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토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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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왜 토론인가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 입력 : 2022. 02.10(목) 13:16
  • 서울=김선욱 기자
김선욱 서울취재본부 부장
'RE100'이 뭐죠? 지난 3일 열린 첫 대선후보 4자 TV 토론회 생중계 현장.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질문에 이렇게 되물었다. 이 후보는 "재생에너지 100%"라고 설명했다. 이 장면은 토론회가 끝난 후 정치공방으로 비화됐다. 민주당은 '함량 미달'이라고 비판했고, 국민의힘은 '트집' 잡는다고 반박했다. 정치권 밖에서도 "그 정도도 모르냐", "기후위기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 "장학퀴즈냐"며 때아닌 공방이 벌어졌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전국민이 'RE100'(Renewable Energy 100%, 기업 전력 100% 재생에너지 사용 캠페인)에 대해 알게 됐다.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전지구적 노력과 탄소 중립을 한번 더 생각할수 있는 계기가 됐다. 토론이 가져다 준 '부수익'인 셈이다.

120분간 토론회를 지켜보는 재미는 쏠쏠했다. 각당 후보가 준비해온 전략이 눈에 들어왔다. 이재명 후보는 EU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그린·블루·그레이 수소 등의 전문 용어를 구사했다. 정책적 우위와 깊이를 통해 준비된 유능한 후보라는 점을 내세웠다. 윤석열 후보는 '대장동 때리기'를 통한 이슈 재점화에 주력했다. 이 후보를 취조하듯 "이거냐, 저거냐"라며 검찰 특유의 수사기법을 사용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는 연금개혁 합의를 이끌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김건희씨의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옹호를 두고 윤 후보의 사과를 끌어냈다. 강력한 한 방은 없었지만, 대체로 정책 대결에 집중했다는 평가였다. 이·윤 후보 '배우자리스크'에 대한 발언은 없었다. 토론 이후엔 각 당의 평가와 팩트 체크, 전문가 진단 등으로 이어졌다. '나라를 맡겨도 되는지', 비교 우위의 후보 검증이 가능해졌다. 검증이 바로 토론의 묘미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불린다. 자고나면 터지는 폭로 공방은 유권자들을 짜증나게 했다. 여야 유력 후보뿐 아니라 그 배우자들이 대선기간중 이렇게 많이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던 것도 이례적이다. 그렇다 보니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한 부동층이 많다. 부동층은 이슈나 이념 보다는 실용성을 따진다. 중도적 성향이 강하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할 기준은 토론회 밖에 없다. 각 후보의 태도와 가치관, 판단능력, 정책 방향, 미래 비전을 볼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정쟁보다 정책 토론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이다. 정책 토론은 서로 공격적으로 맞붙는 전략이 필요하다.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소극적으로 대응하려다 오히려 손해를 볼수 있다. 토론은 여야의 지지층 보다는 부동층에게 미치는 파괴력이 더 크다. 최대 승부처인 이들의 표심을 움직이려면 논리와 비전, 진정성을 보여줘야 한다. 결국 토론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부동층은 줄어든다. 부동층이 줄면 투표율은 오른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바로미터다. 한국 민주주의는 더욱 발전한다. 민주주의와 궤를 같이 해온 토론의 역사다.

이날 TV토론회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윤 후보간 수차례의 공방이 있었다. 설 전 1대 1 지상파 TV토론에 가까스로 합의하는 듯 보였지만, 이번엔 안철수·심상정 후보가 반발했다. 안 후보가 법원에 낸 '양자TV 토론'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4자토론이 이뤄졌다. 대선을 34일 앞두고 어렵게 마련된 첫 토론인 만큼, 시청률은 대박을 터트렸다. 합계 39%로 집계됐다. 1997년 15대 대선 이후 최대치다. 유권자 10명중 4명은 TV토론을 보고 최종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TV를 보는 가구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든 상황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시청률이다. 유튜브를 통해 토론을 지켜본 사람들도 상당했다. TV토론은 그간 대선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입증해 왔다. 패널들과의 질의 응답, 양자나 다자구도로 후보들이 치열하게 논리 대결하는 열띤 경쟁의 장을 보면 흥미는 더해진다. 국정 능력과 정책역량, 차별성을 드러내는 선거 공간으로 이 만한 게 없다. TV토론의 맛이다.

오미크론 변이로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유세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공중파나 유튜브를 이용한 토론회는 후보 정보에 목말랐던 국민들에겐 단비와 같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토론회가 많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어느 후보도 토론을 거부할 명분은 없다. 토론방식을 따지는 것도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유권자들은 후보들의 열띤 토론과 진심어린 고민을 보고 싶어한다. 오늘 진통 끝에 두번째 4자 TV토론이 열릴 예정이다. 이날의 주인공은 4명의 대선 후보가 아니다. 다음 5년 국정을 이끌 대통령을 뽑는 유권자다. 당신의 손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서울=김선욱 기자 seonwook.kim@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