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관식> 영산강 명소의 시비(詩碑)에 대한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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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관식> 영산강 명소의 시비(詩碑)에 대한 제안
김관식 시인·문학평론가
  • 입력 : 2023. 05.01(월) 14:49
김관식 시인
영산강은 우리나라 4대강으로 호남의 삶의 터전으로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자연유산이다. 백제시대 왕인박사가 영산강의 지류인 영암 구림의 상대포에서 배를 타고 일본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해주었는가 하면, 고대사회에서 중세사회로 전환기인 신라말 고려 초에 왕건이 영산강을 본거지로 고려를 세우는데 기초를 다졌고, 완사천에서 장화왕후와 인연을 맺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영산강 강변에 선비들이 정자를 짓고 그곳에서 학문을 토론하고 시회를 열며 풍류를 즐겼다. 영산강변에만 정자가 923개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까지 남아있는 누정은 395개다. 그 중 나주지역은 영산강의 중류에 위치하고 있는 관계로 165개가 남아있으며, 이런 명소의 정자마다 그 당시 시인들의 시가 목판에 새겨져 남아있다.

그래서 영산강변의 정자 문화는 신숙주, 기대승, 김인후, 임제, 송강 정철, 면앙정 송순, 소쇄원의 양산보, 나위소 등 수많은 학자와 시인들을 배출해낸 산실이었다.

그런데 이런 전통 문화를 관계기관의 무지로 영산강 명소 보존 사업을 시행하면서 혹시나 단절시키고 왜곡시켜놓았는지 만약 그렇다면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영산강변에는 이제는 사라진 나루터와 수려한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명소로 8경이 있다. 제1경은 저녁노을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영산석조, 제2경은 몽탄노적(夢灘盧笛) 느러지와 한호 임연이 세운 식영정, 제3경은 1530년 함평이씨 석관(石串) 이진충이 건립했다는 석관귀범(石串歸帆)의 나루터와 석관정과 건너편의 금강정, 제4경은 죽산보로 인근 강변에 사암나루가 있었고, 퇴계 선생과 ‘사단칠정론’을 논했던 조선시대 대학자 고봉 기대승을 비롯해서 면앙정 송순, 사암 박순, 석천 임억령 등 인근 선비들의 출입이 잦았던 다시의 장춘정(藏春亭), 기묘사화로 조광조와 뜻을 같이한 나주 출신 선비들 11인이 고향으로 돌아와 영산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지은 금사정(錦社亭), 제5경 금성상운으로 나주평야와 영산포 등대, 윤선도와 교분이 두터웠고,강호구가(江湖九歌)를 지은 나위소가 고향인 택촌에 세운 수운정(岫雲亭), 제6경으로 승촌보, 제7경 광주 풍영정, 제8경은 담양 대나무 숲이 명소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런 명소에 그에 걸맞은 옛 선비들의 시비가 세워져 그분들의 숨결을 느끼게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영산강변의 명소 곳곳에 현존하는 향토시인들의 시들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마 향토 시인들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이었으리라 추측되지만 아직 생존한 시인의 시는 문학사적으로도 아직 검증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그런데도 향토 시인들의 시비가 세워졌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예부터 조상들은 살아있을 때 자신이나 남의 업적을 평가하거나 비석을 세우는 일을 꺼려했다. 그것은 살아있을 때 인물의 평가가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자칫 비난의 대상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버젓이 영산강의 명소 곳곳에는 국민의 형세로 현존하거나 최근에 살았던 향토시인들의 시들을 시비에 새겨 놓은 것은 전통의 단절을 초래하지나 않았나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영산강 명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영산강의 명소에 걸맞은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영산강변의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시회를 열며 풍류를 즐기던 누정문학을 산실되었던 명소에 그 옛날 선비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그분들의 시를 시비로 감상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는가하는 생각이다.

영산강 명소뿐만 아니라 호남은 물론 우리나라 곳곳에도 문학사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현재 생존하고 있는 문인의 시를 돌에 새겨놓은 일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자신의 시를 시비에 새겨 대대로 알리고 싶은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이거나 당시 시비를 세운 관계기관의 독단적인 문화행정으로 빚어진 일이건 우리고장의 이미지를 널리 알리겠다는 목적은 같을 것이다.

영산강 명소는 영산강 문화를 대표하는 인물의 시가 시비로 건립되어야 한다. 혹시라도 도민의 혈세로 이런 무모한 시비를 돌에 새겨진 명소가 있다면 우리 고장 영산강 명소를 찾은 이들이 석연치 않는 느낌을 갖거나, 기분이 언짢아져서는 안 될 것이다. 즐겁게 명소의 경치를 감상하고 우리 고장의 선비들의 얼을 본받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영산강변은 예부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들이 많이 배출한 곳이다. 명소를 찾는 분들이 옛 선비들의 풍류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그분들의 숨길을 느껴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기 아니겠는가?

영산강 명소에 시비가 세워진 곳의 시비를 다음과 같이 교체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린다.

제1경에 있는 시비는 무안 출생의 초의선사의 시나 식영정의 한호 임연의 시로, 제3경에 석관귀범(石串歸帆)의 뒷면에는 임제 선생의 시로, 죽산보에 있는 시비는 나위소의 강호구가, 장춘정을 세운 유춘정의 시나 금사정 11인의 선비의 시로, 승촌보에 있는 현존인물의 시는 신숙주 선생의 시비로 교체했으면 좋겠다.

강의 지류 도랑에 미꾸라지, 피라미, 빠가사리나 블루길, 베스 같은 외래어종이 현재 살고 있다고 해서 영산강의 생태계를 대표하는어종이라고 내세워서야 쓰겠는가? 영산강의 대표어종은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영산강의 전설까지 낳은 잉어가 아니겠는가?

하루 빨리 영산강 누정문화의 산실이 되어온 정자를 찾아온 관광객들에게 옛 선비들의 풍류문화를 시공을 초월하여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그분들의 시비로 교체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