대표적이다. 진도아리랑도 좋다. 인천지역의 굴 캐는 소리 나나니타령, 소연평도 난봉가, 경기도의 방아타령, 아리랑의 토대가 되는 강원도의 긴아리, 자진아리도 좋다. '긴아리'는 '용강긴아리'라 하고 '자진아리'는 '용강타령'이라 한다. 모두 남북 비교에 적합한 민요들이다. 황해도는 조기잡이 배치기소리의 원산지다. 황해 전반을 관통해 진도 조도 닻배노래까지 이어진다. 서해를 관통하는 민요이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하고 북한에서도 뱃소리 등을 창작했기 때문에 비교가 가능하다. 동해쪽은 명태잡이소리가 좋다. 강원도 양양에서 나진 선봉까지 관통하는 노래다. 함경도 어랑타령은 이미 남한에도 퍼져있는 노래다. 함경도 민요 흘라리요 등도 좋다. 평안도의 대표적인 노래들이 창부타령조이니 경기민요와 비교가 용이하다. 아리랑은 나운규 이후 창작되어 남북한이 공유하는 노래다. 북한이 주목하는 민요는 기능적으로는 민족성, 당파성을 지니고 음악적으로는 지역성, 창작성 등의 특성을 지닌다. 남한의 민요는 창작보다는 지역성과 전통성(상속성)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남한의 시각으로 보면 북한민요는 창작민요가 많고 주체사상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탑재했기 때문에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시각으로 보면 남한의 민요는 지역의 범주를 채 벗어나지 못한 봉건적 노래일 수 있고 계급에서 벗어나지 못한 노래의 전형일 수 있다. 두 가지 상반된 시각으로 보면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의 DNA라 호명되기까지 하는 아리랑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강원도 자진아리의 편곡에 불과한 나운규의 아리랑이 일대 호응을 얻으면서 한민족 전반으로 퍼졌다. 남한은 그 전통적인 데 초점을 맞추고 북한은 집체무 등 창작 쪽에 초점을 맞추었다. 한 때의 민요학자들 오판으로 유네스코에 공동등재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아쉽지만 지금이라도 방법을 달리해 교섭해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어려운 때일수록 기본으로 돌아가고 혼잡한 때일수록 미래를 준비해갈 필요가 있다. 나는 지금의 교착상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 본다. 시대의 큰 흐름이 시작 된지 오래되었다. 그 장대한 흐름을 몰상식한 이념이나 이데올로기로 막을 수 없다. 한해륙(한반도)에서 생성되고 상속되어 끊임없이 변화해온 노래들의 같고 다른 점들을 주목하고,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더불어 노래할 날을 기대한다. 남북한의 교착상태를 풀어줄 키워드로 민요만한 것이 없다.

남도인문학팁

민요 연구와 실천을 통한 남북한의 소통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1989년 9월 11일 국회특별연설을 통해 노태우대통령이 제시한 제6공화국통일방안이다. 핵심은 과도적 통일체제 남북연합이다. 남북연합을 구성해 남북간 개방과 교류협력을 실현하자는 취지다. 북한은 1민족 2체제의 '고려민주연방공화국'을 계속 주장해왔지만 2000년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6.15남북 공동선언'으로 발전했다.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으므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나가기로 한 합의다. 한민족 공동체니 같은 뿌리니 하는 언설들이 갖는 함정들을 인정하고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런 점에서 한민족공동체 등의 호명은 삼가거나 폐기하는 것이 맞다. 70년 넘도록 소통하지 못하고 떨어져 살았기 때문에 서로 변한 것이 너무 많다. 같은 것보다 서로 다른 측면들을 얘기하고 존중하는 맥락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답이다. 민요 또한 마찬가지다. 통속민요 중심인 북한과 토속민요 중심인 남한의 민요를 획일적으로 비교하거나 한민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다. 현 단계 내 생각은 오히려 북한과 남한 민요의 다른 점들을 찾아내고 그 의미를 읽어내며, 그 다름을 존중하는 작업들에 있다. 이것이 북한의 의도를 존중하고 접근을 용이하게 하는 방법론이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 북한의 리창구와 공명성, 남한의 이보형과 백대웅, 김영운, 강등학 혹은 배인교, 김정희 등 소장학자들의 민요기능론과 음악분석론 등을 한자리에 놓고 비교해보는 일부터 시작해봐야겠다. 갈 길이 멀어 보이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 민요가 남북 한자리에 모여 논의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8년 한국민속학자대회에서 불발된 남북한 민요학자 혹은 노래꾼들의 만남을 다시 추진해볼 일이다. 남북한이 만날 때마다 아리랑이나 목포의 눈물을 격의 없이 합창했던 이유를 보다 근본적으로 살펴보자는 다짐을 내 소회에 대한 질정의 요청과 더불어 청해둔다.

2018국민대통합 아리랑공연이 전남 진도군 진도향토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려 칸 무용단이 홀로아리랑(춤으로 보는 아리랑의 멋)을 선보이고 있다. 전남일보 자료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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