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 광주의 따뜻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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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광주의 따뜻함
노병하 사회부장
  • 입력 : 2023. 04.02(일) 16:26
노병하 부장
오월만 되면 광주는 저 가슴 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눈물로 젖어들어간다. 42년을 울었는데도, 멈출 기미가 없다. 올해도 속절없이 43번째의 봄이 왔다.

다만 이번엔 전령을 데려왔다. 전우원이라는.

지난 주말, 전두환씨(신문에서 전두환에 ‘씨’라고 붙이는 것은 ‘전씨’라는 줄임말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의 손자가 광주에 왔다. 만 27살의 젊디 젊은 그는 굉장히 긴장한 얼굴이었다. 그럴만도 하다. 그가 광주에 가진 두려움은 사뭇 엄청났을 것이다, 어찌 보면 그와 광주는 원수 사이가 아닌가.

그래서인 그가 광주 오기 전 일부 사람들은 “약에 취해서 저런다” “재산을 나눠주지 않아서 그런 것” 등 20대 철부지의 막나가는 행동이라고 폄하했다.

광주 역시 술렁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전씨의 핏줄이다. 그가 내린 명령으로 인해 아들이 죽었고, 딸이 죽었고, 형제가 죽었다. 그 핏자국이 아직도 선명한데 용서를 구해야 할 전씨는 이미 떠나버렸고, 그의 가족들은 예상했던 대로 호의호식 중이다.

그런데 이번 광주의 반응은 정말 달랐다. 오월어머니집 회원들은 “당신이 뭔 잘 못 있겠냐만 와줘서 고맙다”했고, 5월 공법 단체는 “괜찮다. 애썼다”라고 그를 안았다.

광주시민들도 이것저것 떠나서 “올 때 얼마나 걱정했겠냐”면서 “온 김에 쉬었다 가라”고 말했다.

어디 이 뿐일까. 그의 사죄에 한 유족은 울먹거리기도 했다. 전재수 열사의 형 전재룡(62)씨는 “그간 사무치게 원망했다. 그러나 오늘 이 응어리가 어느 정도 해소되는 것 같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못한 일을 이 젊은이가 해냈다. 가족으로서 광주시민으로서 정말 고맙다”며 묘역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랬다. 40여년의 엄청난 미움도, 사무치는 분노도 한 젊은이의 고개 숙임에 앞서지 않았다. 안으로 갈무리하고 그저 “애썼다”라며 그의 어깨를 두들길 뿐이었다.

어쩌다 이런 도시에서 태어나 살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다만 걱정 되는 것이 있다.

오는 43주기 5·18을 앞두고 광주에서는 ‘분열’과 ‘반목’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유야 어찌됐던 이 단어를 정말 기다리고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는 이 무리들은 정말 광주에서 5월과 관련한 ‘분열’이 이뤄진다면 온갖 추하고 더러운 것들을 쏟아낼 것이 자명하다. 부디 전우원에게 보여준 그 따뜻함과 포용을 우리 내부에서도 다시 한번 이뤄주길 간원한다. 여기는 광주, 서럽고 가슴 아리지만 따뜻한 봄의 도시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