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대체불가능한 기술이 세상을 새롭게 대체한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전일칼럼
총괄 콘텐츠 디렉터 김홍탁의 '인사이트'〉대체불가능한 기술이 세상을 새롭게 대체한다.
김홍탁 CCO
  • 입력 : 2021. 04.04(일) 14:37
  • 편집에디터

김홍탁 CCO

20세기초까지 대부분의 화가들은 눈에 보이는 사물을 한땀 한땀 정성들여 캔버스에 옮겼다. 성경과 신화의 사건을 그리고, 사람을 그리고, 자연을 그리고, 정물을 그렸다. 우리는 그 그림을 통해 당대의 생활상과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다. 고흐가 그린 '감자 먹는 사람들'엔 한 농부 가정의 일상적인 저녁식사 모습이 드러나 있다. 당시의 소박하지만 경건한 저녁 일상을 엿볼 수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은 단 하나의 원본으로 존재하고, 원본이 가진 분위기 역시 고유한 것으로 존재한다. 개개의 원본이 뿜어내는 이러한 고유의 분위기를 아우라라 칭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피카소의 '우는 여인', 앙리 마티스의 '춤' 등 단 한 작품의 원본으로 존재하는 모든 예술품은 고유의 아우라를 가지고 있다. 개인이건 갤러리건 어떤 작품을 소유한다는 것은 작품과 함께 그 작품이 가진 고유의 아우라를 함께 소유함을 의미한다.

1960년 광고회사에서 일하던 그래픽 디자이너 앤디 워홀이 미술계로 뛰어들었다. 광고계에서 대중예술의 작동 원리를 익힌 그는 팝아트라 불리는 대중예술의 문을 열었다. 그가 그림의 소재로 채택했던 것은 성경이나 신화의 소재도 아니었고, 귀족의 초상도 아니었으며,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도 아니었다. 그는 캠벨스프, 코카콜라, 브릴로 비누, 영화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가장 대중적인 오브제를 다뤘다.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심미안과 자본을 가진 일부 특권층이 아닌 대중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예술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던 그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었다. "내가 먹는 햄버거나 대통령이 먹는 햄버거는 똑같다"라는 자신의 팝아트 철학을 반영한 발언 역시 팝아트적이었다.

예술 작품이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기 위해서는 단 하나의 원본이 아닌 대량생산이 필요했다. 워홀은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판화처럼 많은 작품을 찍어냈다. 대중예술의 컨셉트에 맞는 대량생산 시스템을 생각해 낸 것이다. 자신의 작업실도 스튜디오가 아닌 팩토리라 불렀다. 수많은 작품에 싸인을 해야 했기에, 그의 어머니가 대신했다는 루머도 전해진다. 그 모든 활동이 팝아트적인 상상력에 기댄 것이다. 그의 작품은 더 많은 사람이 소장하고 더 널리 알려졌지만, 이전 시대 작품처럼 하나의 원본이 가진 고유의 아우라는 많이 상실됐다. 작품 100개를 찍어냈다면, 아우라도 1/100로 나눠지는 것일 터이다. 한 마디로 앤디 워홀은 대중 예술의 특징을 적확하게 정리한 기념비적인 논문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예술의 세속적 확장' 이란 주장을 제대로 실천한 예술가였다.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며 원본과 복제본의 구분이 없어졌다. 한 사진작가가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인터넷에 올렸을 때 무한 복제가 가능해졌다. 작가의 소유를 주장하는 방법은 상업용도로 무단 복제 활용 시 엄벌에 처한다는 정도다. 원본의 퀄리티와 전혀 차이가 없는 이미지를 무한 복제할 수 있다 보니 아우라가 설 자리도 없어졌다. 최근 '대체불가토큰'을 뜻하는 NFT(Non Fungible Token)가 도입되며 이러한 디지털 아트 생태계에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블록체인 시스템을 활용해 어떤 작가든 자신의 디지털 작품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원본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게 됐다. 지난 달 3월11일 경매에서 작가 비플Beeple의 디지털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days)' 은 무려 800억원에 입찰됐다. 소셜미디어나 문자를 통해 하루에 셀 수도 없이 업로드되는 그 흔한 jpg 하나에, 그것도 소유권만 있을 뿐 벽에 걸어 놓을 수도 없는 작품 하나에 천 억에 가까운 가치를 입힌 것이다. 작가 자신도 미쳤다!는 말 한마디로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고흐가 그림을 그리던 시절처럼 디지털 이미지도 유일한 원본임을 입증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술사에 또 하나의 챕터를 추가해야 할 때가 왔다.

단 하나의 원본과 아우라가 존재하던 시대에서 여러 개의 복제된 원본과 희석된 아우라의 시대를 거쳐, 이제 아우라는 사라졌지만 단 하나의 디지털 원본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더 나아가 만약 한 작가가 자신의 디지털 작품을 100개의 픽셀로 쪼개 100명에게 판매한다면, 하나의 원본을 100명이 공동 소유하는 형식도 곧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계를 바꾸는 것은 역시 기술이다. 대체불가능한 기술이 완전히 대체된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

#NFT #원본과아우라 #생태계를바꾸는기술 #대체불가능한기술로대체되는세상

작가 비플Beeple의 디지털 작품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days)'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