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사 눈치 보는 민간공사 책임감리 '있으나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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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시행사 눈치 보는 민간공사 책임감리 '있으나마나'
화정 아파트 감리보고서엔 ‘양호’ ||12월 콘크리트 타설 중 붕괴 누락||민간, 엄격한 공사 감시 체계 없어 ||감리 비용 내는 시행사 좌지우지
  • 입력 : 2022. 01.24(월) 18:06
  • 김혜인 기자

24일 구조당국이 광주 현대산업개발 신축 아파트 붕괴사고 현장에서 구조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주소방안전본부 제공

건축현장의 부실시공을 막기 위해 도입된 감리제도가 공공 분야와 달리 민간에선 비용을 지불하는 시행사 입김에 휘둘리는 등 주어진 역할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2021년 4분기 감리보고서(사진)에는 지난해 12월 발생한 203호 콘크리트 타설 중 슬라브 붕괴사고 기록이 빠져 있는 것으로 확인돼 부실 감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아파트 2021년 4분기 감리보고서.

특히 신축공사 도중 발생한 사상 초유의 붕괴사고에도 감리보고서상 공정, 시공, 품질, 안전관리 등의 내용이 대부분 '양호'로 기록되면서 감리제도에 대한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크다.

24일 광주경찰에 따르면, 화정 아이파크 신축공사에서 건축감리 업무를 맡은 4명 중 3명이 건축법 위반·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1단지·2단지 감리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단장, 201동 담당 감리자, 붕괴 당일 201동 감리업무 대체자 등 3명이 입건된 상태다"고 설명했다.

건축업계에 따르면, 1990년대 이후 부실시공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정부는 책임감리제를 도입했다.

건축법·주택법 등에 의해 건축물의 규모 및 성격별로 책임감리, 상주감리, 비상주감리제 등이 진행되고 있으며 주로 건축 전문 사무소가 입찰 또는 직접계약 등을 통해 감리업무를 따내는 형식이다.

특히 책임감리는 국토교통부가 고시하고 있는 '주택건설공사 감리업무 세부기준'에 따라 △시공자의 위반사항 조치 △시정명령을 내릴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공사중지 명령 권한까지 갖는다.

또 분기별로 건축허가권자에게 감리업무 수행사항을 보고해야 하며 부실감리자는 등록말소·영업정지·면허취소 등 제재를 받는다.

법적으로 보장된 강력한 권한에도 불구, 건설업계는 현실적으로 감리자가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광주의 모 현장소장은 "발주자에 따라 감리가 두 분류로 나뉜다. 관급공사와 민간공사에 따라 감리의 성향이 다르다"며 "관급공사에서 나오는 감리는 공정 하나하나 승인을 받고 철저하게 감시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민간공사에서 활동하는 감리는 시행사 쪽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시행사 눈치를 많이 본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기관처럼 엄격한 감시 시스템이 없으므로 현장에서 감독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화정 아이파크의 경우 책임감리제로 진행되는 민간 신축공사였다. 광주 서구는 지난 2019년 5월 공개입찰을 통해 경기도의 모 건축사무소를 감리업체로 선정했다.

하지만 이 건축사무소는 아파트 부실 시공이나 붕괴 위험성 등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

공사현장을 감시하는 감리자 이외 관계기관의 관리·감독 부실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실제 화정 아이파크 감리보고서에는 광주 서구청 주택과, 익산지방국토관리청 등 관계기관에서도 불시점검을 나왔다는 기록이 있지만, 5명이 실종되고 1명이 숨진 지난 11일 붕괴사고를 막지 못했다.

광주시도 별도의 건축 조례를 통해 자치구가 허가하는 건축공사를 감시하고자 '자치구 건축안전센터'를 권고하고 있지만, 붕괴사고가 난 서구는 '건축안전센터'를 운영하고 있지 않다.

광주 서구 건축과 관계자는 "자치구 건축안전센터가 의무 사안은 아니다. 현재 1월 말까지 구성안이 나와 설립 과정 중에 있다"며 "사실상 현장에서 감리를 감시할 수 있는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 교수단 교수는 "현재 대부분 현장 상황은 감리가 제대로 된 공정관리를 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감리가 공사중지명령을 내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며 "관할 구가 공개입찰을 통해 감리업체를 선정하지만, 사실상 감리 비용을 시행사가 부담하기 때문에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감리업체 입장에서는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서류만 작성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심지어 시행사가 감리를 교체할 수 있는 권한도 있다. 따라서 감리 비용까지 관할 자치구에 공탁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혜인 기자 khi@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