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2> 요르단의 두 가지 비타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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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노휘의 길위의 인생
차노휘의 길 위의 인생 22> 요르단의 두 가지 비타민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 입력 : 2020. 03.12(목) 13:21
  • 편집에디터

22-1. 호수를 품고 있는 마른 산.

1) 사막에서 운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들

차를 렌트하기 위해서 우버 택시를 탔을 때 운전사는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커피를 내게 건네면서 이렇게 말했다. "요르단에서는 아침에 커피와 담배가 비타민이에요."

처음에는 그의 말이 의아했지만 곧 알게 되었다. 커피 배달을 하는 아저씨를 만난 뒤부터였다. 커피 값도 쌌다. 동전 하나인 0.5디나르(800원 정도). 다운타운으로 걸어가면서 매번 보던, 작고 초라한 구멍가게가 그의 것이었다. 덤으로 물까지 주었다. 매일 아침이면 그의 가게에서 커피와 물을 사서 차 안에 두었다. 하루를 시작할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이곳에서 운전을 하면 마른 사막에서 니코틴 냄새를 맡는다. 끝날 것 같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도로 위에서 말이다. 풀 한 포기 없는 둔덕 위 모스크를 보다가도, 도로변에서 햇볕을 등지고 검게 탄 남자나 니카 입은 여자가 걸어가는 것을 볼 때에도 모래 바람이 냄새를 내려놓고 간다. 때맞춰 나는 창을 연다. 바람이 리드미컬하게 머리카락을 날린다. 바람 소리도 제법 들을 만하다. 선팅을 할 수 없는 이곳 차창은 고스란히 햇빛을 맞아들인다. 나는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을 때보다 더 탔다. 자세히 보면 운전대 차창과 가까운 왼쪽 뺨이 더 까맣다.

사막에서 운전을 하면 늘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휴대폰 배터리를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내비게이션 대신 휴대폰 구글맵을 종일 작동시키기 때문에 배터리 소모가 충전되는 속도보다 빠르다(휴대폰이 변기에 빠진 적이 있다. 가슴을 얼마나 졸였던지…. 폰이 없으면 모든 것이 정지된다). 연료도 수시로 점검해야 한다. 연료량 표시가 눈금 하나만 남으면 불안해진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멈춰버리면? 생각하기도 싫다. 그늘 한 점 없는 곳에서 나는 마른오징어가 될 것이다. 그것뿐일까. 바퀴가 구멍 날 수도 엔진이 고장 날 수도… 그렇지 않아도 배터리 소모가 빠른 폰을 왼손에 들고 구글맵을 보면서 오른손으로만 운전을 하는데…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 사람들의 거친 운전을 닮아가듯 생각도 생존으로 바뀐다. 닥치면 해결하자!

2) 여자 혼자 운전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

요르단은 남북으로 약 460km, 동서로 약 355km 뻗어 있다. 북쪽은 시리아, 북동쪽은 이라크, 남동쪽과 남쪽은 사우디아라비아, 서쪽은 이스라엘을 경계로 한다. 남쪽 아카바 만에 19km의 해안선을 끼고 있을 뿐 국토의 5분의 4가 사막이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사막을 지나야 한다.

어느 날은 지도에서 남동쪽인 카라크(Al Karak)로 향했다. 오래된 성이 보고 싶었다. 한 시간 정도 달렸을 때였을까, 모래 바람이 나를 반겼다. 온통 희뿌연 바람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볼 수 없었다. 차체도 흔들렸다. 비상등 켠 도요타 지프가 앞서 달려가지 않았으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그 불빛을 따라 모래 안개를 벗어났다.

그렇게 세 시간 달려서 도착한 고지대에 있는 카라크 성( Karak Castle)은 거대했다. 성을 둘러보면서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실은 달리고 싶어서 목적지를 정할 뿐이었다. 그래서 타필레(Tafileh)를 향해 지체 없이 출발할 수 있었다.

달리다 보니 마르고 거대한 산이 내 앞에 있었다. 구불구불 오르막 도로를 액셀 밟는 발바닥 강도를 달리하며 '그야말로 구불구불하게' 올라갔다. 갑자기 처음 내 차가 생겼던 스물두 살 때가 생각났다. 소나타 중고차를 몰고 지리산을 통과해서 남원으로 내려갔다. 응달진 곳곳에 잔설이 있어서 자칫 잘못하면 굴렀을 수도 있었는데도 나는 용감했다.

여전히 나는 무모했다. 가드레일 아래가 낭떠러지인데도 그 풍경에 취했다. 낭떠러지 밑도 메마른 땅이고 그 밑도 마찬가지였다. 태양에 빛나는 모래 둔덕에 비현실적으로 진한 녹색을 발견한 것은 산중턱 즈음이었다. 차를 멈췄다. 호수였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지만 함께 환호성을 질러줄 사람은 없었다. 차도 아주 띄엄띄엄 지나갔다. 특히 외곽에서는 차 구경하기가 더 힘들다. 처음 공항에서 만난 우버 택시 기사 아멘이 내가 요르단을 떠날 때도 배웅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은 고작 유명한 관광지를 연결하는 도로일 뿐인데 너는 방방곡곡을 다니더라며 놀라워했다.

그래서 그럴까. 현지인들은 이방인인 여자 혼자서 운전하는 것을 신기하게 보았다. 사막을 달리다가 마을로 들어설 때가 있다. 마을 중심인 시장을 지나면 현지인들이 나를 향해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한다. 그럴 때면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거나 그것도 귀찮으면 모른 척해버린다. 이곳 시장도 이집트처럼 차와 사람이 뒤엉킨다. 끼어들기도 잘하고 클랙슨 소리도 빈번하다. 제법 넓은 도로로 빠져나오면 홍차를 파는 남자가 차 사이를 누빈다. 그는 신호가 걸렸을 때 길쭉한 주둥이가 있는 큰 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정차된 차를 향해 찻잔을 들이민다.

손수 운전을 하다 보면 정해진 루트대로만 가는 관광과 달리 다양한 모습을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그게 묘미이기도 하지만 간혹 여자 혼자일 때는 예기치 않은 상황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산 중턱에서 호수 사진을 찍고 돌아설 때였다. 현지인 남자들로 앞뒤 좌석을 꽉 메운 차가, 차창을 다 내리고는 나를 보았다. 새카만 얼굴이라 두 눈만 유난히 확대되었다. 그들이 내게 말을 걸면서 속도를 줄였다.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한 가지 상황에 몇 가지 결과가 나올 경우, 당황했을 때에는 제일 좋지 않은 결과로 귀결된다. 모른 척하면서 운전대를 잡았다. 웬걸, 요 남자들, 아주 천천히 운전하면서 내 진로를 방해한다.

에라, 요것들!

마침 뒤에서 지프가 와서 내 차를 추월할 때 나도 액셀 밟은 발바닥에 힘을 주고는 그 차를 추월해버렸다(다른 차가 있어야 그들이 딴짓을 못한다). 오르막길이었고 막 산 정상 부근을 지날 때였다. 그들이 탄 차는 오래된 자주색 기아 세피아였다. 딴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성능이 좋지 않아 오르막길에서 서행할 수밖에 없었을까. 그들을 한참 떨어뜨려 놓았을 때에야 달리 생각해보았다.

산을 내려와서 풍력발전기가 지평선에 일렬로 서 있는 곳을 지나쳤고, 도로변에서 양 떼를 몰고 가는 어린 목동과 베두인 텐트로 추정되는 언덕을 봤으며, 좁은 길 하나만 달랑 있는 도로를 달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3) 요르단의 비타민

하루하루가 '생존'이라는 말이 맞다. 성추행당할 뻔한 남자한테도 담담했던 내가 차를 렌트한 날부터 긴장했다. 운전을 하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아침이면 사막 벌판을 달린다. 가슴이 떨린다. 사막 운전은 중독성이 있는 걸까. 아니, 니코틴과 커피 향을 품고 있는 사막 바람이 그들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끈질긴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둘이 정말 요르단의 비타민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 차노휘 : 소설가, 도보여행가

22-2. 고지대에 있는 카라크 성(Karak Castle).

22-3. 이라크가 지척인데 가지 못한다. 여행 금지 국가다.

22-4. 한적한 도로라 여유 있게 포즈도 잡을 수 있었다.

22-5. 마른땅에 가는 물줄기 같은 도로를 따라 운전을 하고 있다.

22-6. 아즈라크(Azraq)에서.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