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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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신궁의 나라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1. 07.28(수) 16:12
  •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
김성수 정치부장
"퍼펙트골드"

1996년 8월 1일 애틀랜타 올림픽 양궁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개인 결승전 상황이다. 그것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퍼펙트골드였다. 태극마크를 단 김경욱 선수가 쏜 화살이 과녁 정중앙에 설치된 카메라를 두 번이나 맞추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김 선수는 이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70m거리에서 직경 12.2㎝의 10점 과녁, 그것도 정 가운데 점인 정곡(正鵠·퍼펙트골드)을 맞힐 확률은 1만2000분의 1일이라고 한다.

그보다 2년 전인 1994년에는 한승훈 선수가 제1회 국제양궁대회 30m예선에서 60점 만점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양궁 역사상 처음 보는 진귀한 광경에 세계 양궁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둘 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신궁(神弓)이란 호칭이 아깝지 않을 정도다

우리 민족은 유난히 활을 가까이했다. 고구려 벽화 '수렵도'만 봐도 그렇다. 한민족을 뜻하는 동이족을 '동쪽의 큰 활잡이'라 불러지기도 했다. 화살이 버들잎을 꿰뚫는 '천양(穿楊)의 명궁' 정도는 흔했고, 벼룩을 쏘아 관통시키는 '관슬(貫蝨)의 신궁'도 있었다고 전한다.

옛날 활쏘기에 능한 이들은 영웅 대접을 받았다. 고구려 건국시조인 주몽의 이름은 '활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조선왕조를 세운 이성계는 궁술로 홍건족 적장을 제압하면서 세상에 이름을 처음 알렸다.

신궁 선조들의 피를 이어받은 후예들이 올림픽 무대를 호령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2020도쿄올림픽에서 대한민국 양궁 대표선수단은 전설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대회 혼합, 남녀단체전에서 3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여자대표팀은 단체전에서 무려 9연패의 신화를 일궈냈다.

양궁경기장이 해안가에 있는 점을 감안해 선수단은 기후조건이 비슷한 신안 자은에서 바람 등의 변덕스런 날씨에 이미 적응을 마쳤다. 아직 잔여경기인 남·여 단식에서도 금빛 사냥을 계속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대회 전 종목 싹쓸이도 기대된다.

태극전사들의 활약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외신은 "선수들의 이름은 바뀔 수 있겠지만, 한국 양궁의 '통치(dominion)'는 계속될 것이다"(AP통신)고 소개했다. 가히 '신궁의 나라' 답다.



김성수 기자 sskim@jnilbo.com seongsu.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