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속 한(恨) 태우듯 작품에 몰입, 유럽서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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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가슴 속 한(恨) 태우듯 작품에 몰입, 유럽서 호평
광주출신 김민정 작가, 고향서 첫 전시||11월 25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 ‘비움과 채움’전
  • 입력 : 2018. 08.27(월) 17:05
  • 박상지 기자

광주시립미술관 전시실에서 작품설명을 하고 있는 김민정 작가

김민정 작 질서 충동

김민정 작 방

30여년 전 우울감과 열패감으로 사로잡혀 있었던 20대 여성이 이탈리아 행 비행기에 올랐다. 짧은 결혼생활에서 아픔을 겪은 그가 살 수 있는 방법은 가능한 한 고국에서의 기억과 인연을 떨쳐내는 것이었다. 비행기에 오르는 그의 양손에는 오직 한지만이 들려있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난 지금, 한지를 태워서 포개는 작업을 선보이고 있는 그는 유럽에서 호평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지를 불로 태우는 행위를 통해 3차원의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는 광주 출신 김민정 작가가 바로 그다.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을 중심으로 30여회의 개인전을 열어오고 있지만, 고국에는 3년 전에서야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 OCI미술관에서 귀국전을 시작으로 지난해에는 서울 현대화랑에서 국내 전시를 열어 호평을 받았던 김 작가가 이번에는 고향 광주에서 첫번째 전시를 갖는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오는 11월 25일까지 열리는 '김민정-비움과 채움'전은 광주시립미술관이 해외유명작가초대전으로 마련한 전시회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민정 작가의 대표작 뿐 아니라 근작 24점을 감상할 수 있다.

광주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수채화와 서예를 익히고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김 작가는 1991년 이탈리아로 건너간 이후 지속적으로 동양화를 변화, 발전시켜왔다. 1998년부터는 한지를 통한 실험예술을 선보이며 동양화를 확장해 국내외 미술계의 호평을 받고 있다.

인쇄소를 운영하는 아버지 영향으로 종이는 어린 시절 김 작가에게 좋은 놀잇감이었지만, 유학시절에는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푸는 수단이었다.

한지 위에 번지는 기법을 이용해 몽환적인 느낌의 회화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그의 정체성은 한지를 태워 겹겹이 붙이는 작업에서 찾을 수 있다. 한지 위에 상상에서 나온 패턴을 그리고 오린 다음 오려진 패턴의 끝을 불에 태워 한지 위에 다시 겹겹이 붙여나가는 과정은 자체가 명상 혹은 수행에 가깝다.

김민정 작가는 "유난히 가느다란 선을 그리기 위해 마음의 고요함을 얻기까지 수일이 걸리고, 태움을 시작하기 전에 일상 속의 번뇌와 방해요소들은 물론 그 어떤 극단적인 감정은 두말할 것도 없이 반드시 떨쳐버려야 한다"고 밝혔다.

명상적인 작업과정과 고도의 집중을 통해 탄생한 그의 작품은 평온하고 장엄한 감동을 준다.

캐서린 코스티얄 영국 런던 화이트큐브 디렉터는 "김민정 작가는 먹과 수채를 이용한 회화기법을 연구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한지 자체의 특징과 성질을 이해하고 실험해 작품에 적용했다"며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조국과 그곳의 예술적 전통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작가로서 삶의 대부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김 작가가 한지를 가장 중요한 매체로 삼았다는 것은 재료적 측면뿐 아니라 그 이상의 영감을 주는 주요한 소재이자 주체라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민정 작가는 열 살부터 강연균 화백으로부터 수채화를 배웠으며 13살부터 29살까지 꾸준히 전통 서예를 익혔다.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밀라노 국립브레라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한편 전시 개막행사로 작가와의 대화가 오는 30일 오후 3시에 개최된다.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