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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코로나 팬데믹·기후위기 시대 '노아의 방주'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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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코로나 팬데믹·기후위기 시대 '노아의 방주'는 어디에…

기후위기와 노아의 방주
민주·비민주 담론, 극한투쟁 뛰어넘는
생태와 반생태 아니, 삶과 죽음의 담론
성장·개발 담론을 공생·공존 담론으로
뒤집어엎는 선한 에너지가 절실하다

게재 2021-07-01 16:53:09

무안군 무안읍 매곡리 도깨비굿 이야기를 다시 소개한다. 무안과 함평 일대의 명산이라는 보평산 아랫마을이다. 보평산 정상에는 조선시대 때 만들어졌다고 알려진 봉수대가 있다. 보평산과 감방산 사이에 있는 능성에는 용굴샘이 있어 명산 보평산의 풍수 스토리를 완성해준다. 이 물이 마르거나 마르지 않거나를 가지고 한해의 기후와 운수를 점쳤다. 누군가 몰래 묘를 쓰는 일이 발생하면 이 샘의 물이 말라버린다. 보평산은 명산이고 용굴샘은 그를 보전하는 상징공간이기 때문에 아무리 큰 권력을 가진 자라도 이 산에 묘를 쓸 수 없다. 하지만 자기 자손들만의 발복을 위해 몰래 묘를 쓰는 자들이 있다. 도장(盜葬) 혹은 암장(暗葬)이라 한다. 그럴만한 능력과 사회적 부를 거머쥔 자들이다. 이런 경우 마을에서는 어떻게 하는가? 본 지면에 여러 번 소개했듯이 도깨비굿을 한다. 고을의 여자들이 호미와 낫 등을 들고 보평산을 뒤진다. 결국은 몰래 쓴 묘를 발견하고 파헤친다. 유골들을 흩뿌려 버린다. 그래도 묘지 임자가 되었건 문중이 되었건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일종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명산대천은 공동체의 것인데 마을 사람들 몰래 독점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뭄이나 기근 특히 역병의 원인을 발복이나 사회적 권력의 독점 때문이라고 진단했음을 알 수 있다. 졸저 <한국인은 도깨비와 함께 산다>(다ᄒᆞᆯ미디어, 2021)에 자세하게 소개하고 분석해두었다. 도깨비굿은 기울어진 운동장, 극단으로 흐른 생태적 위기, 사회적 위기를 전복(顚覆)하는 행동의 은유다. 아니, 불순한 기운을 선한 에너지로 바꾸어 균형을 회복하려는 혁명이다.

기후위기와 문명의 상관

글로벌 경제전문가 100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것을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 정상훈이 소개해두었더라. 일부 내용을 여기 인용해둔다. 설문의 요지는 지금 우리 세계가 당면한 가장 큰 위기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93%가 '기후위기'라고 답했다. 빈곤 84%, 물 부족 79%, 전염병 78% 등으로 이어진다. 경제전문가들이 왜 기후위기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을까? 정상훈은 이렇게 분석했다. "지난 2016년 세계은행은 기후변화를 방치하면 2050년까지 158조 달러(18경 5천 729조 원)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한다고 전망했다. 이는 지난 2020년 우리나라 GDP(1조 6240억 달러)보다 100배 가까운 수준이다. 세계경제포럼도 2021년 글로벌 리스크 보고서를 통해 극단적인 기상현상이나 기후변화 대응 실패 등 기후 관련 문제가 '인류에게 실존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로 인한 극단적인 기상현상이나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끼쳐 막대한 손실을 유발하고 더 나아가 인류 생존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는 경고다." 그러면서 기후위기 대응 최선책은 재생에너지의 확대라고 진단한다. 경제뿐이겠는가. 문화적으로도 설명 가능하다. 엘스워스 헌팅턴의 <문명과 기후>(민속원, 2013)에 의하면, 기후와 문명은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며 이렇게 말한다. "전 세계 대분의 지역들은 인구가 상당히 많이 거주하기 때문에 불리한 경제적 변동이 발생하면 이는 곧 곤궁과 질병, 그리고 높은 사망률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다. 좀 더 활동적이고 모험심이 많은 사람은 이주를 택하기도 한다. 경제적 곤궁의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아마도 날씨 혹은 기후 변화(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흉작을 초래하거나 동물들이 먹고 마실 풀과 물을 부족하게 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곤궁은 거의 피할 수 없는 정치적 소요를 불러오며, 이것은 다시 이주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경제적으로 부득이하게 이주한 사람들은 열악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으며, 이 때문에 이들의 숫자는 계속 감소하여 오직 특별히 우월한 자질을 지닌 소수의 집단만이 선택적으로 살아남는다." 끔찍하지 않은가? 예컨대 조선후기 경신대기근처럼 말이다. 만약 그러할지라도 젖과 꿀이 흐르는 지구별의 어떤 땅이 있어 이주할 수 있단 말인가. 빌게이츠는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제안한다. "매년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 510억 톤을 2050년 선진국부터 '순 제로net zero'로 만들자." 여러 가지 정답 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실천하는가이다.

가치관의 거대한 전환기, 진보의 끝자락에 서서

여성 전유의 문화적 혁명이라는 도깨비굿, 그 문명적 은유를 새삼 반추해본다. 구마 겐고와 미우라 이쓰시는, 대담으로 엮은 <삼저주의三底主義, ㈜안그라픽스, 2012>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위대함, 고상함, 고층을 지향하는, 즉 '위에서의 기준'을 들이댄 건축을 선호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저층, 저자세, 작음, 저탄소, 낮은 가격 등이 낫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고속, 높은 마력을 선호하던 시대에서 속도가 느려도, 크기가 작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진보의 끝, 진보의 종말이다. 산업, 기술적인 의미에서 진보의 끝만이 아니다. 인간관계의 형식까지 포함한 진보, 정확히는 진보라고 여겨져 온 모든 것이 막을 내린다는 의미다. 가치관의 근대화가 막다른 곳에 다다른 거대한 전환기다." 명문대학 졸업자, 부유한 집안 출신, 미모가 출중한 자 등을 경외하거나 선호하는 인식도 크게 바뀌었다. 꼴지들의 반란이라고나 할까. 오로지 성장만을 위해 내리달리는 그 가속을 멈춰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했다.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철학가들, 사상가들이 이를 진단하고 주문했다. 예컨대 김지하가 내다봤던 문명사적 전환 같은 것이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불에서 물로, 율려와 동학의 전망 모색 등은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어쩌면 이제야 비로소 비전의 재구성을 도모할 때가 아닌가 싶다. 비유컨대 개발 지향적이고 성장 우선적인 혹은 남성성으로 비유되는 진보담론의 해체가 답일 수 있다. 민주 비민주의 담론이나 극한투쟁을 뛰어넘는, 생태와 반생태 아니, 삶과 죽음의 담론이자 필사의 투쟁 아니겠는가. 코로나 팬데믹 시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 기독교적으로 말하면 물과 불의 심판에 준비했던 노아의 방주 같은 것 말이다. 분명한 것은 방주를 만들 마지막 위기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른바 도깨비굿이다. 성장과 개발 담론을 공생과 공존담론으로 뒤집어엎는 선한 에너지 말이다.

남도인문학팁

기후위기시대, 노아의 방주

목포산돌교회 김경희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할 때 단 한 사람을 남겨뒀다. 그가 바로 '노아'다. 노아란 이름의 뜻은 '멈춤(Stop)'이다. 아크 노아(오직 노아), 이것이 죄악으로 치달았던 세상을 향해 던진 하나님의 마지막 메시지였다." 물 심판뿐이겠는가. 불 심판 또한 마찬가지다. 성장과 개발을 진보로 여긴 인류가 맞닥뜨린 절체절명의 기후위기 시대, 더 이상의 성장과 개발은 안 된다고 'No'할 수 있는 사람, 그것이 '노아'란 뜻이다. 거대한 자본과 반생태적 정치권력의 카르텔을 과감하게 무너뜨리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 말이다. 이들이 생각하고 준비하며 실천하는 것들,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 '방주(方舟)' 아니겠는가. 지금 이 시대, 설령 인류의 마지막 남은 한 사람이 될지라도 '아니오'하며 방주를 만드는 이, 이것이 어쩌면 김대중 대통령이 말했던 '행동하는 양심'의 현재적 버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