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무한책임’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대통령의 ‘무한책임’
박성원 편집국장
  • 입력 : 2023. 02.08(수) 14:35
박성원 국장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한국을 찾았을 때 윤석열 대통령에게 ‘The Buck Stops Here’란 문구가 적힌 패를 선물했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뜻으로, 미국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1884~1972)이 재임 중 집무실 책상 위에 놓아뒀던 패를 본 따서 만들었다.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에 출연해 트루먼의 명언으로 유명한 ‘The Buck Stops Here’라는 글귀를 인용한 게 선물의 계기가 됐다. 윤 대통령은 방송에서 트루먼의 탁상용 패를 얘기하며 “많은 사람과 의논도 하고 상의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결정할 때 (대통령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고, 국민의 기대와 비판과 비난도 한 몸에 받는다. 열심히 하고 국민에게 평가를 받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언급한 트루먼은 한국전쟁을 고리로 우리나라와 밀접하게 연결된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1945년 부통령직을 수행하던 중,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4선으로 연임한 지 한 달 만에 사망해 대통령이 됐다. 트루먼은 준비 없이 대통령이 된 탓인지 재임 기간엔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서 냉전기로 이어지는 급격한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냉철한 판단력으로 전후 질서 확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재조명되고 있다. 그는 인기있는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해 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고, 한국전쟁에 미군을 파병하는 등 중대사를 직접 결정했고 그에 따른 책임도 자신이 떠안았다. 당선 직후 윤 대통령이 현직인 바이든을 포함해 46명에 달하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크게 주목받지 못한 트루먼을 인용하며 ‘무한책임’을 강조한 점이 인상 깊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대통령 말의 진정성이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 5일 참사 100일을 맞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회추모제에서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며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파면,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독립적 조사기구 설치 등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윤 대통령이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초심으로 돌아가 진정한 사과와 후속 조치로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