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암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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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소설 '암태도'
박간재 전남취재부장
  • 입력 : 2023. 02.12(일) 14:51
박간재 부장
인문대 앞을 지나가는 중년의 교수 눈빛에는 결기가 서려 있었다. 굳게 다문 입은 어떤 고난에도 맞서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예’라는 답보다 ‘아니오’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올 것같은 분위기였다. 국문과 수업을 받진 않았지만 후배를 따라가 강의를 들은 적 있다.
87년 6월항쟁 이전이었고 독재정권의 폭력, 80년 5월항쟁 당시의 고통, 뿌리깊이 내재된 호남 차별에 대한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때 쯤이다. “형한테 꼭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어요”. 1학생회관 서클룸에서 이념활동을 하던 후배였다. “무슨 책인데” “소설 암태도 인데요. 송기숙(전남대 국문과·1935~2021) 교수가 쓴 책입니다” 그렇게 송기숙 교수가 쓴 소설 암태도와 인연이 시작됐다.

“바다는 따가운 가을 햇살을 재재발기며 팽팽하게 힘이 꼬이고 있었다/하늘도 째지게 여물어 탕탕 마른 장구 소리가 날 듯했다/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 위로는 뭉게구름이 한 무더기 탐스럽게 피어오르고 있었다.(암태도 제1장 앞에 나선 사람)”

민족주의 리얼리즘의 본령을 지켜온 송 교수는 행동하는 지식인의 표상이었으며 소설 ‘암태도’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담아낸 작품이었다. 송 교수는 소설 말미에 이렇게 적고 있다.

‘내가 이 사건을 소설화 하려고 마음먹은 것은 이 사건 자체의 극적인 발전과정도 흥미롭거니와 반봉건적·반일적 순수한 민중운동이 암태도라는 작은 단위의 섬에서 또 아주 밀도있게 진행돼 민중의 의지를 관철시킨 점이 통쾌했기 때문이다.
매몰됐던 일상성에서 깨어나 자기의 삶을 찾아 몸부림치는 것은 인간의 가장 본래적인 신선한 모습일 것이다.’

1923년 일어난 ‘암태도 소작쟁의’는 우리나라 소작쟁의 효시로 일제강점기 대표 항일농민운동으로 평가 받는다. 지주 문재철의 70%~80%를 요구하는 소작료를 내리기 위해 1923년 8월~1924년 8월까지 소작인들이 벌인 소작쟁의를 소설화 했다.

억압적 일상에서 깨어나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 몸부림쳤던 농민들의 삶과 투쟁을 묵직하고도 감동적인 필치로 보여준 역작이다.
문득 궁금해진다. 왜 지주들이 갑자기 소작료를 올렸을까.

일제가 1차대전 후 대공황에 직면하면서 곡가가 폭락했다. 지주들 역시 경영수익이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했는데 이 대책이 지주경영 강화였으며 소작료 인상으로 나타났다.

즉 반분타조제(半分打租制)를 4대6 타조제(소작인몫 4, 지주몫 6)로 바꿨으며 잡을도조(지주가 소작인을 입회시키고 벼의 수확 예상량을 판단해 정하는 도조)라는 소작료 장수방법을 채택했다. 벼가 익을 무렵 논을 둘러보며 대략 어림잡아 수확량을 책정하는 수법이다.

말이 절반이지 실제로 수확하고 나면 70~80% 이상 지주들에게 배당됐다고 한다. 이 잡을도조를 암태도 농민들은 “농민들을 잡을 도조”라고 비판했다. 암태도 농민들은 이 소작료를 다시 40%로 낮춰달라고 1년동안 항쟁했던 것.

마침내 농민들이 승리를 쟁취했으며 소작료를 낮추는데 성공했다. 이후 문재철은 목포에서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문태고(문재철의 문, 암태도의 태)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했으며 상해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는 등 기여한 공로로 국가유공자가 됐다. 그 자금이 정말 독립을 원하는 자금이었을까. 아니면 일종의 보험이었을까. 본인만 아는 사실일 터다.

한동안 절판돼 구입할 수없었는데 지난해 말 소설 ‘암태도’가 재출간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책을 손에 쥔 순간 ‘뛸 듯이’ 기뻤다.
마침 올해가 암태도 소작쟁의 발발 100주년이 되는 해다. 신안 암태도 농민들이 보여준 항쟁의 정신은 여전히 이어져 오고 있다.
1929년 나주학생운동이 일어났으며 사건 발단이 됐던 여학생 박기옥은 이후 암태도 소작쟁의를 이끈 서태석의 며느리가 된다.
그 학생운동이 80년 광주5월항쟁으로 이어졌다. 불의에 맞서며 올곧은 길을 가야한다는 선인들의 의지를 다시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아야할 때다.
아마추어보다 못한 작금의 국내 현실을 보면 더욱더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미국 사회학자 밀즈가 말하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길러 세상을 ‘대자적(對自的) 태도’로 통찰할 줄 아는 눈을 키워야 할 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