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현의 여의도 칼럼 1>"호남보수론? 5·18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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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칼럼
김정현의 여의도 칼럼 1>"호남보수론? 5·18부터 시작하라"
김정현 정치평론가
  • 입력 : 2020. 05.10(일) 16:01
  • 편집에디터
김정현 정치평론가
미래통합당에서 간헐적으로 '호남보수론'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까지 주요 담론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니지만 미래통합당에 미래가 있으려면 불모지 호남에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고 호남에도 보수가 있으니 거기에 착근(着根)해야 한다는 논리다.

미래통합당 입장에서는 맞는 말이고 호남사람들도 제1야당이 호남에 대해 태도를 전향적으로 바꾼다는데 크게 거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목포 등 지역에서 생면부지의 영남출신들을 급히 차출해 출마시킬 정도로 호남지역에서 후보다운 후보를 못낸 미래통합당 입장에서 호남문제는 큰 숙제다. 그러나 5·18망언 사태가 불러일으킨 파장을 생각하면 미래통합당의 호남성적표는 뿌린대로 거둔 것이다.

기계적 의석분포로만 보면 이번 총선에서 영남, 특히 TK에서는 미래통합당을, 호남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배타적으로 선택하는 투표성향을 보였다. 영남지역 민주당 득표율 상승까지 감안하면 지역주의가 강화됐는지 논란이 있지만 지역주의 문제는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지역주의는 박정희 군사독재에서 기원했다. 박정희는 호남지역에서 더 많은 표를 얻어 대통령이 됐으나 유신 종신집권으로 가는 동안 지역감정을 조장했고 경부선 중심의 산업화전략과 결합되면서 경제적 불평등, 사회문화적 차별로 확대 재생산됐다. 그러나 정반합(正反合)식으로 이야기하면 지역주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반지역주의 운동을 낳았다. 5·18을 기점으로 호남에서 김대중이라는 빼어난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제도권 야당과 민주화운동이 반지역주의 정서와 전면적으로 결합한 것도 같은 맥락이고, '영남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이라는 두 대통령을 배출한 것도 따지고 보면 지역주의의 틀을 깨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의 미래통합당에서는 우리 정치사에서 진보개혁과 반지역주의를 상징하는 김대중 노무현의 뚜렷한 이름에 영호남 협치거버넌스를 구사하는 현직 문재인 대통령, 그리고 대구에서 낙선했지만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는 말로 한계를 넘어서려는 김부겸 같은 정치인을 발견하기 어렵다. 국민들이 제1야당의 리더쉽에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김부겸과 같은 스토리 텔링과 투혼, 용기, 진지함을 읽어내지 못하는 한 미래통합당은 영남보수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 것이고 그것은 영남을 위해서도 좋지 않다.

정당정치론 입장에서 건전한 야당 없이 건전한 여당은 없다. 동전의 앞뒷면이고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권력은 교대한다. 10년주기설도 있지만 무한한 권력은 없고 여야는 바뀐다. 그러나 지금의 미래통합당 식으로는 아니다. 진영논리가 팽배한 이번 선거에서 국민이 야당권력을 심판했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대한민국에서 180석의 슈퍼 집권여당을 견제할 수 있는 파워집단은 언론, 시민단체 등도 있지만 견제세력의 중심은 여전히 위성정당까지 포함해 103석을 쥐고 있는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이다. 그러나 그 제1야당이 총선이 끝나고 나서도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부정선거 음모론 등 지리멸렬 그 자체다. 그나마 최근 비대위원장으로 거론된 김종인 전대표가 40대 기수론을 제기하면서 파장을 일으켰지만 당내 중진들의 반발에 직면했다. 기득권으로 첩첩이 둘러싸인 미래통합당이 '김종인 구상'을 받아들일지도 미지수다.

5·18 40주기가 며칠 안 남았다. 미래통합당이 호남에서 보수를 이야기하려면 적극적으로 5·18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망월동 묘역에 이명박 대통령 시절 '님을 위한 행진곡' 대신 방아타령이 울려 퍼지고 박근혜 대통령 시절 무표정한 표정으로 태극기만 기계적으로 흔들던 황교안 국무총리의 모습은 보수 몰락의 징후를 보여준 장면이었다. 만약 지금이라도 미래통합당 내에서 그것이 호남보수론이건 선거전략이건 간에 5·18과 호남을 전향적으로 접근하자는 목소리가 커진다면 그것 자체가 건전한 야당으로 바뀌는 신호가 될 것이고 건전한 야당은 건전한 정치를 이끌테니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와중에도 정치권력이 지역을 중심으로 아성을 쌓고 있을 때 광주에서 대구쪽에 병상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는 보도를 보고 역병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과 연대의 힘을 느끼지 않았는가.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