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인권상' 수상 마웅 박사 "한국인 응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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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인권상' 수상 마웅 박사 "한국인 응원 감사"
●미얀마 국경지대를 가다③||30년 넘게 매타오 병원 의료활동||"쿠데타, 자유롭게 살 기회 박탈"||'민주화 역사' 한국에 관심 많아
  • 입력 : 2022. 09.06(화) 16:48
  • 도선인 기자

지난 12일 매타오 병원에서 만난 2022년 광주인권상 수상자 신시아 마웅 박사.

"광주를 다녀온 후,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갈 곳 없는 미얀마 난민들이 몇 날 며칠을 걸어 매솟 매타오 병원을 찾고 종종 강 넘어 공습 소리가 들려옵니다."

미얀마·태국의 국경지대인 매솟 지역에서 난민 의료활동을 이어온 점을 높이 평가 받아 2022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된 신시아 마웅 박사는 시상식 참석차 지난 5월 광주를 방문했다. 약 10일 간의 일정이 끝나고 그녀가 다시 돌아간 곳은 미얀마 난민들이 기다리고 있는 매타오 병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국경지대로 내몰린 미얀마 난민들을 돌보고 의료체계를 구축하는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마웅 박사는 1988년 8888항쟁 참여 이후 군부의 탄압을 피해 국경지대인 태국 매솟 지역으로 망명한 터라 무국적자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없어 법적 보호나 혜택 서비스를 받을 수 없지만, 그가 있어야 할 곳은 수많은 난민이 모여있는 미얀마와 태국의 국경이었다. 일명 난민들의 병원으로 알려진 '매타오 병원'은 직장이자 집이면서, 인간에 대한 그녀의 가치관이 녹아든 삶 그 자체다.

지난 12일 매타오 병원에서 산후 관리를 받고 있는 미얀마 난민.

연간 10만 건 이상의 진료, 다른 국경 지역의 지점까지 전체 직원 354명, 관련 교육센터에서 연간 이주아동 850명의 졸업, 소수민족 시민단체 및 대학기관 연계 인턴십 등….

체계적인 의료 및 교육시설을 갖추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마웅 박사 자신도 30년이 넘는 세월을 이곳 매타오 병원에 있게 될 줄은 몰랐다.

마웅 박사는 양곤대학 의대를 졸업하고 1988년 작은 병원에서 근무하던 중 8888항쟁을 마주했다. 미얀마 소수민족 중 카렌족 출신인 그는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소수민족 자치권을 보장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반정권시위에 가담했다. 시위 규모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군부는 곧바로 잔혹한 시위 진압을 시작했다. 그는 태국과 가까운 국경 쪽으로 피신 길에 올랐다. 그때만 해도 석 달만 버티면 정세가 안정을 되찾을 줄만 알았다.

당시 가방에는 청진기, 가위, 집게 두 쌍, 체온계, 의학 교과서 한 권, 약 몇 봉지가 전부였다. 마웅 박사는 돌아가기 전까지만이라도 이미 그곳에 있던 난민들을 돌볼 요량으로 함께 양곤을 빠져나온 제자들과 함께 태국 매솟에 임시 클리닉을 열었다. 말만 클리닉이지, 흙먼지투성이의 허름한 목조 주택일 뿐이었다.

매타오 병원의 초기 모습. 매타오 병원 제공

그 시작이 어느새 34년이 됐다. 시위를 주도하거나 적극적으로 참여한 의사와 학생, 지식인에 대한 대규모 검거령이 떨어졌으며 친위 쿠데타에 성공한 소마웅 정권, 딴쉐 정권은 또 다른 독재를 시작했다. 그렇게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난민 병원은 그녀의 숙명이 됐다.

언어도 안되고 돈도 없었지만, 버텨야 했다. 마웅 박사는 "매타오 병원이 체계를 만들어가는 동안 미얀마에서 내전은 악화되고 독재 지배력은 커졌다"며 "고국에 돌아가 투쟁과 개혁에 힘쓰기보다 이곳에서 봉사를 통해 이웃들의 고통을 덜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교육과 의술훈련을 받은 난민 학생들이 졸업 이후 소수민족 마을, 공장, 난민 캠프 및 도시 근교 빈민가에 들어가 의료 봉사를 제공하는 선순환 구조도 완성됐다.

의료인들이 매타오 병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는 모습. 매타오 병원 제공

지난 2015년 미얀마 역사상 최초로 문민정부가 들어서자 마웅 박사는 낙관했다. 적어도 내전과 반독재정권활동으로 인한 난민은 감소하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때문에 이용자 감소에 따른 계획을 준비하던 중 또다시 쿠데타가 벌어졌다. 그는 "가슴이 아팠다. 여러 세대에 걸쳐 미얀마 젊은이들이 죽었고 자유롭게 살 기회가 사라졌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쿠데타가 불러온 나비효과는 절망적이었다. 마웅 박사는 쿠데타 이후 PDF(민주진영 임시정부의 시민방위군) 활동으로 다리를 잃은 시민군, 내전 공습으로 인해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만 살아남은 소수민족 등 지금까지 수많은 비극과 만나고 있다. 그는 "임신 3개월의 임산부가 있었는데, 카렌주에 살던 평범한 소수민족이었다. 공습으로 인해 집도 가족도 잃었고 본인도 허리를 다쳐 병원을 찾았는데 빈혈과 영양실조 증상이 있었다"며 "환자는 현재 매타오 병원에서 산전 관리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인한 부상은 더 마음이 아프다. 마웅 박사는 "무기 폭발사고로 다리가 괴사한 환자가 있었다. 절단이 가장 적절한 치료였는데, 환자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며 "설득 끝에 절단 수술에 동의를 받았고, 지금은 보철물을 제공해 재활치료를 돕고 있지만, 전쟁이 얼마나 한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항상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미얀마 국민들은 '자신들보다 민주화의 역사를 먼저 쓴 한국'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마웅 박사는 "나뿐만 아니라, 아웅산 수지와 민주화운동 활동가 민꼬나잉이 먼저 광주 인권상을 받았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미얀마 국민들의 관심이 크다"며 "특히 미얀마 민주주의를 응원하는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미얀마·태국의 국경지대인 매솟 지역에 있는 매타오 병원 전경. 매타오 병원 제공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