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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복제시대에서 유일함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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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펑크>복제시대에서 유일함이 가능할까

슬픈 표정의 개구리 페페
유저들에게 끊임없이 변용
실제 페페 없고 밈만 남아
인터넷서 원본 의미 있을까
인간 욕망 실현시키는 NFT
블록체인 암호화된 그림자산

게재 2021-11-04 17:28:59

슬픈 개구리를 아십니까

방울 같은 눈, 소시지같은 입술을 가진 개구리 페페는 인터넷 유저들에게 사랑받는 캐릭터였다. 큼지막한 두눈에 눈물이 흐르면 세상에서 가장 슬픈 표정의 개구리가 됐고, 게슴츠레 뜬눈에 미소를 머금으면 세상에서 가장 음흉한 개구리가 됐다.

나의 휴대폰과 노트북에는 페페 사진첩이 따로 마련돼 있다. 페페의 기쁨, 분노, 절망이 담긴 표정들을 일일히 저장해두고 채팅방에서 써먹는게 재미였다. 페페의 얼굴은 은근히 불쌍하고 우울해보여서 유저들의 마이너한 감성들을 표현하는 데엔 제격이었다. 유저들이 자주 쓰는 슬픈 표정의 개구리는 너무나 유명한 '밈'이라 나는 해외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며 '레어템'을 찾아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나는 내가 사용하는 페페의 사진이 모두 가짜란 사실을 알았다. 아니, 진짜 페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에겐 더욱 놀라웠다. 페페는 미국의 인디 작가 맷 퓨리가 그린 '보이즈 클럽'에 등장하는 한 캐릭터였고, 내가 '밈'으로 사용하던 페페는 전세계적으로 분포한 유저들이 자발적으로 가공해 배포한 그래픽이었다.

영화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영화 '밈 전쟁 개구리 페페 구하기' 포스터. 네이버 영화 제공

왓챠에서 볼 수 있는 '밈 전쟁 : 개구리 페페 구하기'는 이름 그대로, 인터넷에서 산발적으로 만들어지며 본질을 잃어버린 페페를 구하는 이야기다. 페페는 그 특유의 불쌍한 표정때문에 인터넷 커뮤니티 '4chan'에서 유저들의 찌질한 마음을 대변하는 캐릭터로 사용되다가, 이후 도널드 트럼프 지지자들을 대표하는 캐릭터가 되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변용된다. 결국 우파적 밈을 상징하게 된 페페는 백인 우월주의의 상징이 되며 혐오를 조장하는 아이콘이 된다.

나는 큰 눈과 소시지 입술을 가진 '옆집 친구 페페'가 '은둔형 친구 페페'가 되는 과정이 무섭도록 놀라웠다. 그리고 창작자의 손을 떠난 콘텐츠가 얼마나 빠르게 변용되고 또 변질되는지를 느끼면서 '페페 구하기'가 과연 가능할지 궁금했다. 밈으로 무한애정하고 있는 루피도 떠올랐다. '뽀롱뽀롱 뽀로로'의 분홍색 비버인 루피는 원래 깜찍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그 비버가 지금은 성인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매운맛 루피로 변했다. 이는 창작자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신드롬이었다.

루피는 원래 이렇게 생겼다. EBS 갈무리
루피는 원래 이렇게 생겼다. EBS 갈무리
깜찍한 루피는 유저들의 손을 거쳐 공항도둑으로 변했다. 인터넷 갈무리
깜찍한 루피는 유저들의 손을 거쳐 공항도둑으로 변했다. 인터넷 갈무리

기술, 인간의 욕망을 닮는다

페페, 루피 원작의 아우라는 사라졌거나 찾을 수 없다. 대신 가공되고 변용되는 밈만 가상의 세계에 존재한다. 인터넷의 바다에선 원작과 가작이 순서없이 뒤엉켜 흐른다. 가상의 세계에서 원본의 아우라는 점점 옅어지고,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기술은 인간의 욕망을 닮아 발전한다. 복제의 시대에서 기술로 유일성을 보증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NFT는 'Non Fungible Token'의 준말로 대체 불가능한 토큰이라고 번역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토큰이다. 블록체인 기술로 고유값을 부여한 토큰에 파일이 저장된 이미지를 붙여넣음으로써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디지털 그림자산이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지폐가 중앙화된 시스템에 의해 통제된다면, NFT는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탈중앙화적 특징이 있다. 스티브잡스가 1973년에 직접 쓴 입사지원서가 NFT로 변환돼 4억원에 팔렸고 잭 도시 트위터 창업자가 2006년에 올린 '내 트위터 설정 중'이란 첫 트윗은 34억원에 팔렸다.

지난 7월 간송미술관에선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100개의 NFT로 만들어져 개당 1억원에 판매됐다. 간송미술관은 해당 수익금을 미술관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

버블인가 자산인가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림을 1억원으로 산다는게 말이 되는 것일까. 부자들의 놀이, 그들만의 취미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확실히 존재한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파일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로 보증된 유일한 그림이다. 유저들은 해당 그림 파일을 각각의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 저장할 순 있지만 소유권을 가질 순 없다. 내가 다운 받은 그림이 피상적으로 존재한다면 NFT로 거래된 그림파일은 안전한 자산에 속하기 때문이다.

유일성을 가진 그림이란 이유로 현재는 예술가들의 작품이 NFT시장에서 잘팔리고 있다. 일각에선 NFT가 예술가들의 가치 투자 그 이상으로 나아가진 못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NFT 열기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다. 블록체인 데이터 플랫폼 댑레이더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 세계 NFT 거래액은 12억 달러(약 1조4400억원)로 지난해 전체 거래액(9486만달러)을 뛰어넘었다.

게다가 발빠른 기업들이 NFT 시장에 들어서고 있다. 특히 게임 회사가 빠르게 NFT 시장을 확장시키고 있다. 소유권을 극대화 시킬 수 있도록 게임 아이템을 NFT로 변환해 판매하는 형식이다. 현금이 아닌 암호화폐로 거래하면서 토큰 이코노미를 구축한다. '현질'말고 'NFT질'이 렙업의 필수 요소가 될 수 있다.

페페의 원작자인 맷 퓨리도 NFT 시장에 들어선 듯 보인다. 원작이 지닌 가치와 창작자의 소유권을 지킬 수 있는 NFT 시장에 무한 매력을 느꼈을 테다. 콘텐츠의 복제와 변용의 시대에서 원본의 아우라를 지키는 일이 가능할 진 모르겠다. 그러나 일단, 블록체인이 ONLY ONE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을 실현시켜줄 순 있게 됐다.

글=나스닥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개소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