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끝자락, 색다른 겨울 감성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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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한해 끝자락, 색다른 겨울 감성에 빠지다
롯데갤러리, 연말과 겨울 일상 주제로 기획 전시 1월 9일까지||강선호, 노여운, 설박, 이선희, 이혜리, 임현채 등 23점 선봬
  • 입력 : 2018. 12.24(월) 17:17
  • 박상지 기자

눈 내리는 오래된 골목 어귀, 시리디 시린 겨울 설산, 눈꽃송이처럼 내려 앉은 새하얀 목화솜꽃,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붕어빵, 이불 위에서 까먹던 귤, 크리스마스 향수 가득한 오르골까지, 롯데갤러리 광주점이 연말과 겨울을 주제로 기획 전시를 진행 중이다.

1월 9일까지 열리는 기획전은 우리네 겨울일상과 함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인 연말에 관한 소회이다.

강선호, 노여운, 설박, 이선희, 이세현, 이조흠, 이혜리, 임현채, 최순임 등 청년작가들은 계절의 감성과 서정을 은유와 상징, 서술을 통해 이미지화했으며, 그 세대에서 체감할 수 있는 독특한 시선들로 다채로운 작품을 그려냈다.

전시는 우리가 흔히 상기하는 연말 크리스마스의 화려함이나 새해를 앞둔 설렘과 같은 '보통'의 연말 풍경은 없다. 부산스럽고 조금은 들뜬 절기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자신의 일상 근거리에서의 연말을 드러낸다. 재개발 구역에서의 계절의 쓸쓸함, 묵은 해가 지나가듯 사라져가는 삶터, 역사적 사실을 품은 장소에서의 겨울 단상, 내 기억 속 힘들고 공허했던 연말, 겨울을 상징하는 사물에서 느껴지는 허무, 그러함에도 계속 꿈을 꾸는 순수한 마음까지 생각할 만한 '꺼리'들이 관람자를 맞이한다.

강선호 작가는 광주 중흥동, 계림동 재개발 지역의 겨울을 담았다. 많은 이들의 삶의 흔적이기도 한 주거지역의 재개발 풍경은 단순히 건물을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아닌 살아온 시간들의 갈무리이자 지나간 것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보한다.

강선호 작 계림동 재개발,흐림

노여운 작가는 오래된 골목길의 풍경을 그린다. 학동 재개발 지역, 중흥동, 남광주 시장의 뒷골목 등 주로 구 도심에서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애수와 삶의 흔적을 포착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에 운림동 풍경을 담았다. 크기도 색깔도 제 각각인 플라스틱 화분, 이 또한 화분으로 분한 고무 대야와 욕조, 그리고 추위를 막기 위해 늘어뜨린 색색의 포장천까지, 화폭 안에는 소소하지만 가치 있는 우리네 겨울 일상이 한 데 어우러지고 있다.

노여운 작 머무르다

먹을 칠한 화선지를 콜라주하는 기법으로 독특한 산수화를 선보여온 설박 작가는 겨울 설산을 보여준다. 설박 작가는 적절한 여백과 함께 최대한 번잡스러운 표현을 배제해 대상이 상징하는 근원적 힘을 드러낸다.

설박 작 어떤 풍경

섬세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이선희 작가는 겨울의 향기를 담아냈다.

조각달이 뜬 설원을 배경으로 씨앗을 품고 있는 여인은 연중 마지막 계절인 겨울에 품을 수 있는 새 날, 새해를 향한 희망을 상징한다. 후 불면 날아가는 씨앗의 포자처럼 이 겨울 많은 이들의 소중한 바람과 염원들이 무사히 뿌리 내려 이뤄지기를 기원한다.

이선희 작 겨울을 떠나보내며

이세현 작가가 사진으로 담아내는 공간은 우리 근현대사에서 상기할만한 장소들이 주를 이룬다. 작가는 실재성을 담보하는 사진이라는 장르적 속성을 통해 일종의 기록자가 되고자 한다. 역사가 담긴 장소 위에 던져지는 돌은 작가가 간주하는 모뉴멘탈한 소재이며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며 행해지는 일종의 문제 제기이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겨울 제주의 오름, 남평 드들강 유역의 겨울나무를 담아내며 4.3항쟁의 기억과 4대강 사업이라는 장소 특정적 의미 너머의 자연의 순리, 상서로움까지 반영한다.

이세현 작 경계, 오름

미디어 매체를 통해 다양한 작업 형식을 선보여 온 이조흠 작가는 이번 전시에 큐브 형태의 발광 구조물을 전시한다. 항상 북적거리는 연말의 부산스러움과 다르게 작가는 그 안에서 공허함을 느꼈고, 지리한 싸움의 도중에 느끼는 피곤함, 절망감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생의 일순간을 작품에 투영했다.

이조흠 작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서 허무와 공허에 대한 은유를 찾는 이혜리 작가는 우리의 겨울 일상을 채워주는 오브제에서 겨울을 읽어낸다. 겨울철 언 몸을 따뜻하게 녹여주는 붕어빵, 이불 위에서 까먹던 댕그런 귤, 시린 눈 맞아 더욱 선명한 붉은 동백꽃까지 일상의 파편들이 한 화면에 시간 순으로 나열된다. 참은 눈물 한 방울 뚝 떨구듯 혹한의 눈 맞아 떨어진 동백꽃 더미 등은 얼핏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시간의 간극 안에서 일종의 허허로움이 느껴진다.

이혜리 작 계절

우리에게 익숙한 공간과 사물에서 삶을 보여주는 임현채 작가는 자신의 일상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물건 하나하나는 현재를 보여주기도 하고 관람자의 인식에 따라 각기 지나간 기억들이 소환되기도 한다. 아슬아슬 지쳐 보이는 사물들의 조합이지만, 트리를 화려하게 장식할 꼬마전구에서 희망 혹은 의지 따위가 느껴지기도 한다.

임현채 작 현실왜곡

'여행자'를 키워드로 동화 속 세상과 같은 화폭을 선보여 온 최순임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도 순수의 세계, 이상향을 염원한다. 애틋하게 시선을 주고 받는 고양이와 함께 수중 목마를 타고 있는 소녀는 작가 자신의 투영이다.

최순임 작 우리 함께오길 잘했어

박상지 기자 sangji.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