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에세이·탁인석> 어느 토요일 오후의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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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에세이·탁인석> 어느 토요일 오후의 다큐
탁인석 광주문인협회장
  • 입력 : 2022. 12.15(목) 13:19
  • 편집에디터
탁인석 협회장
겨울바람이 차갑다. 하늘도 칙칙한 회색빛이다. 토요일 오후를 택해 광주 유림회관에서 행하는 '동산문학' 연말행사에 참석했다. 행사는 적당한 규모로 실속 있게 진행되고 있었다. 유학을 신봉하는 유림儒林들의 교육장인 유림회관은 광주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믿음의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광주 남구 사직동의 향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필자에게는 무심상 넘길 수 없는 의미가 큰 공립교육기관이다. 원래는 이곳 향교자리가 광산탁씨 도선산이었다. 그런데 조선조 조정에서 향교를 짓는다고 옮기라 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것이 광산탁씨 묘역을 지금의 서구 마륵동으로 옮기게 된 단초가 되었다.

광주시에 향교는 이 지역의 인재 양성과 유림 교육에 크게 공헌해 온 유일한 장소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유교의 예절과 경전을 배우면서 공자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유림회관은 근대에 와서 붙인 이름이다. 그리고 이후의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니까 과거 명륜당의 여러 행사가 이곳에서 현대화되었다 할 수 있다.

향교의 책임자인 전교(典校)의 취임은 물론 조선시대 같았으면 유림들의 교육도 지금의 유림회관 차지였다. 필자도 유림회관에서 두어 번 특강을 한 적이 있고, 광주문협 회장 취임도 많은 축하객에 둘러싸여 성대하게 행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 '동산문학' 문학제의 축사 또한 문협회장으로서는 마지막 축사가 될 것 같다. 필자의 생각에 유림회관은 내부를 더 다듬어서 광주시민들을 위해 이용률을 확대해 갔으면 한다. 지금은 향교가 담을 헐어버려 큰길에서도 잘 보이는 것은 물론 접근하기 쉽고 미관상에도 보기 좋은 곳으로 탈바꿈했다.

그럼에도 향교가 젊은 세대에게는 인기가 없다. 향교의 의미와 전통을 알아야 한국의 K-컬처도 개발할 터인데 말이다. 유림회관에서 '동산문학' 신인문학상 시상식은 상당 시간 진행되었고 내 자신 또한 고무되기도 했다. 주최 측과 회원 여러분이 함께했었고 차기 광주문협 회장에 뜻을 둔 3명의 후보가 선거운동원과 함께 참석하니 자리는 채워지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솔직히 필자는 이 소박한 문학행사에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이 얼마나 자신의 일처럼 관심 가질까 싶었던 것이다. 문학에 대한 열정과 이를 구심점으로 모인 이날의 문학행사는 그럼에도 16명의 신인들을 당선시켜 이들에 대한 기대감을 모아 미래를 당부하는 자리였다. 바깥공기는 차갑지만 이 행사에 참석한 83세의 신인여성은 '평생 문학을 하고 싶었는데 이제야 등단의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고 눈물을 글썽이기까지 했다. 순간 영국의 계관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무지개'가 떠올랐다.

"하늘은 무지개를 보노라면/내 가슴은 뛰노라/ 나 어린 시절에 그러했고/어른이 된 지금도 그러하고/나이가 들어도 그러할지니/그렇지 않으면 죽은 것과 같으리니/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바라느니 나와 하루 하루가/자연의 경건함에 이루어지기를·"

세상은 삭막하다. 요즈음 몸으로 느끼는 체감지수가 더욱 그렇다. 여기에다 정치나 경제, 사회 또한 뒤숭숭하다. 그럼에도 문학하는 사람들은 순수 그 자체를 갈망한다. 이럴 때 이 세상에 맑은 물을 공급하는 자는 약자지만 그들이 되레 강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한다.

문학은 한마디로 글로 쓰는 인간탐구가 아니던가. 작품으로 로마제국의 성립을 그려낸 당대의 천재 시인 베르길리우스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문학은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괘념치 않고 신념을 다하여 추진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언젠가 문학행사에 축하화분을 배달하는 사람이 문학은 '돈벌이가 안 되는데도 온몸으로 활동하는 문인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던 말이 나를 설명 할 수 없는 환청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필자는 축사 중간쯤에서 최봉석 발행인의 문학에의 헌신을 격려했고 지역문학의 전국화를 역설했다. 그러면서 기업 메세나 운동을 공격적으로 하여 원고료도 지급하고 예술재단과 연계하여 돈이 되는 글쓰기를 주문하고 단을 내려왔다. 행사가 끝날 즈음 밖에는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추위는 심해졌고 출출한 배를 문지르며 J신문 L기자와의 약속 장소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이런 토요일 저녁에는 맛갈난 구이 하나 시켜놓고 소주잔을 기울이면 이런저런 여러 상념이 녹아날 것만 같았기에.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