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정연권> 노인의 품격-젊은 노인시대 주역으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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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정연권> 노인의 품격-젊은 노인시대 주역으로 살자
정연권 구례군도시재생지원센터장
  • 입력 : 2022. 09.21(수) 12:57
  • 편집에디터
정연권 센터장
지난 3월 말 만65세가 되어 법적으로 대한민국 노인이 됐다. 벌써 노인이라니. 기분이 묘하고 착잡했다. 마음은 청춘인데 세월이 야속하고 허허롭다. 정년퇴직 후 5년 넘었으니 노인이 맞다. 이제 노인이 시작됐고 출발점에 서 있다는 현실을 인정한다. 몸은 느려지고 기억은 쇠퇴해지며 자꾸만 말이 많아진다. 미래를 말하는 것보다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한다. 시력이 떨어지고 숨이 차서 산에 오르기도 힘들어진다. 머리칼이 빠지고 흰머리가 늘어난다. 검버섯이 피어나고 주름살이 깊어간다. 노인이 됐다는 징후다. 늙음의 증거다. "어르신" "아버님" 칭호가 귀에 익숙하여 가니 씁쓸하다.

묻지도 않았는데 말해주는 오만함과 하나를 물었는데 몇 개를 말하는 떠버리 '노인네'가 돼가고 있다. 미래를 이야기하지 않고 과거 자랑과 영웅담을 지껄이는 꼰대 '노친네'가 돼가고 있다. 내 생각만 맞다 하는 아집과 불통의 '시골 영감'이 되고 있다. 손주 재롱에 웃고 영상통화를 기다리는 손주 바보의 '할아버지'가 돼버렸다. "노인이 돼 몸이 느려지는 것은 천천히 생각하고 움직임을 무겁게 하라는 의미"라는 말을 되새겨 봤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시간과 일을 되돌아봤다.

뭐가 그리 급하다고 빨리 빨리를 외치고 달렸던가. 추구했던 일들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이리도 바빴던 것인가. 욕심과 욕망이 머릿속에 가득해 무겁고 혼란스럽게 살았다.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세상에 적응하려고 힘들게 살아왔다. 몸과 마음이 상반돼 흔들리고 혼란스럽고 괴로웠다. 내 영혼은 왜 그리도 가벼워 작은 일에도 크게 흔들렸던가. 말로써 상처받고 말로 상처도 줬다. 말에 감정을 섞어 보내니 서로가 괴로움이요. 고통이며 크나큰 아픔이었다.

노인이 돼 제일 먼저 다가온 것은 코로나였다. 예방접종 3차까지 맞았는데 코로나에 감염되다니 당황스럽고 부끄러웠다. 다행히 기침이 났을 뿐 며칠 만에 완쾌됐다. 병원에 다니면서 체감한 것은 노인이 되니 진료비가 낮아졌다. 노인 혜택을 살펴보니 폐렴, 대상포진 무료접종, 고궁, 박물관 등 무료입장이란다. 주중 열차 승차비가 30% 할인이다. 많은 혜택이 있다지만 관심은 '지공거사(地空居士)'였다. 지하철 공짜로 타고 다니는 사람을 말하는 지공거사가 되고 싶었다. 마침 지난달 친구 딸 결혼식이 있어 서울을 갔다. 친구들에게 말했다. "오늘 지공거사가 되고 싶으니 알려 달라" 서울 친구들은 "어르신 교통카드가 있다. 그러나 노인 취급 받기 싫어서 일반 카드로 다닌다." 하며 웃는다. 그렇구나. 아직 마음은 청춘이구나. 그래도 노인 혜택을 받아보자며 근희 친구와 함께 지공거사가 되기로 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거리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구례는 65세 이상 노인이 30%가 넘는 초고령화 사회다. 구례읍 병원거리는 진료 받으려는 노인들이 많은데 여기는 정반대 풍경이다. 서울은 젊은이의 열기로 가득하나 구례는 정적만 흐른다. 지방소멸 위험에 직면했다는 현실이 슬프다. 드디어 지공거사가 돼 경로석에 앉았다. '내가 이렇게 노인이 됐구나'. 나 자신을 봤다. 나는 신참 노인이요 젊은 노인이다. 경로석에 있는 노인들은 연배가 나보다 많아 묘한 기분이 든다. 아직 노인이라고 다니기는 부끄럽고 송구스러운 마음이 밀려왔다.

1950년에 유엔에서는 노인 기준을 65세로 잡았다. 그러나 2015년에는 전 세계 인류의 체질과 평균수명 측정 결과를 분석해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18~65세는 '청년(Youth)', 66~79세는 '중년(Middle)', 80~99세 '노인(Old)'이라고 했다. 100세가 넘어야 비로소 '장수 노인(Longlived elderly)'이라고 했다. 공자는 60세는 모든 것을 순리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이순(耳順)', 70세를 욕심에 기울지 않고 어떤 언행도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종심(從心)' 이라 했다. 덕망이 높은 노인을 '기로(耆老)'라 한다. 육십을 기(耆), 칠십을 노(老)라고 육십 세 이상을 말한다. 요즘은 '시니어'(senior)'로 부른다. 김형석 교수는 인생의 황금기를 60~75세라고 했다. 법적으로 65세가 넘으면 노인이지만 사회적으로 60대는 노인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요즘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80대는 돼야 노인으로 대접받는다.

그래 맞다. 나는 아직 청년이다. 노인이 아니다. 내년에는 중년이다. 미래의 노인 상을 만들어 봤다. 시대에 부합되는 가치관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품격 있는 멋진 삶을 살아야겠다. 배려와 나눔과 존중의 마음가짐을 가져야겠다. 건강한 몸을 유지해 병들어 누워 살지 말고, 여행 다니며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사는 원숙한 시니어가 돼야겠다. 아름다운 꽃들과 대화하며 가꿔서 나눠주며 사철 다양한 꽃길을 만들어야겠다. 홑꽃보다 겹꽃이 아름답듯이 얼굴의 주름도 겹꽃이로다. 검버섯은 품격을 높인 것으로 생각을 바꿨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허허 웃어넘겨 보자. 노인네에서 벗어나 팔팔하고 당당한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으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인생 황금기가 10년 이상 남았으니 우아하고 아름다운 젊은 노인 시대 주역으로 살아 보련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