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의정단상·이명노> 연수, 갈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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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의정단상·이명노> 연수, 갈 만도 하다
이명노 광주시의원
  • 입력 : 2023. 05.11(목) 14:12
이명노 시의원
의정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도, 의원으로 역할을 시작한 뒤에도 가장 못마땅했던 것이 의원들의 ‘국외 연수’였다. 대학생 이명노의 입장, 시민 이명노의 입장에서 바라본 의정 연수는 모두 외유성으로 보였고, 우리에게 돌아올 수 있는 예산이 ‘왜 이들의 휴양을 위해 사용되는가’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안에서 배움을 얻어오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생각은 그 배움마저도 달갑게 보이지 않았다. 대학생들은 연수의 배움과 경험을 위해 수개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으기 때문이다.

그렇게 8개월간 꾸역꾸역 연수를 가지 않고 참았다. 어리석은 고집에 가까울 정도로 동료의원들과 함께 가는 국외 연수도 마다했다. 그러던 임기 9개월 차, 3월6일부터 9일까지 3박4일간 첫 의정 연수길에 오르게 됐다.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 관련한 선진지 견학 목적으로 다녀온 일본 연수였다. 사실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을 때까지도 이 연수 역시 여느 연수와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다.

그럼에도 가고자 큰 결심을 하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목적이 분명했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조례가 전국 최초로 만들어진 곳이 광주였고 그런 광주에 지원센터가 설립됐다. 그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는 운영위원회를 통해 주요한 결정을 하는데, 필자가 광주시의회 의원 대표로,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의회에서 담당 분야의 대표 의원이 내용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져서는 안 될 일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연수 일정이 구체적이고 투명했다는 것이다. 센터와 시청 주무 부서에서 가져온 해당 연수의 일정표는 가히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3박4일 일정 중 이동하는 날을 제외하고 7개 기관을 방문하며 놀 시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이유는 센터와 시청, 시의회가 함께 가는 연수라는 것이었다. 그중 한 조직에서만 다녀오는 것보다 함께 다녀와 공감한 내용을 통해 만들 수 있는 변화들이 더 가시적이라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고집이 꺾여 연수를 다녀왔다. 숨겨 다녀오고 싶지 않아 SNS에 연수 일정서와 동선도 낱낱이 공개하고 출발했다.

다녀와 본 해외라고는 대학 다니며 인턴을 해 번 돈으로 다녀온 인도 사막 종주, 배낭여행이 전부였던 초심자의 연수길이었다. 모든 시간, 모든 과정이 낯설고 새로웠다. 새로운 곳에서 듣는 새로운 사람들의 언어, 새로운 거리와 새로운 온도. 가까운 일본이었지만 낯선 감정이 곤두서 거리와 골목, 나무 한 그루와 건물 하나까지 유심히 지켜보게 만들었다. 그 곤두선 감각으로 유심히 지켜본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고 우리나라의 모든 것들과 비교·분석하기에 이르렀다.

연수에서는 환경과 안전, 복지에 대한 시스템을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자전거도로와 구분된 보행자도로, 건물 외벽과 공단 등에 분할돼 마련된 녹지, 불법주정차에 대응하는 일본의 갓길 주차 시스템, 재난과 재해에 대비한 인프라 등 많은 부분이 벤치마킹할 가치가 있었다. 일본의 수도인 도쿄의 도청소재지 신주쿠에 숙소를 두고 일정을 소화했지만 출퇴근길 교통체증이 없었다.

물론 참고할 부분만큼 아쉬운 지점도 많았다. 정치구조와 경제, 디지털화되지 않고 신속하지 못한 행정력에서 오는 치안 문제와 수십 년간 변동 없는 물가, 경제정책 등 우리나라의 여행객이 연일 급증하는 이유를 반증하듯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많았다.

마침 통일지방선거를 앞둔 일본의 선거제도와 정치구조를 공부할 수도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면 곧장 도쿄도의회 도정질문 생중계를 파파고로 번역하며 보고 일본 의회의 구조를 공부할 수 있었다. 동적이지 않고 참여가 적은 일본 정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사회와 경제, 국민들에게 전해진 부정적인 영향을 볼 수 있었다.

연수의 목적도 확실하게 챙겼다. 방문한 기관에서는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라는 생각으로 귀담아듣고 적으며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요청해 챙겨 돌아왔다. 은둔형외톨이 지원 정책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할 수 있었고 우리 센터에 적용하고 행정에서 유의할 부분을 인지할 수 있었다. 통역이 필요하겠지만 현지 공직자, 시설 담당자들과 연락처도 교환해 언제든 자문과 교류를 할 기회가 열렸다.

이렇게 식견을 넓힐 수 있게끔 기회를 만들어 주신 시민들께 감사했다. 생애 첫 직장이 시의회이자 재산 순위 꼴등인 빈곤한 의원에게 폭넓은 경험과 공부를 할 수 있는 여유란 없었다. 물론 이 배움은 필자 개인이 아닌 시의회와 광주의 배움으로 소화하라는 뜻임을 알지만 인간 이명노로서도 더 성장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연수에서 공부하고 경험한 모든 것을 귀감이나 반면교사로 의정활동에 활용하리라 다짐했다.

돌아와 그동안 우리 정치의 연수 사례들을 조사해 봤다. 물론 외유성 연수도 많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행태를 보인 정치인도 많았다. 모든 연수가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연수가 나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선출직 공직자가 돼 모든 행동과 생각을 곧 시민들의 의사에 맞춰 살고있는 입장에서 다녀온 연수의 모든 시간은 진취적인 아이디어 생산의 연속이었다.

필자는 좋은 연수를 만드는 길을 고민했다. 주권자, 정치인 모두 협력할 필요가 있다. 먼저 정치인은 본인의 무책임한 외유성 연수가 모든 정치인을 일반화하고 뽑아주신 주권자를 욕 먹이는 일이라는 걸 염두에 둬야 한다. 주권자의 입장에서는 내 지역 의원와 단체장이 연수로 배움을 얻고 우리 지역과 나라에 더 신선한 정책을 적용하길 바란다면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져주시라 부탁하고 싶다. 적어도 부끄러워서라도 놀러 가는 일정을 만들지는 않을 테니.

막상 공부할 마음으로 연수를 다녀오니, 갈 가치는 충분하다. 앞으로도 연수는 딱 이렇게 활용하며 언젠가 다녀온 수기를 책으로 엮어보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