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서 역사로' 나주 흥룡사터 발굴에 거는 기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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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전설에서 역사로' 나주 흥룡사터 발굴에 거는 기대감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 입력 : 2021. 03.23(화) 14:12
  • 박간재 기자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저 안쪽 숲속이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온 집터가 발굴된 장소입니다."

지난 2015년 취재차 렌터카를 몰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스위스로 가던 중 가이드가 들려준 얘기다. 어릴적 두 딸에게 읽어줬던 동화 '헨젤과 그레텔'의 실제 장소가 이곳이라니. 컴컴한 숲을 보며 감격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독일 서남부 바덴-뷔르템베르그주 어디쯤이었던가 보다. 그 숲이 유명한 흑림(Schwarzwald)이다. 남북 160㎞, 폭 50㎞이며 높이 20~30m의 전나무와 가문비나무가 빼곡했다. 중세시대 독일에서도 가난 탓에 영아를 숲에 버리는 일이 흔했던 모양이다. 헨젤과 그레텔이 빵 부스러기를 뿌리며 돌아오는 길을 표시했다는 얘기를 그 숲에 들어가 본 뒤에야 이해가 됐다.

헨젤과 그레텔의 실체를 규명해 보겠다는 독일 한 역사교사가 팔을 걷어 붙였다. 마침내 불에 탄 흔적의 집터를 찾아냈고 유골도 수습했다. 전설이 역사로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전세계인들의 최고 관광지가 됐다. 유골을 조사한 결과 "동화속 마녀는 할머니가 아니고 젊은 여자였다"는 얘기를 나누며 알프스 산맥을 넘었고 취재 장소인 스위스 '에멘탈 치즈' 농장에 도착했다. '톰과 제리'에 나오는 그 구멍 숭숭 뚫린 치즈를 만드는 곳 말이다.



"어? 이건 '국토(國土)'네, 이건 '토내(土內)', 이건 '대(大)이고….' 1979년 2월 24일. 충북 한 향토연구모임 예성동호회 회원들이 중원군 입석마을에 있던 비석의 한자를 읽고 있었다. 이 비가 바로 한반도에서 발견된 고구려 유일의 비인 '중원 고구려 비'다.

예성동호회는 1978년 9월 당시 유창종 충주지청 검사(현 유금와당박물관장)와 장준식(전 충청대 교수) 충주 북여중 교사 등이 결성한 답사모임이었다. 이 동호회는 봉황리 마애불상군(보물 1401호)을 찾았고 고려 광종(재위 949~975)이 954년(광종 5년) 어머니 신명순성왕후를 위해 세운 숭선사(사적 445호) 위치를 알려주는 명문기와도 확인했다.

향토동호회가 찾아낸 값진 결과였다.



"태조 왕건이 자신의 두번째 부인 장화왕후를 위해 지어 줬다는 흥룡사터가 확인 됐어요."

올해 초 나주를 찾았다가 한 역사 연구가에게 들은 얘기다. 장화왕후는 왕건이 나주 어느 우물가에서 한 처녀에게 물을 한잔 부탁했는데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주며 체하지 않게 마시라고 건넸다는 그 처자다. 고려 두번째 왕인 혜종의 어머니다. 그동안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 장화왕후를 위해 지어줬다는 흥룡사 얘기가 문헌에만 나올뿐 위치를 찾을 수없었다. 나주시민들에게 좀처럼 풀리지 않는 화두였다. 일설에는 숭불정책을 편 고려 대신 조선시대는 억불정책을 폈기 때문에 폐사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행히 나주 향토사를 연구하는 윤여정(전 나주시 공무원·65) 나주문화원 부원장이 20여 년의 추적 끝에 흥룡사터가 표기된 기록을 찾아냈다. '흥룡사는 영산포역 작은 구릉 너머에 있다'는 글귀 한 줄에 매달려 발품을 판 결과였다. 1915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철도여행안내' 책자, 1931년 영산포에서 태어난 일본인 좌굴신삼(사오리 신조)씨가 쓴 책에 단서가 있었다. 책 제목은 '영산강하류역의 문화(전편) 광주항일학생사건'이다. 좌굴신삼씨가 쓴 책에는 분명하게 흥룡사(처음엔 흥륭사로 했다가 후에 흥룡사로 정정)터가 표시된 지도가 보인다(본보 2월25일 1·2·3면, 3월 11일 9면 게재). 책자에 지목된 흥룡사터는 현재 나주시 삼영동 운전면허시험장 위쪽 산자락으로 확인됐다.

흥룡사 관련 유물도 있다. 국립나주박물관 1층 현관에 전시된 석등이다. 조선총독부가 펴낸 '고적 및 유물대장-전남도 고적 및 유물조사서'에 '고려시대 흥룡사 사찰에 부속된 석등이라 전한다'고 나와 있다. 흥룡사터 바로 아래에 모셔 졌다는 미륵불도 현재 나주 삼영동에 있는 내영사 2층에 모셔져 있다. 장화왕후 후손인 나주오씨 종친회(회장 오종순)의 역할도 한몫 했다. 그동안 장화왕후 관련 장소로 알려진 곳은 즉시 매입해 보존에 앞장 서왔다.

흥룡사터 발견이 갖는 의미는 많다. 향후 남북이 머리를 맞댈 수도 있어서다. 나주만이 호남 유일의 왕을 배출한 곳이며 고려 34명의 왕 중 두번째 왕이자 장화왕후의 아들인 혜종만이 나주에서, 나머지 33명은 개성에서 태어났다. 고려개국 일등공신 지역인 나주와 개성이 고려사를 재조명하는 남북 공동학술대회를 열어도 된다.

초·중·고생을 대상으로 '왕이 태어난 곳'을 찾는 체험학습도 가능하다. '왕이 될 자녀를 잉태하는' 예비부부들의 발길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도 기대해 볼만하다.

본보 보도 이후 나주시도 흥룡사터 찾기에 본격 나섰다.

지난 11일 강인규 나주시장은 "영산강 유역의 독자문화였던 고대를 넘어 가장 풍족하고 흥성했던 고려시대 나주의 옛 모습을 되살리는 데 앞장 서겠다"며 "흥룡사터를 시작으로 발굴작업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현재 전남도 문화재위원들이 현장조사를 마쳤고 현장조사 의견서, 지표조사, 지표조사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조만간 결론이 나면 본격 시굴 및 발굴, 복원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의미있는 조사가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 덴마크 인어공주 동상 등 전설을 스토리텔링화 해 관광지가 된 곳은 많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의 러브스토리를 간직한 흥룡사터가 전세계 관광지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구전의 전설'을 '실존의 역사'로 바꾸는데 함께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다.

박간재 기자 kanjae.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