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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딴따라… 사회에 대한 반항, 스스로를 향한 경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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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인문학> 딴따라… 사회에 대한 반항, 스스로를 향한 경멸

딴따라의 계보
동학의 재인부대들, 풍물패들, 심지어는 오일장을 전전하는
각설이패들, 자칭타칭 이들이 딴따라의 계보를 가진 이들 아닌가.
그래서다. 이 이름에 덧입혀진 인간이하, 저질, 수준 이하, 멸시, 무시,
소외, 재수 없다, 징그럽다 등의 시선을 우리는 얼마나 탈피했을까?
아니면 구태의연한 인식에 머물러 있을까?

게재 2022-09-01 16:24:40
영화 왕의 남자 광대들의 연희장면. 맥스무비에서 캡쳐
영화 왕의 남자 광대들의 연희장면. 맥스무비에서 캡쳐

"근데 그때는 뭐, 광대 뭐, 딴따라 뭐, 이럴 때지(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4)." "그러니까 떠돌이들은, 유랑극을 하는 사람들은 조심을 해야된다. 이래가 부모들이 말렸어요(한국영화사연구소, 2010)." "영화 한다고 그러께네 뭐 뭐 기생 사람 된다카고 뭐. 그때 영화라는 게 인정도 안 했지, 그래께 내가 몰래 나왔지(한국영화사연구소, 2007)." "어어, 그리니까 완고하지요. 그니까 풍각쟁이한테 누가 딸을 주겠느냐(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05)." "아, 보나 마나 그런 딴따라니까, 이혼했지(한국영화사연구소, 2009)." 이승연의 '서사를 통해서 본 1950~60년대 대중문화 예술인의 정체성-예술관과 직업관을 중심으로(인문사회 21)'라는 글의 인용문들이다. 광대, 딴따라, 떠돌이, 풍각쟁이는 물론이요, 각설이, 품바 등 호명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그 편차가 심하다. 자칭타칭 따라붙는 이 호명을 한마디로 줄이면 '예술인'이다. 오늘날 BTS 등 세계적인 수준의 명인들이 환대를 받는 것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명인 이매방의 진술이 가슴을 찌른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국가적인 인정을 받기 전까지는 "인간 이하, 저질, 수준 이하, 멸시, 무시, 소외, 재수 없다, 징그럽다" 등의 취급을 받았다고 하지 않은가. 이승연의 지적처럼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부유한 집안 출신 등 이른바 상당한 학력과 자본을 소유한 예술인이라고 다를 게 없다. 광대, 딴따라는 일종의 푸념이요, 사회에 대한 반항이요, 스스로에 대한 경멸이었을지도 모른다.

영화 왕의 남자 광대들의 연희장면. 맥스무비에서 캡쳐
영화 왕의 남자 광대들의 연희장면. 맥스무비에서 캡쳐

타타르(韃靼)에서 각설이까지, 버스킹의 원조들

딴따라로 통칭되는 예술 그룹의 토대는 유랑이다. 유랑예술의 계보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 있다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까? 본 지면(2017. 12. 15)을 통해 소개했던 내용 일부를 다시 인용해본다. 1526년 중종실록에 나오는 기록이다. 유랑패들과 함께 곡예를 하고 가무를 하며 푼돈을 받아 생활하던 걸식 재인(才人)들에 대한 기사다. 이때의 재인들은 달단(韃靼)에서 흘러들어온 유랑민들이라 한다. '달'은 종족 이름을 뜻하고 '단'은 오랑캐를 이르는 말이다. 곧 '타타르족'을 말하며 원나라 멸망 후 사방으로 흩어진 몽골족을 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걸식, 무복(巫卜)이나 창우(倡優)를 업으로 삼았다. 점을 보고 관련 의례를 하며 노래를 하고 춤을 추어 대신 음식이나 돈을 받았다. 실록에는 이를 '사당패, 걸립패, 무동패, 탈놀음패, 인형극패들과 함께 가무(歌舞)로 푼둔을 받아가며 생활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1456년 세조실록에 보면 걸식하는 자들에 대한 기사가 더 있다. 대개 백정(白丁)을 화척(禾尺)이라고 하고 혹은 재인(才人), 혹은 달단(韃靼)이라 칭하여 그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했다. 원문에는 이들을 '작악개걸자(作樂丐乞者)'라 쓰고 있다. '개걸'은 구걸한다는 뜻이므로 ' 노래, 춤, 악기 등 음악을 만들어 구걸'하던 무리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이 기록과 여러 현장 사례를 근거로 박타령(흥보가)과 변강쇠가에 나오는 각설이패의 계보를 현대의 각설이 품바로 연결한 바 있다. 신재효의 사설집에 나오는 "걸인들, 각셔리패, 잡색군들, 풍각쟁이패, 가리내패, 거사들, 사당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말이다.

동학혁명의 선봉에 섰던 재인부대와 오월농악

"부동촌 앞에 모여 있는 적도(賊徒) 중 담양 남응삼, 남원 관노(官奴) 김원석 등이 각 포(包)의 도당(徒黨)을 끌고 왔는데, 그 이른바 접주배들이 전후대를 이뤄 노비, 사령, 무부(巫夫)배들과 함께 기치(旗幟)를 벌여 세우고 크게 취타(吹打)하여 음악을 연주하며 거뜬히 산에 올라(운봉) 지경(地境)을 넘어오고자 했는데, 그 기세가 창궐했다." 보이는가? 동학군의 선봉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농악대의 큰 깃발 나부끼며 북장고 꽹과리 울리던 사람들, 전북 운봉의 경계를 넘던 하늘 찌를 듯한 그 기세 말이다. 손태도는 '동학농민혁명과 광대집단의 활동-홍낙관, 홍계관을 중심으로-'에서 이 장면을 인용하며 이렇게 정리한다. "사람을 '하늘'과 같이 섬기라고 하는 동학의 교리는 조선과 같은 상하의 중세적 신분 구조 사회에서 혁명과도 같은 사상이었다. 이러한 절대적 인간관에 의한 사회적 평등사상에 상층 양반의 지배구조에 있던 일반 평민들이 크게 호응했겠지만, 이보다도 더 감격한 사람들은 당시 최하층에 있던 일반 천민들이었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주목되는 사람들이 광대집단이었다." 이들을 흔히 동학의 재인(才人)부대라 부른다. 훗날 학자들에 의한 명명이므로 현장에서 스스로 어찌 호명했는지 더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 해방 이후 각양의 예술인들이 스스로를 '딴따라'라고 불렀던 것에 견준다면 이들 역시 '딴따라'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어쨌는가? 나는 이를 오월농악(오월굿)이라 명명하고 본 지면(2021. 5. 7)에 소개한 바 있다. 전남대농악반에서 시작한 일군의 풍물패가 5.18민주화운동을 이끌었다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 이들의 북장고 울림이 광주와 남도의 시공을 울리는 공명(共鳴)이었고 불온한 세상 떨쳐 일어난 바람이었다. 이들 역시 자칭타칭 '딴따라'였다. 유랑예인들의 족적은 선사시대까지 무한히 거슬러 오르고 무한한 장르로 확장된다. 차후 지면을 할애해 유랑예인의 역사를 소개하겠다. 문제는 경멸의 눈초리로 부르던 호명 방식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전 세계적인 호응을 불러내고 있는 K-컬쳐의 주역들이 누구인가? 앞서 예를 든 영화인들, 방송인들 말이다. 동학의 재인부대들, 풍물패들, 심지어는 오일장을 전전하는 각설이패들, 자칭타칭 이들이 딴따라의 계보를 가진 이들 아닌가. 그래서다. 이 이름에 덧입혀진 인간 이하, 저질, 수준 이하, 멸시, 무시, 소외, 재수 없다, 징그럽다 등의 시선을 우리는 얼마나 탈피했을까? 아니면 구태의연한 인식에 머물러 있을까?

남도인문학팁

딴따라 호명의 출처

자칭타칭 딴따라로 부르던 방식이나 명명(命名)은 언제, 누구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알려지기로는 관악기 소리를 나타내는 영어 '탄타라(tantara)'를 우리말로 부른 것이라 한다. 해방 이후 '딴따라조 유행가' 등의 용어가 사용된 점에 비춰보면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유랑연예의 역사가 이토록 장구하고 광범위한 것임에 비춰보면 너무 소극적인 인용이자 해석이다. 광대, 재인 등 수십 가지가 넘는 유랑예술의 계보가 고작 영어의 관악기 의성어로 집약되었단 말인가? 오히려 각설이, 풍각쟁이 등의 출처가 되는 유랑연예 타타르(韃靼)에서 비롯되거나 영향을 받은 호명 아닐까? 더욱이는 남방불교라고도 하는 밀교 계통의 탄트라(tantra)까지 소급할 수 있지 않을까? 이들 호명에 대해 대부분 콧방귀를 뀌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차후 판소리의 역사를 다시 구성하는 내용도 소개할 예정이지만, 기왕의 학설이나 주장들이 의기소침하고 폐쇄적이며 소극적인 게 많다. 딴따라의 계보에 대해서도 아직 이렇다 할 연구를 본 적이 없다. 요지는 이것이다. 가히 세계를 공명하는 웅숭깊은 계보, 고대로부터 지금의 K-컬쳐에 이르는 우리 연예의 주역들에게 그 위상에 맞는 이름을 부여하는 일 말이다. 이것은 단순히 발음이 비슷하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설령 영어의 탄타라를 일정한 시기에 인용한 호명이라 할지라도 역사이래 훨씬 더 많은 시간, 타타르나 탄트라의 연행이 광범위했다는 점, 그래서 서로 영향을 받았을 맥락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애오라지 나는 딴따라가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