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붕괴 참사>"'승객 먼저 구해주세요' 버스기사 목소리 생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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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붕괴 참사>"'승객 먼저 구해주세요' 버스기사 목소리 생생"
광주 붕괴 참사 구조 최초 투입 동부소방서 김영조 대원||“14년 경력 이런 대형참사 처음 ||인명구조만 6시간 땀범벅 탈진 ||쿠팡화재 사망한 소방대원 애도”
  • 입력 : 2021. 06.22(화) 17:46
  • 도선인 기자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 한 주택 철거현장에서 건물이 무너져 정차중인 시내버스를 덮쳤다. 사진은 소방당국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 뉴시스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가 매몰됐다는 신고에 각오했음에도 전쟁터 같은 현장에 말문이 막히더군요. 14년 구조대로 일하면서 광주서 이런 참혹한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광주 동부소방서 119구조대 소속 김영조(45) 소방장은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 참사에 대해 묻자 고개부터 저었다. 그만큼 참혹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사고 당일 현장에서 가장 먼저 운림54번 버스에 진입한 소방대원이다.

김 소방장은 "버스가 매몰됐다는데, 콘크리트에 덮쳐서 보이지도 않고 참담했다"며 "버스가 이미 납작하게 찌그러져 있어 구조대원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김 소방장은 혼자서 버스를 비집고 들어가 생존자 8명 중 7명을 최초 구조했다.

김 소방장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가스냄새가 심하게 났다고 기억했다.

콘크리트 잔재물을 걷어내기 위해 보통 절단기를 사용해야 하지만, 불꽃이 튀면 2차 폭발로 이어질 수 있어서 화재위험이 있어 보이는 기기는 전면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현장 초반에는 출동한 구조대원들이 일일이 건축잔재물들을 걷어낼 수밖에 없었다. 김 소방장은 허리를 숙인 채로 찌그러진 좁은 출입문을 지나 버스 내부로 진입했다.

김 소방장은 "천장이 납작하게 가라앉아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깨져 있고 가스냄새, 비명소리가 뒤섞여 버스 내부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 급한 대로 응급처치를 하면서 한 명씩 버스 밖으로 구조했다"며 "버스 중간부터는 버스 형체라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 굴착기로 잔재물을 걷어내면서 후반부 구조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 소방장은 버스에 진입하자마자 발밖에 보이지 않았던 버스기사의 목소리가 귀에 맴도는 것 같다.

"승객 먼저 구해주세요."

김 소방장은 "의사소통도 어려웠던 상황에서도 기사님이 계속 승객을 챙겼던 것 같다"며 "생존자 7명까지 버스 밖으로 보내고 체력이 바닥이 날 정도로 탈진했다. 다른 구조대원이 인계를 받아 기사님이 제일 마지막으로 구조됐다"고 말했다.

구조작업을 끝내고 보니 오후 10시가 넘어있었다. 작업복은 땀범벅 피범벅이 됐고 혹시라도 버스 밖 정류장에 사람이 있었지는 않았을까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면서 밤새 대기했다.

김 소방장은 "여러 교통사고 상황도 많이 봤지만 이런 참사는 처음이다. 모두 구하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라며 "나야 소방관 14년 차지만 이제 막 들어온 소방대원들은 충격이 크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소방청이 발표한 2019년 소방공무원 정신건강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국 소방공무원이 겪는 4대 주요 스트레스 관련 PTSD가 5.6%, 수면장애 25.3%, 음주습관장애 29.9%, 우울증 4.6%로 나타났다.

김 소방장은 이어 "대형참사를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최근 쿠팡물류센터 화재진압 과정에서 최선을 다한 김동식 대장님을 생각하면 남일 같이 않다. 추모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 동부소방서 관계자는 "소방관들이 겪는 가장 흔한 트라우마 증상으로는 긴장 상태 유지, 구하지 못했다는 우울감 등을 꼽을 수 있다"며 "매년 의무적으로 PTSD교육 및 심리상담 프로그램과 대형사고 구조작업 이후 상시로 자가심리테스트, 전문가 1대1 상담 등이 진행된다. 과정이 제도화된 지는 불과 10년이 됐다"고 말했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