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노휘의 길 위의 인생 14> 생애 첫 중동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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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 노휘의 길 위의 인생 14> 생애 첫 중동 여행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19. 11.14(목) 13:21
  • 편집에디터

14-1. 고등학생인 밀렌드(오른쪽 첫 번째). 그의 아버지 사무실이 2층, 내 숙소는 4층이었다. 건물 안에서의 우연한 만남이 그의 가족과의 인연으로 발전했다.

1) 이집트 카이로에 도착하다

바르셀로나에서 2018년 8월 15일 오전 1시 30분에 아테네로 출발, 그곳에서 7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카이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심호흡을 해야 했다(공항 보안 수속은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기내 좌석에서 잔다는 것 또한 얼마나 끔찍한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삐끼'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정보가 마음의 채비를 하게 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1만 5천에서 2만 원까지(1시간 거리) 달라는 택시 기사들을 용감하게 물리치고 버스 두 번 타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구글맵에도 나오지 않는 버스 번호였다. 물어 물어서 갔다(나는 도보 여행에 최선을 다하려고 했다. 도보 여행이란 걷는 것에 비중을 두지만 교통수단을 이용해야 할 경우는 좀 더 서민적인 것이어야 한다고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었다). 이집트의 민낯이 보고 싶었다. 보긴 했다.

정 많은 사람과 바가지요금이 섞였고 마른바람 먼지와 행인과 차가 뒤얽혔다. 낡은 건물. 지렁이 기어가듯 판독할 수 없는 간판들. 통하지 않는 말. 친절을 넘은 넓은 오지랖. 뒤통수치듯 잇속 챙기기. 동양여성 보면 클랙슨 울리기 등.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2) 사기 도시 혹은 미친 도시?

'그럼 그렇지, 내가 누구야? 차노휘지.'

물어 물어서 버스 두 번 타고 숙소 근처까지 왔을 때만도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다. 구글맵에서 숙소를 검색하니 몇 미터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바로 앞이 고가도로 아래 4차선이었다. 4차선인데도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했다. 내 몸은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달리던 차가 멈추던 보행자 중심의 유럽 교통 체계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카이로에 도착하기 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700km를 한 달여 걷고 바르셀로나에서 며칠 머물렀다.

구글맵에서 '도보'를 검색했다. 걸어갔을 때의 방향이 사뭇 이상했다. 직선으로 가면 5분 거리를 왼쪽으로 쭉,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식으로 줄이 그어졌다(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횡단보도가 왼쪽으로 쭉, 갔을 때에야 있었다. 횡단보도도 필요 없었다. 자동차 우선이었다). 잠도 거의 자지 못하고 오느라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어서 쉬고 싶었다. 마침 정차해 있는 택시와 흥정을 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6~7천 원 정도 요금을 제시한 택시 기사 말에 그러자고 했다. 택시에 오르자 이 남자, 엉뚱한 길로만 간다. 내가 지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돌아가자는 말에 숙소 근처까지 와서는 또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간다. 영어도 못한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내비게이션을 보여주며 그대로 따라가라고 했다. 숙소 근처까지 오자 무조건 내려달라고 했다. 그 남자는 돈 걱정만 한다. 그는 돈만큼 달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가까운 거리를 빙빙 에둘러서 나를 내려 줄 심산이었던 것이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또 어떠한가. 부킹닷컴에서 이미 예약했던 곳은 다 나갔다며 더 비싼 곳밖에 없다고 했다. 숙소 또한 1층이 아니라 4층이라 상가 근처 사람들에게 사진을 들이밀며 물어서 왔다. 울며 겨자 먹기로 2인실로 들어갔다(처음에는 4인실이었다).

룸에는 이미 상주하고 있는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무슬림 대학생이 있었다. 그녀는 인근 국가에서 왔는데 비자 연장이 힘들다고 했다. 의대생이었다. 영어가 능숙했으며 종업원을 자신의 하인처럼 시트를 갈아 달라, 무엇이 부족하다 등 요구를 하는 데에 능숙했다. 틈만 나면 안내 데스크에 가서 수다를 떨었다.

나는 샤워를 하고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마신 뒤 침대로 들어가고 싶었다. 이집트에서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술을 간신히 샀다고 해도 휴게실이나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는 마실 수가 없었다. 침실에서만 가능했다. 하지만 룸메이트가 무슬림 여자였다.

무슬림 여자는 내게 이것저것을 물어본 뒤 안내 데스크에 있는 관광 상품을 가지고 와서 열성적으로 추천했다. 내가 숙소에서 제시한 관광 상품을 사면 그녀에게 얼마 정도 수수료가 떨어지는 것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를 걱정하듯이 말하는 그녀의 말투에는 협박성이 있었다. 너는 혼자 왔잖아, 더군다나 여자잖아. 이곳 남자들을 조심해야 해. 혼자 다니는 것은 위험하다고….

3) 그래도 혼자 해보기

이곳 모든 사람을 잠정적인 범죄자로 만드는 그녀의 화술에 거부감이 일었다. 다음날 당당하게 바가지요금 택시를 타고 이집트 박물관에 '혼자' 갔다(그다음부터 우버 택시 어플을 다운로드하여 우버 택시만 이용했다. 우버 택시는 사용자가 출발지점과 도착지점을 입력하게 되어 있고 예상 요금도 제시된다. 인근에 있는 차를 선택하면 선택된 차번호와 운전자 이름이 뜬다. 서비스가 끝났을 때 서로를 평가하는 항목도 있다. 평점이 낮은 운전자는 그 점수가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운행 자체가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우버 택시는 사기를 칠 수가 없다. 유럽에서는 버스와 전철이 잘 되어 있어 우버 택시를 이용할 기회가 없었다).

이집트 박물관에 도착했다. 이집트 박물관 입장료는 내국인에 비해 외국인이 훨씬 비싸다. 어차피 보러 왔으니깐 봐야 했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보안 수속을 밟고 박물관 마당에서 입장 순서를 기다렸다.

그때 내게 다가온 사람이 있었다. 가이드였다. 박물관 안내를 담당하는 프리 해설가. 얼굴빛이 검은 건장한 사내가 내게 와서 끊임없이 작업했다. 그 남자의 끈질김이 성공한 탓일까. 이왕 왔으니 공부하는 셈 치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용을 물었다. 한 시간 반이나 두 시간 정도 걸리는데 3만 원 정도라고 했다. 환율 차이를 생각해도 싼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만을 위한 가이드였기에 승낙했다.

공부를 많이 한 표가 났고 설명도 잘했다. 에어컨이 없는 그곳에서 땀을 흘리면서 2층에 있는 미라까지 관람을 다 끝냈다. 비용을 지불하고는 우정의 미를 거두기만 하면 되었다.

웬걸! 총 해설 비가 3만 원이 아니라 시간당 요금이라고 말을 바꾸는 게 아닌가. 야무지게 뒤통수를 가격당한 느낌이었다. 굴복할 수가 없었다. 큰소리로 항의 했다. 그는 생각보다 질기지 않았다. 곧 꼬리를 내리면서 내일 스핑크스 보러 갈 때도 자기를 불러달라고 했다.

나는 그를 보내고 박물관을 다시 둘러봤다. 오래전 죽은 왕들의 무덤에서 나온 동상들 사이를 지나갈 때 즈음 기운이 빠지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닌가. 온 도시가 나를 두고 사기를 치는 것은 아닐까. 중동이 제대로 내게 환영식을 치러주고 있었다.

처음으로 패키지가 아닌 혼자 하는 여행을 후회하려고 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곧 밀렌드 가족과 이라크 청년 이스마엘을 만났으니깐 말이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14-2. 기내에서 내려다본 카이로.

14-3. 이집트 박물관 풍경.

14-4. 이집트 박물관 프리 해설사와.

14-5. 숙소에서 내려다본 거리. 사람과 차가 얽혀 있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