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해를 낳은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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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윤선의 남도인문학> 해를 낳은 닭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 입력 : 2020. 01.01(수) 14:21
  • 편집에디터

닭. 뉴시스

용알 뜨기 풍속으로부터

"마을 각시들 초록명주 차림새로/ 담장 밖에 모여서 소곤거리는 말/ 동이 끼고 패 지어 냇물에 가서/ 용의 알 남실남실 떠이고 오네" 김려(金鑢, 1766~1822)가 정월 대보름 풍속을 노래한 <상원리곡(上元俚曲)> 15수 가운데 일부다. 상원은 대보름을, 리곡은 속된 노래 곧 민요를 말한다. 여기서 말한 용알이 무엇일까? '동국세시기'에 보면 황해도와 평안도 풍속에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집집마다 바가지를 가지고 서로 앞 다투어 우물에서 정화수를 긷는 풍속을 소개한다. 하지만 내 은사 최덕원 교수가 광범위하게 수집한 용알과 용샘 사진들을 참고해보면 남도지역에도 용샘과 용알 뜨기의 풍속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때의 물 긷는 행위가 용알 뜨기다. 맨 먼저 물을 긷는 사람이 그 해의 농사를 제일 잘 짓는다는 풍속이 있다. 건져 낸 물은 노룡란(撈龍卵)이라 한다. 문자 그대로 용알(龍卵)을 건져냈다(撈)는 뜻이다. '열양세시기'에서는 '노룡자(撈龍子)'라 했다. 마찬가지로 용의 아들(龍子) 곧 용알을 건져냈다는 뜻이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깨끗한 종이에 흰밥을 싸서 물에 던진다. 어부시(魚鳧施)라 한다. 물고기가 함의하는 것은 용왕이다. 용왕먹이기라고도 한다. 물고기에게 베푸는 의례이니, 각종 제사를 마치고 행하는 헌식(獻食)과 같고 이 의미는 해안 숲의 하나인 어부림(魚付林) 곧 우실까지 이어진다. 우실에 대해서는 연전 이 지면을 통해 자세하게 언급해둔 바 있다. 최영년(1856~ 1935)이 쓴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이를 급용란(汲龍卵)이라 했다. 모두 용알 뜨기, 용알 줍기 등의 뜻이다.

태양의 알을 담은 불알과 불두덩

용알 뜨기에서의 용알은 단지 맑은 물 혹은 정화수일 뿐인데 왜 알이라고 표현했을까? 용알은 어떻게 생겼을까? 타조알 혹은 메추리알처럼 생겼나? 용 자체가 상상의 동물이니 용알도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을 듯하다. 동지 팥죽의 경단도 용알이다. 중국 장강 유역 형초(荊楚)지역의 7세기경 연중세시기인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동지팥죽 얘기가 나온다. 공공씨(共工氏)의 바보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 역질 귀신이 되었는데 생전에 팥죽을 두려워했으므로 팥죽을 쑤어 이를 물리쳤다. 붉은 팥이 악귀를 예방하는 의미가 있다고 알려진 이유다. 우리도 이 설을 받아 악하고 부정한 것을 물리친다는 의미로 붉은 팥죽을 뿌린다. 팥죽 속에 넣어 먹는 찹쌀가루나 수수가루 덩이 곧 새알심을 지역에 따라 옹심이, 도구랭이, 오구래, 옹셍이라 한다. 이 경단을 가족의 나이 수대로 넣어 끓이는 풍속이 있다. 동지에 팥죽을 먹어야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그래서 작은설이라고도 한다. 동지뿐만 아니다. 한 해의 시작 기점은 설날, 보름날, 입춘 등 시대에 따라 다양하다. 나이 수대로 먹는다는 것은 경단 하나가 나이 한 살을 의미하는 즉, 해라는 뜻이다. 곧 용알이나 새알심이 태양의 은유임을 알 수 있다. 하루의 시작, 한 달의 시작, 일 년의 시작이다. 태양을 관념하는 사례는 광범위하다. 예컨대 인체 용어 속에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성의 고환을 말하는 불알이다. 불의 알이니 태양의 알 혹은 씨앗이라는 뜻이다. 이를 정자(程子)로 해석한다. 남성들에게만 태양이 들어있나? 그렇지 않다. 여성에게도 있다. 남녀 모두 생식기 언저리에 있는 불룩한 부분을 불두덩이라 한다. 불두덩의 '불'이 태양의 비유다. 남녀 모두 태양의 씨앗 혹은 태양의 알을 담고 있는 셈이다. 용알이나 새알심이 모델 삼은 것은 혹시 달걀은 아닐까?

닭숲(鷄林)에서 훼치는 소리

임동권의 견해를 빌린다. "경주의 천마총을 발굴했을 때, 단지 안에 수십 개의 계란이 들어 었었다. 신라의 고분을 발굴해 봐도 흔히 접시 안에 닭뼈(鷄骨)가 있다. 왕릉 속의 단지에 달걀이 들어 있었던 것은 저 세상에 가서 먹으라는 부장(副葬)식량의 하나다. 알속에서는 새로운 생명도 탄생하기 때문에 종교적인 의미에서 부장식량으로 넣었던 것이라 해석된다. 고분의 닭 뼈는 죽은 자가 저 세상에 가서 먹도록 닭을 잡아 요리해서 넣은, 산자들의 정성스런 공물(供物)이었을 것이다. 신라인들은 닭을 좋아했고 닭고기나 알을 종교적 뜻에서 장의예용(葬儀禮用)으로 죽은 자에게 올린 것으로 믿어진다." 계림 곧 닭숲의 나라 신라만 부장품으로 달걀을 사용했을까? 물론 아니다.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공유했던 보편적 의례 중 하나다. '고려사지'를 보면, 연말에 집안에 있는 잡귀를 몰아내고 정결하게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축귀행사로 나례(儺禮)라는 의례를 했다. 주로 궁중에서 열던 행사인데, 닭을 다섯 마리 잡아서 제물로 썼다. 여기서 닭을 사용한 이유가 뭘까? 한 해의 시작과 갱생을 염원하는 의례와 유사하다. 용알을 떠서 한 해 복을 받거나, 동지팥죽은 먹어 한 살 더 먹는 이치와 같다. 닭이 울어 태양이 떠오르듯이, 죽은 자가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재생에 대한 염원이다. '동국세시기'를 보면, "정월 원일(元日), 우리나라에서는 닭 또는 호랑이의 그림을 세화(歲畵)로 사용하여 잡귀를 쫓았다"고 했다. 또 정월 보름 풍속으로 '닭울음소리가 10번을 넘으면 그 해에 풍년이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 했다. 중국문헌 '형초세시기'에도 정월 초하루를 계일(鷄日)이라 하여 닭의 그림을 문 위에 걸어놓는 풍습을 기록하고 있다. 정형호는 그의 글, 「닭의 민속과 상징」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닭울음소리는 어둠이 물러가고 새 날이 밝았음을 알리는 구실을 한다. 그러면 밤의 존재는 물러나야 한다. 혼령(魂靈)은 생시의 인간과 이별해야 하며, 인간을 괴롭히는 잡귀는 인간의 곁에서 떠나야한다. 인간과 이물의 결합을 보이는 야래자(夜來者) 이야기를 보면, 인간으로 변신한 동물이 닭소리와 함께 원래 속했던 지하의 세계로 떠나게 된다." 야래자는 밤에 오는 도깨비이자 귀신이란 뜻이다. 예컨대 뱀이 남자로 변신하여 밤마다 어떤 처녀를 찾아가 관계를 맺었는데, 그 처녀가 비범한 아이를 낳았다는 등의 스토리다. 후백제 견훤 탄생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닭울음소리는 하루의 시작뿐만 아니라 세계의 정화, 세계의 시작 등을 상징하는 풍속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를 낳고 그 해로 들어간 닭

민속학자 임동권은 '닭의 민속과 비교'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대로부터 닭이 우는 계명(鷄鳴)은 길조(吉兆)다. 시보(時報)이며, 일의 시작이나 끝남을 알려준다. 귀신과 맹수를 쫓는 힘을 갖고 있다는 생각이 지금도 전승되고 있다." 길상의 징조이자 시간을 보고해주는 일종의 모닝콜이기도 하다. 나아가 닭의 울음은 천신의 하강에 의한 개국(開國), 나라의 시작을 상징한다. 표상되고 함의된 거의 모든 것들의 시작이라고나 할까. 용알 뜨기든 동지팥죽이든 모두 한 해의 시작이라는 기점의 의미라는 점 대동소이하다. 용이 낳은 알이라 함은 달걀을 모델 삼아 그 형태를 상상했음도 알 수 있겠다. 용알을 보름 전날 밤 닭이 울 때를 기다려 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닭이 울어야 동이 트기 때문이다. 곧 둥근 해를 낳은 것은 닭이요 닭이 낳은 달걀은 해다.

해를 낳은 닭은 끊임없이 진화해왔다. 예컨대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신도(四神圖) 중 주작(朱雀)을 보자. 삼원 이십팔수 가운데 남쪽을 지키는 일곱별 즉 정(井), 귀(鬼), 유(柳), 성(星), 장(張), 익(翼), 진(軫)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자 남쪽방위를 지키는 신령이다. 붉은 봉황으로 형상화했다. 봉황(鳳凰)은 무엇인가?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상상의 새다.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한다. 전반신은 기린, 후반신은 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등은 거북, 턱은 제비, 부리는 닭에서 가져와 조합했다. 오동나무에 깃들어 대나무 열매를 먹고 신령스런 샘물을 마시며 산다는 새다. 그런데 고분벽화 무용총의 봉황을 보면 닭과 구분이 거의 안 간다. 포인트는 벼슬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봉황도 벼슬을 얹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닭에게는 벼슬(鷄冠)이 있다. 이 궁금증은 태양 속에서 산다는 새 삼족오(三足烏)까지 이어진다. 태양을 달리 부르는 말이기도 하다. 세발 달린 까마귀는 과연 까마귀를 모델 삼은 새일까? 삼족오를 형상화한 여러 문양들을 보면 벼슬이 선연하다. 틀림없는 닭 벼슬이다. 지상에서 울음을 울어 해를 낳고 아침을 선물한 닭이 급기야 해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 벼슬을 얹고 있는 새들은 모두 닭을 모델 삼아 진화한 형상들이다. 설화에서 속담까지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런 형상들을 한마디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아침, 시작, 재생, 갱생, 환생, 부활 등으로 확장 인식되는 키워드임은 분명해 보인다. 보름 전날 밤 용이 낳은 알, 하늘로 떠오르는 해의 알, 동지팥죽에 자기 나이 수대로 넣은 새알심, 이들 모두 하루의 시작, 한 해의 시작, 혹은 인생의 시작을 함의하는 기점의 의미다. 태양으로 갔던 닭 다시 울어 경자년을 활기차게 열어젖혔으니 개명(開明)의 시대 기운생동하게 펼쳐가야겠다. 다시 시작이다.

남도인문학 팁

닭제산 계봉(鷄峯)과 방주(方舟)

닭 얘기를 꺼냈으니 한 마디 더, 충남 홍성군 홍북읍 노은리와 예산군 응봉면 계정리 사이의 닭제산 이야기를 소개해 둔다. 옛날 세상이 온통 물에 잠겼을 때 닭제산(닭재산과 병용해서 사용된다) 봉우리는 닭이 한 마리 앉을 만큼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혹은 홍수가 나서 모든 생명이 다 죽었는데, 닭 한 마리만이 이 산에 올라가 살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들도 있다. 금광도 없는데 닭 만한 금덩이가 하나 나왔다. 닭제산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들이다.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이 닭제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이산에서 무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닭제산의 계봉(鷄峯) 곧 닭 봉우리다. 마치 홍수설화의 한 버전인 대홍수 때 살아남은 생물들, 혹은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 살아남은 생물들을 연상하게 해준다. 문제는 닭 봉우리 방주에 닭 한 마리만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 이 이야기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신라 김알지 탄생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홍수 이후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모두 종(種)의 시원이나 시작을 은유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닭은 아침을 여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열거나 시대를 열고 나아가 주작이나 봉황 등으로 끊임없이 변화 생성되어 왔다. 2020년 정월 초 아침 닭소리를 듣는 것은 경자생들에게만 해당되는 시작이 아니라 거듭나고 갱생하기를 원하는 모든 이들의 시작이다.

이윤선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용 이미지. 뉴시스

용 이미지. 뉴시스

용 이미지. 뉴시스

삼족오 연 이미지. 뉴시스

삼족오 연 이미지. 뉴시스

닭. 뉴시스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