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기고·안익준> 호남은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 오피니언

기고·안익준> 호남은 전략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

안익준 2001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2021년 ‘안익준, 대통령 만들기’ 저자

게재 2021-09-16 14:22:50
안익준 2001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2021년 '안익준, 대통령 만들기' 저자
안익준 2001년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 2021년 '안익준, 대통령 만들기' 저자

대통령선거나 총선에서 '전략적 선택'이라는 용어로 호남의 정치적 판단을 쉽게 말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

호남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에 별생각이 없는 사람이거나 어떤 의도를 가진 이들의 낮은 수준이자 고도의 지역 폄훼라고 판단한다.

호남의 선택과 민심을 전략적 선택이라고 정의 내리는 것은 일종의 프레임이다. 정치적 의도가 진하게 드리운, 전형적이지 않은 교묘한 정치적 프레임이다. 이 프레임의 근원이 있다. 호남의 반(反)보수 지지율 90%를 공산당 투표율이라고 호도하던 때가 있었다. 악의가 가득한 선동이었다.

전두환 정권이 6·29 선언을 한 후, 모든 TV 뉴스와 신문 지상에서 정권교체라는 용어 대신 정권이양이라고 쓰게 한 역사적 사실이 있다. 단어 하나로 전 국민을 세뇌하는 작업에 돌입해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한다. 정권이양이란 단어는 정부이양으로까지 '발전'한다. 나중에는 그 앞에 평화로운, 순조로운이란 부사까지 곁들여지게 된다. 이는 그냥 평범한 사람들 머릿속에서, 노태우를 뽑는 것이 암암리에 당연한 일처럼 느끼게 해 주는 역할을 기대 이상으로 수행하게 된다.

호남은 호남인의 심정을 이해하고 진정 공감하는 후보에게 일차적으로 마음을 준다. 그리고 그 후보나 그 당의 철학과 비전이, 시대정신과 지역 발전에 어울리는가 그것을 판단한다. 흔히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는 지역이라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 호남의 한(恨) 운운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남인에게 한(恨)이라는 정서는 분명 존재하나 불순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이들의 입에 함부로 오르내릴 개념은 아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조선왕조 한풀이에 비유하고, 바뀐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자들의 과거 집착으로 정의 내리면서 일반 백성을 현혹했다면 독립운동가들의 심정은 어땠겠는가. "이 억울한 마음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서로 더욱더 결속을 다지면서 독립운동에 매진하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겠는가. 이것이 감히 지난 수십 년간 별반 바뀌지 않고 이어진 호남 정서의 근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독립운동이 조선왕조의 부활을 목표로 하는 투쟁이 아니었듯, 호남인의 '몰표' 행위는 지역이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 될 사람 밀어주자는 식의 수준 낮은 계산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호남인의 투표 성향은 그 자체로써 시대정신의 투영이고, 자신들의 옳았던 역사적 행위들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에 대한 끊임 없는 '의병활동'인 것이다.

이재명과 이낙연의 소위 명낙대전이 한창이다. 현실적으로 이 둘 중 하나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될 것이고, 사실상 그 결과는 호남 지역 경선에서 결판날 것이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는 셋이다. 이재명의 압승, '명낙'의 호남대전 무승부, 이낙연 승기 잡음. 각각의 경우에 뻔히 난무할, 평론가라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올 참을 수 없는 가벼운 관전평에 대해 '진실'을 외치고 싶은 심정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다.

우선, 호남인들이 이재명을 과반으로 지지하는 결과가 나왔다면 그것은 이재명이 될 가능성이 가장 크기에 그리로 줄 선 것이라는 말이 나올 텐데, 가당치 않다. 호남인의 의사는 그 자체로서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의 판을 좌우한다. 다시 말해서 호남인의 선택이 민주당의 선택이다. 자신들이 뽑는 사람이 되는 선거인데 누가 누구 줄에 선단 말인가. 그뿐만 아니라 2002년 3월 광주가 노무현을 선택한 이유가 "노무현이 대통령 될 것 같아서"라는 식으로 설명해야 하는데, 말이 되는가?

이낙연이 승기를 잡는 경우를 보자. 이낙연이 전남 도지사를 하면서 지역에 조직을 상당히 잘 마련해 놓았다. 그리고 웬만한 경우 정치인들이 안방에서 선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게다가 이낙연은 국회의원을 사퇴하고 배수진을 치지 않았던가 말이다.

무승부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의미가 있다. 김대중, 노무현, 집권 초기의 김영삼, 문재인 정권 내내, 전폭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은 호남이다. 그런데 이낙연과 이재명을 무승부로 만들었다는 것은 둘 다 미덥지 못하다는 뜻이다.

본선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번 대선에서 호남은 절대로 과거와 같은 '통일된 민심'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이번엔 '김대중'도 '노무현'도 '2012년의 문재인'도 안 보이기 때문이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은 사실상 민주당 후보를 거머쥐는 파란을 일으켰다. 노무현이 광주에서 압도적 1등을 하리라고 예상한 이는 신(神)밖에 없었다. 이인제와 한화갑의 조직력이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지구당 위원장들이 대절한 전세버스를 타고 투표장에 가던 시절이었기에, 광주에 공적 조직이 거의 없던 노무현이 광주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기적 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노무현은 그 모든 열악한 조건을 현장에서 뒤집어버렸다. 역사에 길이 남을 감동의 명연설 하나로 기적을 만들었다. 지역감정 철폐라는 시대정신을 선택했던 것이고, 호남의 역사적 행동들이 옳았다고 믿었기에 DJ와 같이했었노라는 그에게 광주가 마음을 열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연설 듣고 오너(지구당 위원장)의 '오더'를 즉석에서 거스른 대의원과 당원들이 역사를 바꾼 것이다.

호남의 선택을 전략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사에게 깍듯하고 부하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건실한 직장인에게 사회생활 참 전략적으로 한다며 비아냥거리는 것과 다름없다. 시대정신에 입각한 선택을 하는 호남에게 재고 또 재서 될 사람에게 몰표를 준다는 식의 매도는, 아무 생각 없이 짜깁기한 원고를 읽는 무개념이거나, 악한 정치적 의도를 가진 불순한 자들의 교묘한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분명히 천명(闡明)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