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 ‘담장 위를 걷는’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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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담장 위를 걷는’ 외교
박성원 편집국장
  • 입력 : 2023. 05.01(월) 18:02
박성원 국장
줄타기 고수가 아닌 이상, 높은 담장 위를 걷는 일은 누구에게나 위험천만한 일이다. 국가 간의 외교를 흔히 ‘담장 위를 걷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자기 나라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을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소리 없는 전쟁이 펼쳐지는 외교 무대에선 자칫 한 발짝만 헛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어서다. 대한민국이 처한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북한과 군사적 적대관계 속에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일본·중국·러시아 간의 대립이 격화되는 국제 정세까지 맞물려 위기의 강도는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동안 한국의 외교는 미국과 동맹을 지키면서도 중국·러시아의 반발은 피하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사실상 폐기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 전 가진 외신 인터뷰를 통해 우크라이나 군사지원 가능성을 처음 시사했고, 타이완 문제에 대해서도 ‘힘에 의한 현상변경에 절대 반대한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대만을 통일 대상으로 보는 중국을 겨냥한 민감한 발언에 두 나라 역시 거칠게 대응했다. 미국 국빈 방문을 앞두고 바이든 대통령이 원하는 말을 통해 더 많은 성과를 거두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벼랑 끝 외교 전쟁에선 위태롭고 무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반도 긴장 고조와 경제·안보 복합위기 심화 속에 주변국을 자극시키는 발언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 들어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는다’는 외교 원칙이 무너지는 가운데 ‘국가 이익을 최우선한다’는 외교 목표도 흔들리고 있다. 한일정상회담이 대표 사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해법을 놓고 윤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며 일본 쪽 요구를 전부 수용했지만, 일본의 사죄와 배상 참여 등 호응 조치는 없었다. 정부는 얻은 게 하나 없는 ‘굴욕 외교’라는 국민적 비판 속에 일본의 ‘처분’만 바라보는 딱한 처지에 놓였다.

한미정상회담에선 한국 기업에 불리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에 대한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122명의 역대 최대 규모 경제사절단을 꾸렸음에도 성과를 거두지 못해 ‘빈손 외교’라는 혹평을 듣고 있다. 자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한 외교는 그 자체로 실패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경제를 최우선하는 국익 중심 외교로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