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 내 홍범도공원에서 고려인들이 홍범도 동상을 어루만지고 있다. 정성현 기자 |
광주광역시 고려인마을 신조야 대표는 정부 정책에서 종종 소외되는 같은 한민족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의 우려는 오는 21일부터 시행되는 이재명 정부의 ‘민생회복 소비쿠폰’ 정책에서도 반복됐다.
정부는 이번 소비쿠폰 지급 대상에 결혼이민자·영주권자·난민인정자 등 일부 외국인을 포함하면서도, 재외동포(F-4) 비자 소지자와 단기체류 외국인은 제외했다. 광주 고려인 동포 다수가 혜택을 받지 못하는 셈이다.
광산구 월곡동에 조성된 고려인마을에는 약 70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결혼이민 등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사람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재외동포 비자 또는 단기체류 비자를 갖고 있으며 일부는 6개월마다 갱신해야 하는 임시 체류자다. 최근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급히 입국한 고려인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난민으로 인정받는 일은 속칭 ‘하늘의 별 따기’ 만큼 어렵다.
신조야 대표는 “한 집 걸러 한 명은 전쟁 때문에 모든 걸 놓고 들어왔다. 그래도 선조의 고향 땅이니 정착하려 애쓰는 분들이 많다”며 “이번 소비쿠폰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아쉬웠다. 이름만 다를 뿐 우리도 이 땅에서 일하고 소비하며 살아가는 이웃이다”고 말했다.
9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소비쿠폰 지급 기준은 주민등록상 내국인으로, 소득·지역에 따라 15만~52만원까지 차등 지급된다. 예산 범위와 행정 효율성을 고려해 지급 기준을 정했다. 외국인까지 포함할 경우 혼선이 불가피하고 사회적 형평성 논란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려인마을 주민 대부분은 제조·건설·농장 등에서 일하며 원천징수 방식으로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고 있다. 언어·문화 장벽으로 인해 저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고, 일부는 전쟁 트라우마로 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책에서 반복적으로 배제되며 정착 의지를 잃고 다시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로 돌아간 사례도 많다.
고려인마을 상담소를 운영하는 이천영 목사는 “차등 지급되는 25만~50만원이 이곳 주민들에겐 매우 큰 돈”이라며 “같이 살아가는 동포들이 국적이 없다는 이유로 매번 정책에서 제외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고려인마을 동행위원은 “러·우 전쟁을 피해 광주에 온 약 900명의 고려인이 조국의 정을 믿고 정착을 결심했지만, 생계와 제도 소외로 상처받고 있다”며 “정부는 홍범도 장군을 기리며 고려인의 긍지를 말하면서도 현실에선 외국인 취급을 하고 있다. 비자 유형별 차등 지원이나 지자체 조례를 통한 보완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고려인을 ‘한민족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정책 기준도 국적 중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영술 전남대 글로벌디아스포라연구소 연구교수는 “피란 고려인은 한국과 초국적 관계를 맺은 동포로 단순한 외국 국적 난민으로만 보기 어렵다”며 “이들은 가족과 재결합하며 한국에 머물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가 이를 고려한 맞춤형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은채 국제이주문화연구소 부대표는 “현행 재외동포법은 해외 거주 동포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국내에 거주 중인 고려인이나 조선족 등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이번에는 추경 일정 등으로 정책 설계가 어려웠을 수 있지만 향후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조례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이 같은 배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국적만으로 한민족 정체성을 가르는 건 또 다른 공동체 내 차별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박병규 광주 광산구청장과 고려인 동포, 주민 등이 광주 광산구 홍범도공원에서 고려인마을 주최로 열린 3·1절 만세운동 재연행사에서 만세 삼창을 외치고 있다. 나건호 기자 |
정성현 기자 sunghyun.ju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