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에 맞지 않는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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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속도에 맞지 않는 경계
  • 입력 : 2019. 10.23(수) 17:04
  • 최황지 기자
문화부 최황지 기자.
고속도로에 설치된 투명 방음벽에 날아다니는 새가 부딪혀 목숨을 잃는 일이 잦다. 새는 투명벽 너머의 하늘을 향해 비행하다 인간이 구축한 경계선 앞에 고꾸라진다.

지난 3월 발표한 환경부 조사에 따르면 건물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조류는 한 해 800만 마리다. 광주·전남 고속도로도 예외는 아니었다. 화순과 순천 방면 고속도로도 꿩과 물총새 등의 폐사체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발견되고 있다.

이에 최근 순천시는 투명 유리창에 새가 '장애물'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조류 충돌 방지 테이프를 일부 고속도로 투명벽에 붙였다. 창의적인 해결 방안이다. 그러나 여전히 고속도로를 감싸고 있는 높고 기다란 투명벽은 새들의 통행에 방해가 되고 있다.

경계 앞에 무너지는 새의 모습을 보고 '민족'을 연상한 사람이 있다. 지난 2003년 부터 달거리 공연을 통해 '평화'를 노래하고 있는 가수 김원중이다. 최근 그의 야심찬 프로젝트인 전국 투어를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 그는 "투명벽에 부딪혀 죽는 새처럼 우리도 속도에 맞지 않는 경계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KTX를 이용하면 광주와 서울을 오가는 시간이 3시간 남짓 되고 동남아 편도 티켓이 값싸게 팔리는 시대 속에서 우리 민족은 여전히 고립됐다. 김원중의 말처럼 날아다니다가 벽 앞에 부딪히는 새와 한 평생 한반도를 섬으로 인지한 채 살아갈 우리 민족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김원중은 여전히 날기를 소원한다. 김원중이 이사로 있는 코리아-유라시아 로드런은 이동식 무대 차량으로 27일부터 다음 달까지 전국투어를 진행한다. 이번 전국투어는 가까운 국내에서 출발해 향후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하는 이동식 해외투어를 목표로 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휴전선을 육로로 통과하겠다는 열망이 가득 담겼다.

속도에 맞지 않는 경계 속에서 살고 있다. 최근엔 전 세계 축구 경기가 24시간 생중계 되는 시대에 우린 한국과 북한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볼 수 없었다. 정권이 바뀌며 평화 분위기가 한반도에 싹트는 가 했지만 도리어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 벌어졌다. 더욱 높아진 '벽'의 존재를 확인했다.

이 같은 전 국민이 느낀 허망함이 다시 벽을 견고히 했다. 우리의 눈 앞에 있는 죽음의 벽을 '지켜야 하는 벽'이라고 인지하게 되는 위기의 순간이다. 날아야 하는 새가 벽 너머의 하늘을 가기 위해선 경계를 지우는 창의적인 방법이 있어야 한다. 매달 평화를 노래하는 김원중과 평화를 위해 뭉친 코라시아 로드런이 민족을 둘로 갈라 놓은 벽을 예술로 허물었으면 한다.



최황지 기자 orchid@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