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김효비야> ‘모자 안녕?’ 그리고 엄마의 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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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김효비야> ‘모자 안녕?’ 그리고 엄마의 남친
김효비야 인문학 강사·광주문인협회 부회장
  • 입력 : 2023. 05.11(목) 10:22
김효비야 부회장
 붉은 신호등이 켜지고 우린 잠시 자동차 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애써 평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마침, 간판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모자, 안녕?’. 마치 어떤 예술 작품의 제목처럼 강렬한 두개의 낱말은 검정 배경화면 속 암흑의 세계에서 솟아난 부조 조각처럼 도드라졌다. 그 때, 둘이 똑같은 모자를 쓴 두 여인이 서로 마주보며 그 간판을 배경으로 셀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사이드 미러 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여인들은 마치 어떤 의식을 치룬 듯 신비한 여운을 남기고 멀어졌다.
 우리는 얼마 전, 친구의 남편이 암 진단을 받고 입원하고 있는 도시근교의 병원으로 가고 있던 길이었다. 평소 건강염려증이 살짝 엿보이는 친구는 남편보다 오히려 세상의 모든 불행을 혼자 당한 듯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어 휘청거리고 있었다. 여태껏 석고상처럼 침묵을 옥죄고 있던 그녀가 입을 뗐다. “아까 얼굴이 핼쑥한 여자는 말기 암환자일거야, 그리고 딸인 것 같아.” 그랬다. 우린 병원에 들어가서야 그녀들과 우연히 마주치고 항암치료를 하면서 모자를 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모자, 안녕?’, 다시 그 간판을 생각하며 ‘안녕’이라는 단어에 숨은 역설의 미학으로 상념에 잠겼다. 예측하지 못한 만남이지만 필연처럼 운명을 사랑하자는 무언의 약속 같은 인사일까. 아님, 예감하고 있던 헤어짐을 위하여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하자는 결연한 인사일까.
 뜻밖에 그 ‘모자’는 운명의 상징처럼 ‘안녕’을 갈무리하는 필요충분인 조건일 것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문득 오래 전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우린 똑같이 모자를 좋아했다. 가끔 엄마에게 어울리는 모자를 선물하긴 했지만 당신의 미적인 감각에는 한참 미치진 못했던 것이다. 끝내 당신이 돌아가실 때까지 한 번도 흡족한 모자를 사드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결코 가볍지 않은 ‘모자, 안녕?’의 의미도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한지를 묻는 의문형의 문장이었다.
 그런 모자를 보니 ‘엄마의 남친’이 생각난다. 엄마는 낙상사고를 당해 돌아가실 때까지 노인병원에 계셨다. 보행 보조기구에 의지하여 겨우 물리치료실에 가서 재활훈련을 하거나 인지정서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고 활력적인 일상을 돕는 생활이지만 친화력과 에너지 넘치는 엄마는 집단의 인정을 최우선시하는 폐쇄적이고 규격화된 병원 생활에 점점 적응력이 떨어지더니 퇴원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체활동이 부자연스럽고 위험요소가 상존하는 낙상환자가 막상 편안하게 계실 곳은 없었다. 차일피일 엄마를 방치하다시피 하는데,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존재는 경도치매로 입원을 하신 할아버지였다. 일찍 상처하고 홀로 자식들 뒷바라지도 훌륭하게 하셨다는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할아버지는 마치 엄마를 사랑스러운 여동생처럼 일거수일투족을 챙기고 도와주시면서 엄마도 다시 병원생활에 활력을 되찾았다.
 때로는 분홍색 가디건을 걸치고 소녀처럼 거울을 자주 보셨다. 물론 엄마는 그 때도 리본이 달린 귀여운 모자를 꼭 쓰셨다. 필자가 직장에서 퇴근길에 들려가는 그 병원에서는 직원들과 다른 환자들의 우스개 섞인 소문으로 술렁거리고 핑크빛 분위기가 감돌았다. 엄마는 점점 재활치료 효과가 나타나고 할아버지는 인지력이 좋아져서 콧노래를 부르며 인기스타가 되셨다. 두 분은 환자가 아닌 단짝처럼 지내면서 서로의 버팀목이 되었다.
 그러나 주홍에서 보라로 물들어가는 황혼녘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병원비를 계속 감당하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사정으로 퇴원을 하고 말았다. 우리나라 노인복지의 현장에서 그 분을 위한 배려나 지원은 요원한 현실이었다. 질병, 빈곤, 고독, 무위는 노인문제의 4고(苦)라고 하는데, 할아버지가 총체적인 사례의 주인공이 되신 듯했다. 물론 그 뒤로 할아버지는 흔히 상상하는 통속적인 사랑이 아닌 더 순수하고 애틋한 연민으로 엄마를 찾아오시고 정서적인 지원자 역할을 맡아주시기도 했지만 다른 질병 상태가 악화되어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불현듯 그 분의 훗날의 소식이 궁금해진다. 혹시 아직 살아계신다면 ‘엄마의 남친’으로써 생애 마지막까지 고귀한 인간애와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주신 그 분의 가슴에 분홍빛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