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와 슬로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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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슬로푸드와 슬로라이프
국제 슬로푸드 운동
  • 입력 : 2019. 01.09(수) 13:50
  • 편집에디터

국제 슬로푸드 운동

국제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은 패스트푸드(Fast food)에 대립하는 개념으로 탄생하였다. 지역의 전통적인 식생활 문화나 식재료를 다시 검토하는 운동 또는 그 식품군들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1986년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 주의 브라(Bra)에서부터 시작된 운동이다. 칼로 페트리니라는 사람이 주도한 아르치(ARCI: 여가, 문화협회)의 한 부문으로 음식모임을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아르치는 '풀뿌리 이탈리아 문화 부흥운동' 조직이다. 1980년대 중반에 로마의 명소로 알려진 에스파냐 광장에 맥도날드가 문을 연 것을 기점 삼는다. 이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서 '안티 맥도날드 운동'으로도 불렸다. 관련하여 비만이나 당뇨 등을 일으키는 패스트푸드에 반기를 든 것이기 때문이다. '정성이 담긴 전통음식으로 건강한 먹거리를 되찾자'는 취지를 포괄하고 있다. 슬로푸드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많지만, 그 중 '집단의 기억'을 인용해 둔다. 전통적인 품목인지를 판별하기 위한 방식이다. 이렇게 질문한다. "지역사회 문화의 일부분인가? 품목을 재배, 가공, 섭취하기 위해 세대를 거쳐 전해 내려온 지식이 필요한가?" '한살림' 등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우리나라의 토종 먹거리 운동들과 매우 흡사하다. 하지만 제한된 생산량, 소규모의 맥락을 중요시한다. 생산방식의 근본을 바꾸지 않는 한 다른 제한들이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생산되는 품목의 양을 대폭 늘릴 수는 없다. 만약 생산량이 너무 방대하게 되거나 너무 빨리 늘어 버리면 작물의 생산 구역은 늘고 키우는 가축의 수량이 는다. 생산 방식의 강도가 상승한다. 핵심 소재들을 다른 지역에서 공수해오게 되고, 생산 체인의 단계들을 다 기계화하게 된다. 페스트 푸드로 회귀해버리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다.

프레시디아(Presidia)와 어스마켓(earth market)

슬로푸드운동에는 몇 가지 활동이 있다. 그중 중요한 것이 어스마켓(earth market)이다. 슬로푸드 철학에 따른 가이드라인을 잣대삼아 열리는 농부시장(famer's market)이다. 지역사회가 관리하는 시장들은 중요한 장소, 즉 지역 생산자들이 직접 공정한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질 좋은 음식을 팔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추가적으로 그들은 지역사회의 음식문화를 보존하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는 데 힘을 쓴다. 어스마켓은 매번 현지 프레시디아 생산자를 알리고, 다른 지역의 프레시디아를 초대한다. 프레시디아(Presidia)는 가공업자, 사회문화단체, 재단, 공공기관 등 생산자들과 관계를 맺은 다양한 조력자들이 생산자를 지원하기 위한 즉, 생산자육성 프로젝트다. 그래서 '맛의 방주'의 두레라고 부른다. 1999년부터 시행했다. 소규모 생산자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고립된 생산자들을 통합시키고, 그들의 사정에 더 민감하게 품목의 진가를 알아주는 시장들과 연결해준다. 그래서 프레시디아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일을 하는지, 그들의 힘든 점이나, 그들의 사회적 문화적 배경과 시장의 특성을 파악하여 그들을 알리기 위한 계획 절차를 밟는 것이다. 프레시디아는 없어질 위기에 처한 전통 품목들을 수호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맛의 방주 등록 다음의 단계에 해당한다. 맛의 방주에 대해서는 차후 지면을 할애하겠다.

음식의 나무, 물질과 정신의 균형체

음식의 나무란 개념이 고안되었다. 음식을 여러 측면들이 함께 모여 호흡하는 것이라 정의하고 이를 슬로푸드의 총합적인 개념으로 삼고 있다. 예를 들면 나무의 뿌리는 어느 한 지역, 고도, 기후에 깊이 뻗어 있다. 그러나 그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토양, 기후, 지리뿐만이 아니다. 문화, 지식, 장인기술 등이다. 그보다 더 밑으로 뻗어나가는 뿌리도 있다. 언어, 음악, 시, 공동체 의례 등이다. 뻗어나가는 뿌리는 다른 나무의 뿌리들과 엮이면서 다른 문화, 언어, 역사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들이 본래의 나무를 풍요롭게 해준다.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몸통이 보인다. 나무의 몸통은 좋은 생산을 위한 전제조건을 상징한다. 그것은 일꾼을 위한 공정함, 환경을 더럽히지 않는 깨끗함을 뜻한다. 그 위에는 미각, 후각, 시각, 촉각, 요리, 또는 음식을 좋은 경험으로 만들어주는 꽃과 열매가 달린 가지가 있다. 음식은 비타민과 미네랄,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질과 같은 영양소다. 물질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의 균형체라 할 수 있다. 슬로푸드는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균형이 완성되는 총체다. 그래서 모든 생산품은 씨앗, 지구, 문화, 환경과 사회적 지속가능성, 영양분과 맛을 상징한다. 슬로푸드의 개념은 물질과 정신의 균형체로 확산된다. 나도 일부 관여하여 진행한 바 있는 우리나라의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에 집중된 어젠다를 재성찰하고 이 점들을 주목해야만 그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본다. 예컨대 오히려 우리나라가 먼저 시작했던 여러 운동들과 접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느리게 살기, 슬로라이프의 삶 속에서 음식의 나무에서 말하는 총체성이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쓰지 신이치의 슬로우 라이프(slow life)

근자에 '슬로우 라이프'란 이름이 많이 회자되었다. 페스트라이프(fast life)를 성찰하는 개념이자 철학이다. 나는 이를 슬로푸드나 슬로시티와 연관하여 관망하고 있다. 인류학자 쓰지 신이치가 1990년대 일본에서 시작한 슬로라이프 운동이다. 그가 쓴 책에서 슬로라이프(slow life)의 개념을 '느린 삶'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느리게 사는 것이 뭘까? 그가 제안한 몇 가지를 본다. 예컨대 주말 강 낚시, 바다가 보이는 집, 집에서 직접 만든 요리, 오후의 낮잠, 텃밭이 있는 생활, 친구들과의 잡담, 정원 가꾸기, 일요 목공, 아침 산책, 아이 키우기 등이다. 전통시대에는 일상적으로 행해오던 것들 아닌가. 문제는 언제부터인지 이 생활들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모 정치인이 선거 슬로건으로 내 걸었던 '저녁이 있는 삶'이 울림을 주었던 적이 있다. 역으로 말하면 가족끼리 함께 하는 저녁시간을 우리가 갖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뜻이지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느리게 살기라니, 자가당착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 여유는 깨끗한 물과 공기, 에코 하우스, 채식, 비폭력과 평화, 맥도널드화와 반세계화 등으로 이어진다. 슬로우 라이프와 슬로푸드 운동이 항거하고 투쟁해서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될 대상이라는 뜻이다. 쓰지 신이치는 이런 것을 떠올릴 수 있으면 이미 '느림의 삶'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돈, 효율, 경제성장 같은 것을 우선하는 사회와 대비된다. 소위 '페스트라이프'를 거부하는 삶이 슬로라이프라 할 수 있다는 것. 북미와 유럽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슬로푸드와 반세계화의 경향들도 다루고 있다. 다소 도식적이기는 하지만 양(陽)에 지나치게 경도된 20세기가 남긴 숙제를 음(陰)으로 재생시켜 균형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21세기의 과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톱날 갈 새가 없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인문학

현대인들은 바쁘다. 잠시 눈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 볼 여유도 없다. 이에 대한 성찰, 여기서 슬로라이프 운동이 출발했다. 슬로푸드나 슬로시티라고 다르지 않다. 익숙한 옛이야기가 있다. 톱으로 나무를 베는 나무꾼 이야기다. 몇 시간째 큰 나무를 베다 지쳐있는 나무꾼에게 물었다. 당신의 톱날이 무뎌져 있소. 톱날을 갈면 좋겠소. 나무꾼이 대답했다. 나는 빨리 톱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톱날을 갈만한 시간이 없소. 경영 리더십에서 자주 인용하는 고사 중 하나다.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 모두가 이 꼴 아닐까. 무딘 톱날을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현실적인 시스템이 원인인 것은 틀림없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는 인문학의 역할이다. 후마니타스, 그 인간다움이라는 게 뭘까? 문,사,철을 내세워 인문학을 이야기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다. 이 시대의 진정한 인문학이란 정신없이 톱질을 하는 현대인들에게 톱날을 갈 여유를, 그 시간을 되찾게 해주는 운동이다. 하지만 이 세계는 그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간과 맘몬에 휘둘리는 일상에 저항하고 투쟁할 수밖에 없다. 슬로(slow)는 슬로 이코노미, 슬로 테크놀로지, 슬로 사이언스, 슬로푸드, 슬로 디자인, 슬로보디, 슬로 러브 등 얼마든지 단어조합이 가능하다. 이른바 페스트 사회에 대한 '대안적인' 의미다. 쓰지가 말했듯이 특별하고 새로운 이론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쉽게 접맥할 수 있는 것은 전통적인 삶의 양식이다. 슬로푸드 강령들이나 슬로라이프 풍경들이 제안하는 지역, 토종, 여유, 갱생 등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사실은 인습을 뺀 우리네 전통적인 삶 자체가 슬로우 라이프일 수 있다. 다소 더디 가더라도 올해는 톱날을 가는 해로 삼으려 한다.

남도인문학팁

한국슬로푸드협회가 제안한 슬로푸드의 개념

2014년 세계 8번째로 국제슬로푸드 한국협회가 인준되었다. 슬로푸드의 개념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첫째, 슬로푸드는 자연의 시간대로 자연에 순응하며 자란 무공해 먹거리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 자연의 속도에 따르는 것이다. 땅이나 농민과 소비자에게도 해로운 농약이나 호르몬은 사용하지 않고 옛 방식대로 작물을 재배하고 과실을 가꾸고 동물을 기르는 것이다. 둘째,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농산물을 물리적 거리가 멀지 않고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단계를 거치지 않은 깨끗하고 신선한 농산물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농촌과 도시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주어 우리가 먹는 음식의 재료가 가까운 곳, 살아있는 곳에서 재배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되면 재배된 곳과의 유대감, 공동체 의식이 생기게 된다. 셋째, 과거 우리 조상들이 먹던 그대로 만들어 오랜 시간 묵혀 그 참맛을 느끼면서 먹는 것이다. 고추장, 된장, 간장 등 장류, 삭힌 음식인 젓갈, 익혀먹는 김치, 달여 먹는 엿, 발효과정을 거친 술 등이다. 넷째, 슬로푸드는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다듬고 손질해 요리하는 음식이다. 서로 도와 음식준비를 하고 함께 만들며 음식에 대해 생각하고 음식을 만든 사람에게 감사하고 느리게 음식을 음미하면서 먹는 것이다. 다섯째, 슬로푸드 운동은 슬로라이프를 추구하며 생활습관의 완전한 변화를 실천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경쟁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여유 있는 식사, 습관, 문화, 생활이 한 궤도에 늘어서는 것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음식을 표준화하고 전통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에 대항하는 운동을 넘어 먹을거리를 안전하게 생산하기 위한 영농방식, 생물학적 다양성보호, 지구생태계보호, 느리게 살기 운동까지도 포함하는 의미를 갖는다.

광양국제매화축제가 열리는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변에 위치한 청매실농원 마당의 장독대는 장독마다 매실액과 매실 장아찌가 익고 있다. 뉴시스

전통된장마을로 잘 알려진 강진군 군동면 신기마을에서 할머니들이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메주를 살피고 있다. 뉴시스

담양 창평 슬로푸드. 담양군 제공

완도 전복. 완도군 제공

한우와 표고버섯 키조개. 장흥군 제공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