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12> 생태와 동시대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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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조사라의 현대미술 산책 12> 생태와 동시대 미술
인간에 의한 새로운 시대 ‘인류세’…미술계 담론으로 부상 ||국제 비엔날레 현장에서 기후 변화와 생태계 붕괴 환기 경향 ||1960년대 대지미술에서 확장…예술로 환경 문제 적극적 개입
  • 입력 : 2020. 09.27(일) 14:09
  • 편집에디터

올라프 엘리아손, '날씨 프로젝트', 2003, 출처 올라프 엘리아손 홈페이지

2003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터빈 홀에는 2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몰렸다.

거대한 인공태양과 뿌연 안개로 가득 찬 공간에서 사람들은 빛의 파동 안으로 소멸해가는 듯하다. 노란 빛을 발산하는 수백 개 램프로 만든 둥근 인공태양은 인간을 압도하며, 공기 중에 미세한 안개는 시야를 가려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지구 온난화와 기후 환경 문제 등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뤄온 올라프 엘리아손(Olafur Eliasson)의 대표작 '날씨 프로젝트'이다. 코로나로 인해 일상이 순식간에 수증기 마냥 증발해버린 인류의 오늘을 작가는 예측이라도 했던 걸까?

네덜란드 화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가 도래했다고 주장한다. 거대한 가속도의 시대를 거치면서 지구 시스템에 균열이 일어났고, 자연 파괴와 이상 기온, 지구 온난화 등으로 환경 체계도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대체나 코로나-19가 창궐한 원인으로 기후 변화와 생태계 붕괴가 지목되는 것을 보면 '지구의 몸살'이 체감되어진다.

환경과 생태, 기후 변화 등 인류를 둘러싼 이슈와 인간에 의한 새로운 시대인 인류세에 대한 담론은 2000년 이후 미술계 화두로 떠올랐다. 아놀드 하우저(Arnold Hauser)가 예술을 사회적 산물로 인식하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바라봤듯, 동시대 미술은 사회 변화를 예측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해오고 있는 것이다. 1960년대 도시화와 근대화에 근간한 모더니즘에 대한 반작용으로 화이트큐브 미술관을 벗어나 대자연을 무대로 한 '대지예술'에서 확장되어 동시대 미술은 자연과 생태, 기후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미술관 안팎으로 적극적으로 개입시킨다.

앞서 언급한 올라프 엘리아손은 그린란드에서 가져온 빙하들을 파리와 코펜하겐 등의 광장 바닥에 놓고 녹이는 작업을 비롯해서 올해 4월 '지구의 날' 50주년을 맞아 지구촌 환경 이슈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지속하고 있다.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는 최근 거미와의 공생 작업 등을 통해 기후 변화, 환경과 인간 삶의 관계망 등에 대해 말한다.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모듈형 철제 구조물 '클라우드 시티'는 생명체의 유기적인 네트워크와 순환성을 형상화하며 화석 연료 자원을 벗어난 미래지향적인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첨예한 동시대 담론의 장인 비엔날레 현장에서도 기후 변화와 생태 의식을 환기하는 경향들이 목격되고 있다.

프랑스 출신 큐레이터 니콜라 부리오(Nicolas Bourriaud)가 지난해 총감독을 맡은 제 16회 이스탄불비엔날레는 지구 온난화와 쓰레기 더미 등 인류세의 특징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러한 전략은 주제 '일곱번째 대륙'에 잘 드러난다. '일곱번째 대륙'은 태평양에 떠다니는 터키 땅 보다 5배나 큰 규모의 쓰레기 더미 섬을 의미한다.

같은 해 열린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에는 기후 변화의 현실을 퍼포먼스로 극대화한 리투아니아관이 차지했는데, 인공해변으로 조성된 전시장 안에서 퍼포머들이 해수면 상승으로 사라져가는 해변 등 환경 재앙에 대한 노래를 부르면서 경각심을 일으켰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 눈 예술상을 수상한 문경원과 전준호의 영상작품도 급격한 기후 변화 속에서 생존자에 관한 내용이다. '세상의 저편'은 미래의 환경과 시간을 살아가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배우 이정재와 임수정이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밖에 타이베이비엔날레도 2018년 자연 생태계 문제를 주창했으며, 연이어 올해에도 환경 생태학적 영역에 정치와 외교적 전술을 도입했다.

인류가 맞닥뜨린 세 번째 세계대전이라고 할 수 있는 팬데믹은 사회 전반의 패러다임 재조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사회 체제를 지탱해온 합리주의와 이성에 대한 불신으로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가 생겨났듯이 팬데믹 이후 예술의 담론과 형질은 어떻게 진화해나갈까?

우리는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누렸던 보통의 삶과는 결별하고 전혀 다른 새로운 오늘과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의 과학자 앨런 케이(Alan Kay)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했듯, 개발 중심에서 생태 중심으로 새로운 미래가 창조되어야 할 전환의 시점에 우리는 위태롭게 서있다.

올라프 엘리아손, 'Earth Perspectives', 2020, 출처 올라프 엘리아손 홈페이지

토마스 사라세노, '클라우드 시티', 2017, 출처 토마스 사라세노 홈페이지

문경원·전준호, '세상의 저편', 2012, 제공 (재)광주비엔날레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