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려 막는다'는 표현은 주로 카드빚에나 쓰는 말이 아니었나. 설마 응급환자의 생명이 달린 필수 구급품이 그럴 줄이야. 농담인줄 알았으나 분위기가 그게 아니었다. 상대의 눈치를 살폈다. 낯빛이 무거운게 예삿일이 아니었나 보다. 전남지역 한 119구급대원이 털어놓은 일선 현장의 실태는 그간 생각해왔던 소방에 대한 신뢰를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단돈 9만원짜리 자동제세동기 패치에서 비롯된 취재였다. 한 사람의 목숨값치고는 거저 아닌가. 하지만 전남의 몇몇 구급대에는 이 패치가 없어서 일선 대원들이 여분이 있는 119안전센터에 구걸하러 다니는 실정이었다.
열악한 사정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관할지는 넓은데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는 큰 병원은 턱 없이 모자랐다. 병원에서 멀어질수록 이송시간은 지체됐고 자연히 환자의 생존률도 낮아졌다. 이를 메꿀 인력도 모자랐다. 취재 당시만 해도 전체 구급대의 3분의 2 이상이 운전자를 제외하면 '1인 구급대'로 운영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우리는 곧잘 비유하지만, 매일같이 그 경계에서 곧 죽을지 모를 사람들을 마주하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도대체 어느 정도의 무게로 다가올까. 응급환자를 구급차에 싣고 종합병원으로 내달리며 몇번이고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그들이 매일 느끼는 그 엄청난 무게감 말이다.
그저 골든타임을 지키기엔 병원이 너무 적고 멀어서,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도와줄 손이 모자라서, 그 찰나의 순간 삶의 경계를 넘어 주검이 돼버린 누군가를, 의료진이 대기 중인 병원 대신 영안실로 인도해야하는 허탈함은 결코 말로 설명할 수 없으리라는 것만 짐작할 따름.
그 대원은 대화 중에 결국 '살 사람도 죽는 전남'이라고 말했다. 끝내 살려내지 못한 누군가를 싣고 경로를 고쳐 가까운 영안실로 향해야 했던 여러 날. '10분만 더, 아니 1분이라도 더 빨랐더라면' 하고 스스로를 책망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현실을 털어놓으며 가느다랗게 떨리던 목소리. 제세동기 패치의 사례는 전남 119구급대의 한 단편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요즘 이국종 교수의 회고록 '골든 아워'가 세간의 화제다. 그 책의 한 대목이다.
'고위층의 자리에서 지원에 대해 흘러나오는 좋은 말들은 그 자리를 벗어나면 없는 것이 되었다. (중략) 웃는 얼굴들이 좋은 옷을 입고 맛난 것을 먹으며 화려한 말의 향연을 벌일 때, 현장에서는 비행복 한 벌 신발 한 짝이 없어 몸을 떨었다'.
자조 섞인 일선 소방대원의 깊은 탄식이 겹친다.
김정대 기자 noma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