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진실규명 통해 박관현 열사 다시 살아날 것"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5·18 진실규명 통해 박관현 열사 다시 살아날 것"
박관현 열사 40주기 추모식 ||추모객 200여명… 열사 뜻 기려||누나 박순애 "故 정동년 생각 나"||80년 5월 녹음된 육성 울려 퍼져
  • 입력 : 2022. 10.12(수) 17:35
  • 강주비 인턴기자

12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진행된 고(故) 박관현 열사의 40주기 추모식에서 최영준 박관현기념재단 이사장이 고인의 묘에 분향하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으며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 고(故) 박관현 열사의 40주기 추모식이 12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 열사의 유족과 문인 북구청장,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 당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인원 등 200여 명이 참여했다.

추모식장으로 모여든 추모객들은 한쪽에 전시된 박 열사의 사진을 보면서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박 열사의 중학교 졸업사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당선 인터뷰, 들불야학 활동 시절의 모습 등이 담긴 사진 앞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12일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고(故) 박관현 열사의 40주기 추모식에서 정용화 전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장이 고인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추모식은 △최영준 박관현기념재단 이사장 인사말 △추모사 △열사 약력보고 △추모공연 △박 열사 생전 육성 청취 △유족 인사말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헌화 순으로 진행됐다.

원순석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추모사 낭독에서 "암매장과 성폭력, 헬기 사격 등 밝혀내야 할 진실이 여전히 많다"면서 "아직까지 규명되지 못한 진실을 밝혀내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우선의 과제다. 이를 통해 박관현 열사는 우리의 마음속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박 열사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다 함께 수배됐던 정용화 전 광주전남민주화운동동지회장은 고인에게 쓴 편지를 읽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정 전 지회장은 편지에서 "네가 운명을 달리한 지도 벌써 40년이 됐다. 나는 네가 감옥에서 죽어갈 때 발을 동동 구르며 '제발 죽지만 말아다오'라며 하늘을 향해 얼마나 빌고 울었는지 모른다"면서 "저승에서 만날 때 뜨겁게 포옹할 수 있도록 남은 삶을 부끄럽게 살지 않겠다"고 울먹였다. 그는 마지막에 '관현아'를 크게 세 번 외치며 고인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표했다.

유족 대표로는 고인의 누나 박행순 여사가 자리에 섰다. 박 여사는 "오늘따라 정동년 이사장이 너무나 생각난다. 40주기를 이렇게 잊지 않고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면서 짧은 소회를 전했다.

12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고(故) 박관현 열사의 40주기 추모식에서 고인의 누나 박행순 여사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이어 박 열사의 생전 육성 녹음이 행사장에 넓게 울려 퍼졌다. 해당 녹음본에는 5·18민주화운동 직전 전남도청 앞에서 열린 민족민주화성회의 현장 소리와 박 열사의 연설이 함께 담겨 있어 마치 그날을 재현하는 듯했다. 일부 추모객들은 눈을 감고 박 열사의 목소리에 집중하기도 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반주가 나오자 추모객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이들은 노래를 끝마치고 민주묘지 1묘역 2구역 88번에 마련된 고인의 묘로 향해 헌화와 분향을 하며 추모제를 마무리했다.

이날 추모식은 1부 추모제와 2부 기념 집담회로 나눠 진행됐다. 2부 기념 집담회는 같은 날 오후 4시 광주 동구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서 열렸으며, 박 열사의 활동과 의미를 재조명하고 박관현기념재단의 향후 역할을 모색하는 자리가 됐다.

오는 11월에는 박관현기념재단, 광주시 등이 5·18세계기록유산 등재 11주년과 박 열사 40주기를 함께 기념하기 위해 '경계를 넘어 공감과 연대의 기억으로'라는 이름의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편, 박관현 열사는 1980년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학원자율화, 반독재투쟁 등 학생운동을 주도하다 1982년 체포돼 징역 5년 형을 선고 받았다. 박 열사는 수감 중에도 5·18 진상규명과 교도소 내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40여 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는 투쟁을 이어가다 1982년 10월12일 29세의 나이로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12일 오전 11시 광주 북구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고(故) 박관현 열사의 40주기 추모식이 진행되는 가운데 추모객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강주비 수습기자

강주비 인턴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