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가린다" 민원에 가지 싹뚝…가로수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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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복지
"간판 가린다" 민원에 가지 싹뚝…가로수 수난시대
생육 고려 3월 이전 실시 바람직||구청 예산편성 후로 미뤄 ‘늦장’||과도한 작업에 1853주 벌목수준||적정 가지치기 매뉴얼 마련 시급
  • 입력 : 2021. 04.19(월) 16:47
  • 조진용 기자

지난 15일 광주 서구 월드컵4강로 한 도로변에서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있다.

광주 도심 가로수가 혹사를 당하고 있다. 새잎이 자라는 3~4월께 벌목 수준의 가지치기로 수난을 겪고 있어서다. 가로수 가지치기는 3월 이전이 적절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지자체가 겨울이 아닌 3~4월에 가지치기에 나서는 데는 예산편성 지연도 한몫 하고 있다. 가로수 가지치기가 생육환경 조성이 아닌 가로수 근처 상가측이 제기하는 민원해결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점도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온도 조절, 소음 차단, 탄소 흡수 등 도시민에게 이로운 도심 가로수가 수난을 겪고 있어 이에 대한 보호와 생육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서구 월드컵 서로에 있는 가로수가 강한가지치기로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 뒤늦은 가지치기에 뼈대만 남은 가로수

지난 15일 광주 서구 월드컵서로·4강로. 전정작업 차량이 도로변 가로수 가지치기 작업에 한창이다. 전기톱이 굉음을 내며 나뭇가지에 닿는가 싶더니 이미 잎이 무성하게 자란 큰 나뭇가지들이 뭉텅이로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지고 있다.

4월 새싹이 돋아 연두빛으로 물든 가로수들이 가지치기로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우두커니 서있다. 뒤늦은 가지치기 작업이 광주 서구 뿐 아니라 광주 도심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잇따른 민원과 예산집행이 늦어지면서 4월에서야 가로수 가지치기에 나서고 있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3~4월 가로수 가지치기는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가지치기는 나무의 균형을 돕고 통풍이 잘되게 함으로써 가로수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해 하는 작업이다. 가지치기는 △약한 가지치기(약전정) △강한 가지치기(강전정)로 나뉜다. 민원인의 경우 강한 가지치기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가로수의 수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박용식 한국숲해설가협회 광주지부 사무처장은 "봄철 새순이 나고 가지가 뻗어야 하는 시기에 하는 '강한 가지치기'는 가로수에 해롭다"며 "올바른 가지치기는 새싹 트기 시작하는 3월 이전과 겨울에 해야 하는데 광주시 5개 구는 3월~4월까지 강한 가지치기를 하고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광주시가 뒤늦게 가지치기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지자체들이 예산편성이 이뤄지는 3~4월이 지난 뒤 민원성 가지치기에 나서기 때문이다.

광주시 5개 구(남구·북구·동구·서구·광산구)는 상가 간판 가림, 낙엽쓰레기 발생, 고압전선 안전사고 우려 등 가로수 관련 민원이 접수되고 있다. 이를 수합해 예산편성이 이뤄지는 3~4월 시기에 '민원형' 가지치기에 나선다.

가지치기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다. 지자체별로 가지치기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한 탓에 외주업체에 위탁을 주다 보니 무분별한 가지치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지를 잘라달라는 민원만 이달 현재 서구 325건이 접수 됐으며 동구의 경우 연 평균 50건에 이른다. 나머지 3개 구(남구, 북구, 광산구)도 집계되진 않았지만 가로수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

광주시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매년 가로수 가지를 쳐달라는 민원이 많다. 책정된 예산 범위 내에서 작업을 하려다보니 약한 가지치기보다는 강한 가지치기로 나서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기준 5개 구청 가운데 예산을 확보해 3월까지 △남구 1800만원(105주) △북구 8000만원(292주) △동구 2800만원(230주)의 가지치기가 완료됐다. 이달 말까지 △서구 1억7200만원(426주) △광산구 8000만원(800주)을 지원할 예정이다.

서구 상무중앙로에 있는 가로수가 강한가지치기로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다.

●"상가간판 가린다" 가로수 제거 민원 이어져

광주시 전체에 식재된 가로수는 16만1854주로 평균 30~40년된 수종이며 은행나무, 이팝나무 등 33종으로 구성돼 있다. 도심 가로수는 온도조절, 소음차단, 탄소흡수 역할을 한다.

가로수의 순기능에도 간판을 가린다거나 낙엽, 악취를 이유로 가로수가 훼손되는 등 수난을 겪고 있다. 이 뿐이 아니다. 폭염, 가뭄, 병해충, 겨울철 염화칼슘 사용 등으로 고사하기도 했다. 지난해 광산구 45주, 북구 60주, 동구 3주가 말라 죽었다.

가로수를 제거하자며 주민투표까지 한 곳도 있다.

지난 2019년 장성군 선산마을 주민들이 장성군에 도로변 0.5㎞ 은행나무 가로수를 없애자는 민원을 접수했다. 가을철 멋진 장관을 연출하지만 상가 간판을 가리고 주변 시설물에 피해를 주고 있어서였다. 설문조사 결과 주민 72%가 가로수 제거를 동의했지만 가스관과 상하수도관이 매설돼 있어 예산을 확보한 뒤 올 연말까지 황룡강변으로 옮겨 심기로 했다.

●무조건적 강한 가지치기 안돼

환경 전문가들은 무차별적 가지치기는 가로수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입을 모았다.

최진우(서울시립대 조경학 박사)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는 "현재 이뤄지는 강한 가지치기는 나무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만 주는 꼴"이라며 "생육 문제로까지 이어져 가로수 효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가지치기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지역 대학 산림 관련학과 교수는 "국제수목학회 수목관리 가이드라인에는 가지의 25% 이내에서 잘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산림청 규정에는 정확한 기준이 제시돼 있지 않다"며 "일방적으로 강한 가지치기를 하지 않도록 명확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진용 기자 jinyong.ch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