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근로정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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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일본제품 불매운동과 근로정신대
곽지혜 사회부 기자
  • 입력 : 2019. 07.07(일) 18:21
  • 곽지혜 기자
최근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경제 보복 조치로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에 나서면서 한국에서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의 바람이 전례 없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1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게시된 '일본 경제 제재에 대한 정부의 보복 조치를 요청합니다'라는 청원에는 이미 3만2000명 이상이 동의했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는 일본 여행 취소표 인증샷이 올라왔다. 이밖에도 일본 제품 블랙리스트도 활발하게 공유되는 등 이번 사건으로 인한 국민들의 노여움과 문제의식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이런 분노의 밑바탕에는 지난 75년 세월 동안 해결되지 못한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가 깔려있다.

누군가에겐 지겹고, 누군가에겐 외면하고 싶을 만큼 지지부진하고 답답한 사안. 하지만 초임 기자의 눈으로 바라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눈물은 75년 세월을 한순간에 거스르게 했다.

지난달 27일 대법원판결을 이행하지 않는 전범 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의 행태를 항의하고, 판결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꾸려진 도쿄 방문단 사이에서 강제동원 피해자이자 소송 원고 양금덕 할머니를 만났다.

기자의 손을 잡고 "이렇게 젊은 사람들이 같이 가준다고 하니 마음이 너무 좋네요. 고마워요. 고마워."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할머니의 첫 모습에서 그간의 고단함과 희망이 함께 묻어 나왔다.

20~30대 청년들에게도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던 2박 3일의 일정에서 91세의 할머니는 단 한 번의 힘든 내색 없이 모든 일정을 함께 했다.

'이번에는 사과를 받을 수 있을까.' 단 하나의 희망으로 피켓을 들었고, 소리 높여 증언했다. 허나 고층빌딩 숲 사이 미쓰비시중공업은 또 한 번 견고하고 냉정하게 이들의 희망을 무시했다. 방문단 촉구 활동 내내 단 한 명의 관계자도 나와 보지 않았으며, 상황을 지켜봤던 경호 인력은 본인의 자리만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주주총회장에서 역시 희망적인 답변은 나오지 않았다.

일본 현지에서 한국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돕고 있는 '나고야 지원회' 회원들은 촉구 활동 내내 10명 중 한두 명 받을까 말까 한 전단지를 시민들에게 끊임없이 건넸다.

"당신은 일본인이냐, 한국인이냐", "강제동원 따위 관심 없다" 며 전단지를 뿌리치는 일본 시민들을 보며 허탈함과 동시에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과연 한국의 10대, 20대 청년들에게 일제 강제동원의 역사와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전범기업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답할 수 있을까?

광주 지역 초·중·고등학교에서 종종 근로정신대 강연을 한다는 시민모임 관계자는 "아이들과 1시간가량 열심히 일제 강제동원 역사와 근로정신대에 대한 수업을 마쳤는데, 자리를 비켜주셨던 담임선생님이 들어와 그러시더라고요. "여러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서 잘 배웠어요?"라고. 힘이 쭉 빠졌지만 어쩌겠어요. 더 열심히 알려야죠."라고 말했다.

전례 없던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우리 사회에, 또 일본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75년이라는 세월에 점점 바래가고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역사는 그보다 먼저 회자되기를 바라본다.

"저만큼 가버린 세월, 고장난 벽시계는 멈추었는데 저 세월은 고장도 없네"

술 한 잔의 취기에 양금덕 할머니가 흥얼거린 '고장난 벽시계'의 노랫가락이 끝내 잊히질 않는다.

곽지혜 기자 jihye.kwa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