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회화로 되돌아본 광주의 원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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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사진, 회화로 되돌아본 광주의 원도심
예술공간 집, '광주의 추억' 타이틀 정선휘, 박일구 전 기획||
  • 입력 : 2018. 10.02(화) 17:38
  • 박상지 기자

정선휘 작 '길따라'

낮은 담벼락을 따라 이어진 구불거리는 골목길, 전파사, 양장점 등 작은 구멍가게, 두 아이를 품은 채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 위를 걷는 아낙, 도심을 가로지른 마지막 열차,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30년도 되지 않았지만 꽤 오래전인것 처럼 멀리 사라져 버린 장면들이다. 시야에선 사라졌지만 그 시절을 지나온 이들이라면 가슴 한 켠에 아스라한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지 모를 장면이기도 하다.

그 시간을 지나온 그림과 사진들이 세상밖으로 나왔다.

광주 동구 장동의 51년된 한옥에 문을 연 예술공간 집에서는 20년 전 광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전시를 마련한다. '광주의 추억'이라는 타이틀 아래 정선휘 작가와 박일구 작가는 1990년대 초에서 2000년대 초의 광주 모습을 담은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2부로 나뉘어 진행된다.

1부는 '축적된 시간, 남겨진 풍경'을 주제로 오는 9일까지 정선휘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1999년부터 2001년 그려진 그림들로, 장동, 동명동, 계림동, 농장다리 등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 위를 걸어가는 두 아이의 모습에서 따스함이 가득 스민 '하교길', 경전선이 없어지고 난 뒤 폐선부지 위 녹슨 철로 옆으로 울긋불긋 피어난 꽃들, 초록의 풀더미, 새벽녘 도심을 가로지른 마지막 열차,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 그저 특별할 것 없는 삶의 풍경들이다.

정 작가가 늘상 걸어다니며 집과 작업실의 주변에서 반복적으로 보게 된 풍경들은 자연스레 화폭으로 옮겨졌다. 푸르스름하지만 따뜻한 색조와 그 시절 따스한 삶의 온기는 그림에 그대로 전해졌다. 비오는 날 우산을 쓰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과 도로를 오가는 버스와 자동차들의 모습엔 지극히 평범한 날들의 인상이 그대로 남아있다. 현재는 미디어작품을 주로 하고 있기에 정 작가의 지난 그림도 마치 지난 과거를 회상하듯 더욱 아스라한 느낌을 준다.

2부는 10일부터 18일까지 'The Scene, 사라지고도 남겨진'을 주제로 박일구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에 출품되는 박일구 작가의 작품들은 그간 전시되지 않았던 미발표작이라 더욱 시선을 끈다. 1992년부터 1995년 사이에 찍은 사진들로 박 작가가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기 이전의 사진들이다. 박 작가는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뒤 다시 사진학과를 다니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사진과를 졸업했다. 전시작은 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 카메라를 집어든 때 촬영된 것으로, 예술에 대한 열망을 한껏 품은 청춘의 시절 작가의 시선을 그대로 담았다.

지금은 푸른길이 된 기찻길과 기찻길 인근의 계림동 산수동, 농장다리, 지산동, 학동 등 기찻길을 따라 연결된 작은 골목길과 남광주역에서 효천역까지 이어지던 길은 그대로 사진에 담겼다. 기차는 작가의 유년시절 세상의 넓이를 확장시켜주었던 중요한 소재로 청년이 된 작가에게 기찻길은 더욱 특별하게 보였고, 기찻길을 따라 수많은 장면들이 찍혔다.

작은 구멍가게에 진열된 통조림캔과 라면, 과자, 종이로 말아놓은 두툼한 국수 뭉치, 가게 입구에 걸린 담배와 우표 표지판. 기찻길 건널목에 선명하게 솟은 X자 푯말 위에 새겨진 '멈춤'글씨, '전파사', '양장점', '00사장'이라 불리던 사진관, 남광주역의 대합실 등 채 30년도 되지 않았건만 꽤 오래 전처럼 저 멀리 사라져버린 장면들이다. 모두 '광주'가 간직한 모습이고 또 너무 변해버린 현재에 다시 되돌아보고 기억해야 할 장면들이다.

문희영 예술공간 집 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들"이라며 "빠르게 빠르게만 변해가는 삶의 건너편에서 조금은 느릿하고도 한가롭게, 작품 안에 담긴 삶의 풍경이 건네는 이야기를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박일구 작 산수동 구멍가게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