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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건너 가을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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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건너 가을을 보다

노병하 사회부장

게재 2022-06-02 14:41:19
노병하 부장
노병하 부장

소설가 김영하가 말했다.

"우리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맞추기 위해 보낸 시간을 나에게 쏟았다면 인생은 더 풍요로워지지 않았을까?"

스무살 시절엔 매일 누군가를 만나지 않으면 안됐던 의무감에 시달렸다.

돌아보건데 청춘이라 불렀던 그날들은 늘상 비 오기 전의 여름날과 비슷했다. 짙게 깔린 먹구름 아래, 곧 쏟아질 비를 예감하며 땀으로 찐득해진 티셔츠에 손바람을 넣던.

친구들과 한잔 할 때는 부족한 안주와 술, 넘치는 말들이 자리했고 그때마다 청춘은 마치 땅콩 같았다. 살짝만 밀어도 껍질이 벗겨지고, 조금만 힘을 주면 반으로 부숴질 것만 같던… 하긴 누구라고 단단한 청춘을 보냈을까.

그 즈음 하루도 쉬지 않고 만났던 이들 중 절반은 이 도시에 없고, 절반의 반은 도시에 있어도 보지 않고 있으며, 겨우 남은 그 절반마저도 1년에 몇 번 정도나 본다.

무엇을 위해 우리는 밤을 새며 낄낄대고, 서로가 꿈꾸던 모래성을 치켜세워주면서, 그 관계가 영원은 아니더라도 지속은 될 거라고 '맞춰'주고 '맞춤' 당했던가.

기자 초임 시절, 하루 종일 모르는 경찰들에게 인사를 하며, 한번이라도 본 경찰에겐 '형님'이라 부르고는, 별것도 아닌 사건 한 조각을 물기 위해 바쁜 그들 뒤를 서성여 댔다.

그렇게 인맥쌓기에 다름없는 피곤한 소득 전무의 취재를 마치면서 북부서 화장실에서 어색한 웃음이 달라붙은 얼굴을 씻어내고, 새벽 두어시 쯤 집으로 돌아갔다.

길고 긴 어두운 도로를 달려 불 꺼진 집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면, 항상 있어야 할 사람들은 어둠 속에 잠겼고, 들킬 새라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 몇 시간 뒤 보고해야 할 것들을 머리맡에 쌓아 둔 채 잠이 들었다.

그렇게 하기를 몇 년, 한 문장을 쓰기위해 여러 명을 만나고 수십번을 고치던… 베리 본즈의 약물 사건을 보고 타이거즈 선수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 쓰레기통을 뒤져보던… 선배기자들의 술 시중을 들다 술집에서 잠이 들던… 어쩌다 남들과 다른 기사 몇 번 썼다고 뭐라도 된 듯했던 그 어린 기자는… 그저 중년의 부장이 됐을 뿐이다.

어렸을 때 봤던 신문사의 데스크는 여유롭고 무서웠으며, 폭군에 가까웠다. 지금 거울 속에 비춰지는 인물은 북부서에서 얼굴을 씻던 기자가 그대로 늙기만 했다.

데스크가 된 지 39개월. 이 중 29개월을 사회부장으로 있었다.

처음에는 배운 대로 부원들에게 지시했다. 배워왔던 것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채 3년도 필요치 않았다. 단 한번도 생각치 않았던 직업에 대한 회의를 거의 매일 느끼게 해줄 정도였다. 우리가 욕먹어가며, 욕하며 배웠던 것은 새로운 세대들의 배움과 범위 부터가 다르다.

우리 세대가 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지켜왔던 그 무엇은 고루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고루함을 고수한 댓가로 잃어버린 것은 다시 오지 않은 20-30대란 시간과 무심코 지나친 소소하지만 소중한 순간들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하게 흘렀을까. 그간 기자상이라는 뱃지 십수개를 달았지만, 그렇다고 위대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다. 또 제법 힘 있고, 권력있는 사람과 알고 지낸다 하여 힘 있는 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아니 그 언저리도 가보지 못했다. 그때 만났던 사람, 절실한 관계라고 생각했던 사람, 100명 중 1명만 곁에 있을 따름이다.

반면 사람이 싫고, 또 사람에 대한 분노와 악다구니를 퍼붓고 싶은 마음은 늘상 있었다. 지난해도 그러했다. 누군가가 어떤 이야기를 부풀려 내고, 그것에 색을 더해 흩뿌려 댔다. 오해라고 말할 틈도 없이 진실이 되고, 아니 땐 굴뚝은 온통 색색의 연기 투성이었다.

그럴 경우 보통은 상처를 준 혹은 상처를 줬을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을 찾고 그에게 어떤 통쾌한 짓을 해줄까 고민하기 마련이지만, 다른 방법을 택했다.

스스로 무고함을 증명하자마자, 잘못 혀를 깨문 아이처럼 입을 다문 것이다. 그렇게 등 뒤에서 웅성대는 소리에 귀를 치우고 말을 가렸다. 적은 더 늘고 아군은 회색 빛이 되었다.

허나 반년이 지나자, 놀랍게도 평화로워졌다. 사람이 줄어드니 숨쉴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 시기 읽었던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과거에 읽었지만 그저 활자였던 모양이다. 이번엔 문장 하나하나가 온전히 마음에 박혔다. 한 장 넘기기 쉽지 않을 정도로 깊은 의미가 됐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살아야 할 의미들이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스스로를 위해 사람을 만나는 것에 게을러져야 할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특히나 열정이 철학으로 바뀌는 인생의 계절 앞에 서 있다 보니, 사람보다 더 우선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자신의 질문에 자신이 답할 수 있는 '단단하고도 깊은 성찰'이다. 다만 이런 결과물은 상처를 파먹고 자란다. 늘 그렇듯 귀한 것은 값이 비싸다. 허나 이 나이쯤 되면 되려 상처가 없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재료는 많으니 만들기만 하면 될 터다.

그래, 이쯤 되면 그윽해질 때도 됐다. 묵직한 침묵으로 잎을 매달고, 단단한 성찰이라는 열매를 맺은 뒤 겨울로 향해도 괜찮지 않을까.

막 도착한 올해의 여름 앞에서 뜬금없이 가을을 떠올리던 모습이 괜스레 멋쩍어 이리 몇자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