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데… 몸 누일 방 한칸 없는 양정마을 주민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추석인데… 몸 누일 방 한칸 없는 양정마을 주민들
●구례 양정마을 임시주택 입주 상황|| 임시주택 겨우 1개동 완성 ||여전히 임시보호소 거주 ||집 앞 텐트서 숙박하기도 ||임시보호소마저 25일 퇴거 ||주민들 “우린 어디로 가나?” ||지자체 “숙박업소 등 대안 모색”
  • 입력 : 2020. 09.23(수) 17:55
  • 최원우 기자

수해로 집을 잃은 양정마을 안재민씨가 자신의 빈 축사에 텐트를 설치하고 생활하고 있다.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차례는커녕 당장 찬바람 피할 곳을 찾아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해로 집과, 일터 등 모든 것을 잃은 지 43일이 지난 구례군 양정마을 주민들이 바로 그런 처지다. 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재해 보상은 커녕(본보 2020년 9월 7일자 4면 "수십년 살면서 세금도 냈는데 무허가라 보상 없다니") 임시 주거주택의 설치마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이들이 머물고 있는 이재민 대피소인 임시주거시설의 계약 기간이 25일까지인 탓에 주민들은 추석을 길바닥에서 보내야 할 판이다.

23일 오전 10시께 구례군 양정마을.

마을 입구에는 '환경부와 한국수자원공사는 죽은 소를 살려내라'고 적힌 검은 깃발이 가을바람에 나부꼈다. 마을 곳곳에는 '댐 대량 방류가 섬진강 수해참사의 원인!', '구례군을 수장시킨 수자원공사 해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마을 주민들의 분노가 사방에 느껴지는 이곳은 벌써 수해가 발생한 지 43일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는 점에서 '과연 이럴 수 있나'라는 의아함까지 자아내게 한다.

입구에서 만난 마을 주민 이근호(43)씨는 "상황은 암담하고 처참하지만, 넋 놓고 있으면 뭐합니까. 농사를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날 이씨를 포함한 주민 3명은 휘어진 철제 구조물을 다시 펴거나 분리해 바깥으로 끌어내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실제로 마을 주변의 비닐하우스는 대부분이 아직도 엉망이었다. 비닐은 찢겨진 채 방치돼 있었고 철제 구조물은 휘어지거나 내려앉아 있었다. 당연히 비닐하우스에 농작물 또한 멀쩡한게 있을 리 없었고, 썩은 농작물과 온갖 쓰레기들은 아직도 치워지지 않은 채 군데군데 쌓여 있었다.

축사도 멀쩡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부분 소가 보이지 않았고 일부 축사에는 살아남은 몇몇 소들이 부상을 입고 끙끙대고 있었다. 마을 주민 대부분의 생계수단인 소는 지난번 수해로 인해 737마리가 폐사됐다.

배금봉(58)씨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소들이 사라졌는데 한 마리당 고작 100만원 밖에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여기에 마을 주민들은 지금 당장 생존하는 것도 버거운듯 했다.

자신의 상황을 보여주겠다는 안재민(70)씨를 따라가자 족히 30평은 넘어 보이는 빈 집터 위에 조그마한 컨테이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안씨에게 "혹시 임시주거주택을 제공 받으신 거냐?"고 묻자 그는 "주긴 뭘 줘! 준다고 말만하고 아직까지 준게 하나도 없다"고 답했다.

안씨는 이어 "며칠 전까지만 해도 축사에 텐트를 치고 지내왔다"고 화를 냈다.

안씨가 보여준 컨테이너는 원래 농사도구를 보관하던 창고였지만, 머무를 곳 없는 안씨를 위해 조카 김모씨가 옮겨다 설치해 둔 것이다. 그렇게 그는 6평 남짓한 크기에 이불 3개와 일회용품, 그리고 밥솥과 커피포트가 전부인 컨테이너에서 추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안씨는 "컨테이너에서 잠을 자고 있지만, 날이 점점 추워져 버티기가 힘들다"며 "추위를 해결해야 되는데 가진 돈도 없다. 읍에서 제공한 이불로 겨우겨우 살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난 11일이 먼저 떠난 남편의 제삿날이었는데, 제사도 제대로 못 지냈다"며 "추석은 다가오는데 침수된 집도 아직 제대로 수리하지 못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피해 당시에는 집과 키우던 소가 다 없어진 탓에 죽으려는 생각까지 했다"고 말했다.

마을이장 전용주씨는 "구례군이 홍수피해를 입은 이재민들에게 추석 전까지 임시주택을 제공하기로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왜 보상과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고 주민들을 방치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고 답답함을 표현했다.

전 씨의 말을 확인해 본 결과 당초 이곳 양정마을에 제공돼야 할 임시주택은 16개동이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이날까지 마을에 설치된 임시주택은 1개동뿐이었다.

이재민들은 여전히 친인척 집에 머무르거나 텐트와 임시주거시설에서 살고 있었다.

더욱이 임시주거시설인 농협 연수원은 25일까지만 계약된 탓에 그날까지 임시주택이 제공되지 못한다면 이재민들은 길바닥에서 자야 한다.

이와 관련 구례군 종합민원과 관계자는 "컨테이너를 제작하는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제공일에 설치되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재민분들에게 추석 전까지는 꼭 제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구례군 주민복지과 관계자도 "임시주택이 25일 전에 제공되지 못할 상황을 대비해 다른 대피시설을 마련 중"이라고 답했다.

관계자들의 답변에도 마을 주민들은 그저 허탈함과 분노만이 차오를 뿐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서는 길에 한 주민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우리가 사람으로 안 보이니 그런 거야. 차라리 내가 죽어야지… 이런 취급을 당하고 살아서 뭐하나 싶어"라는 말이 지금 그들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했다.

이재민에게 제공될 임시주택 16동 중 1동 만이 설치돼 있다.

최원우 기자 wonwoo.cho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