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아침을 열며·이승현> 5월의 기념일들을 기념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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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아침을 열며·이승현> 5월의 기념일들을 기념하는 방법
이승현 강진 백운동 원림 동주
  • 입력 : 2023. 05.10(수) 16:20
이승현 동주
하늘이 항상 파랗지만은 않다는 것을 포고 하듯 먹구름이 뒤덮더니 많은 비가 내렸다. 백운동 원림 계곡에도 오랜만에 크고 작은 폭포가 굽이치고 부서지며 거침없이 쏟아져 흐른다.

그 많은 날 중에 하필이면 어린이날 비가 올 게 뭐람. 아이들은 삼백예순 날 기다리던 소풍을 망쳤다. 최근에 생계의 어려움을 이유로 어린 자녀의 생명을 끊어버리는 젊은 부모들이 많더니 아무런 허물없이 떠난 아이들을 애도하려는지 며칠간 비가 계속 내렸다. 한편에서는 가진 자들의 자식사랑이 지나쳐 화를 입은 공직자나 정치인들이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는데 자식의 허물도 부모의 허물이 되기 때문이니 부모 노릇하기가 쉽지 않다.

나 또한 일과 직장에 우선하다 보니 평소에 같이 놀아주고 살갑게 보살피지 못해 아이들과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성인이 돼서도 부자지간은 여전히 겉돈다. 아버지로서 가장 후회되는 허물이다. 이제 와서 같이 하려고 해도 이런저런 핑계로 피하니 집이라도 사주고 가게라도 차려주면 좋아질까 싶지만 경제력이 없다 보니 가난이란 허물까지 보태게 된다.

달력을 보니 5월은 유독 기념일이 많다. 8일은 어버이날이었는데 부모님께는 효도를 다 했는가?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정성을 다하지 못했다. 명절이나 생신 때 의무감으로 들여다보거나 손자를 키워줄 때 생활비를 보태는 것이 고작이었다. 막내가 결혼을 못 해 늘 가슴 아파하며 부모를 대신해 장남에게 맡기고 간다고 몇 번이고 부탁하시고 돌아가셨지만 아직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핸드폰 배경화면에 자식이나 손자 사진은 올려놓지만 부모님 사진은 없다. 주섬주섬 앨범에서 부모님 사진을 찾아 조그만 액자에 담아 책상에 놓았다. 은혜를 잊어 가는 자식의 허물이 크다. 내 자식들에게 매일이 어버이날인 것처럼 하라고 훈계해 놓고 나를 돌아보니 참으로 염치가 없다.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산꼭대기 동네에 남의 집, 방 한 칸 얻어 서울살이를 시작했을 때도 꿈을 잃지 않았고 직장을 중도에 사직하게 돼 생계가 막막했을 때도 한동안 가장노릇을 해주었으며, 투자 실패로 한 때 경제적 파탄에 처했지만 이겨낸 것도 아내 덕분이었다. 변변찮은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너무나 많은 허물이 있었음에도 고쳐주고 채워주고 키워주었다.

지나간 1일은 근로자의 날이었는데 작장생활 하는 동안 영업실적을 높이려 사원들을 휴일에도 끌어내 닦달하고, 고객에게 필요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상품을 판매해 손해를 끼쳤다.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원들을 강제로 내 보내는 악역을 담당한 허물은 두고두고 씻을 길이 없다. 출세해 보겠다고 버둥거린 어리석음의 허물이다. 생각해 보니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허물을 짓고 벗어버리지도 못했다.

매미는 스스로 등골을 찢고 허물을 벗어 완전한 생명체가 된다. 그래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매미를 영물로 친다. 매미 5덕이라 해서 매미의 곧게 뻗은 입이 갓끈과 같아 학문에 뜻을 둔 선비와 같고, 깨끗한 이슬과 수액만 먹으니 청렴하고, 사람이 힘들게 지은 곡식을 해치지 않으니 염치가 있고, 집을 따로 짓지 않으니 검소하고, 여름에 왔다 가을이 되면 떠날 줄을 아니 신덕(信德)이 있다고 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정사를 볼 때 머리에 쓰던 익선관(翼善冠)은 매미의 날개를 본뜬 것이며 매미의 오덕(五德)을 생각하며 백성을 다스리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매미는 다섯 번의 허물을 벗는다고 하는데 사람들은 살면서 허물만 쌓고 벗을 줄 모르니 매미의 덕은 쫓아갈 수도 없다. 사람의 잘못이나 죄를 허물이라 하고 매미가 탈을 벗어 던지는 것도 허물이라고 하니 두 단어가 동음인 것이 의미심장하다. 지은 허물이 쌓여 마치 다른 사람처럼 되어 버린 자신의 탈을 스스로 벗어내고 온전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새긴다. 보통사람들의 허물은 대단한 중죄라기보다는 일상적인 것들이고 누구나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것이 많다. 효도도 그렇고 부부간의 신의도 그렇고 기업가나 공무원, 의사 같은 직업인으로서 윤리도 그렇다. 허물은 순전히 자기 몫이다. 내밀한 것들이 많아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것이라 마음만 먹는다면 많은 허물을 짓지 않을 수도 있고 스스로 벗어버릴 수도 있다.

내 허물을 벗는 방법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해 본래 자신의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관심법 (불교에서의 관심법은 남의 마음을 훔쳐보는 것이 아님)을 부지런히 수행하는 것이고, 남의 허물을 벗겨 주는 방법은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다. 매년 맞는 기념일이지만 이번엔 가장 사랑하고 존중해야할 사람에게 소홀하고, 함부로 하지 않기, 서로의 허물을 사과하고 용서하기, 그리고 같은 허물을 반복하지 않는 것으로 기념해 본다.

21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이 많은 허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뉘우치지 않고 허물을 그 마음에 머물게 하면 죄가 몸에 와 닿는 것이 마치 냇물이 바다에 들어가 점점 깊어지고 넓어지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일 사람이 허물임을 알아 악함을 고쳐 선함을 행한다면 죄가 스스로 소멸하는 것이 마치 병자가 땀을 내고 점차 회복되어 가는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