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5·18 43주년> 계엄군 만행에 도민 ‘분노’… 항쟁의 불길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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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5·18 43주년> 계엄군 만행에 도민 ‘분노’… 항쟁의 불길 이어져
5·18 사적지 - 전남
전남 8개 시·군 29곳 사적지
목포·영암 등 8개·시군 항쟁
광주 안병하·목포엔 이준규
영암 신북 학생들 총기탈취
2만5000발 시민군에 나눠줘
해남JC회원, 시위대 숙식제공
軍 우슬재서 난사 학생 사망
  • 입력 : 2023. 05.17(수) 14:03
  • 박간재·조진용 기자
목포시위
5·18 전남 사적지. 5·18기념재단 제공
80년 5월21일 석가탄신일 옛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을 향한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가 있던 날이다. 오후1시, 어디선가 흘러나온 애국가와 함께 금남로에서 도청으로 진출하려는 시민들을 향해 계엄군이 총을 난사했다. 우리 군대가, 우리 국민에게 총을 쏜 것이다.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병원은 부상자와 시신으로 넘쳤다.

시민들이 무장을 한 계기다. 시민들은 나와 가족, 이웃을 지키기 위해 손에 무기를 들었다. 나주, 화순, 영암 등지 경찰서와 예비군 탄약고에서 무기를 꺼냈다. 시민군이 결성됐다. 시민군과 계엄군의 공방이 시가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그날 오후 5시30분께 계엄군이 전남도청에서 물러났다. ‘해방광주’가 열렸다.

계엄군의 만행과 광주의 참상은 전남 곳곳으로 전해졌다. 당시 광주는 전남도 도청소재지였다. 광주와 전남은 하나의 생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시군에서 시위가 일어나고 일부 지역민은 광주로 가 항쟁에 참여했다.
목포역
목포중앙교회 옛터

●목포·나주·해남·영암 등 8개 시·군 29곳에 사적지

광주와 함께 민주주의를 절규했던 전남 도내에도 사적지가 지정돼 있다. 목포, 나주, 화순, 강진, 해남, 영암, 무안, 함평 등 8개 시·군 29곳이다. 목포에는 목포역, 중앙공설시장 옛터, 동아약국과 안철 선생 집터, 중앙교회 옛터 등 5곳이 사적지로 지정됐다. 나주에는 옛 금성파출소 예비군 무기고, 남고문광장, 영강삼거리 등 5곳이 지정됐다. 화순엔 화순군청 앞 일대, 너릿재 등 3곳이다. 강진에는 강진읍교회, 강진농고 등 2곳이 있다. 해남에는 우슬재, 해남군청 앞 광장, 상등리 국도변 등 6곳이 지정됐다. 영암군도 영암읍삼거리, 시종파출소, 도포 상리제 등 6곳이다. 무안버스터미널, 학교버스터미널과 학교사거리 등 무안과 함평에도 각 1곳이 지정됐다.

80년 5월 목포에 광주의 상황이 바로 전달됐다. 김대중 연행 소식도 전해지면서 시민들이 동요했다. 5월21일 계엄군 집단 발포 이후 광주의 차량시위대가 목포에 도착했다. 약사 안철 집에선 재야활동가들이 모여 민주화시민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투쟁위원회가 항쟁을 이끌었다.
목포헌병대 옛터
나주공고

●광주-홍남순 변호사·목포-안철 약사

목포항쟁은 광주와 비슷하게 전개됐다. 광주에 지휘본부 격인 전남도청이 있었다면 목포에는 목포역이 그 역할을 했다. 당시 목포역사 2층에 항쟁지도부와 상황실을 갖춘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가 설치됐다. 목포역 광장은 날마다 수만 명이 모여 궐기대회를 여는 마당이 됐다. 중앙공설시장 상인들은 시위대에 김밥과 도시락, 음료 등을 제공하며 격려했다. 광주의 대인시장과 양동시장의 역할을 했다.

목포중앙교회 옛터는 유신시대부터 양심적인 종교인들이 모여 시국을 걱정하던 곳이다. 재야인사와 목사들이 모인 목포시민민주투쟁위원회를 열고 결의문 채택하며 범시민 투쟁을 결의한 공간이다.

광주에 고 홍남순 변호사가 있었다면 목포의 민주화운동엔 안철이 있었다. 안철은 당시 동아약국을 운영하던 약사이자 교회 장로였다. 시민투쟁위원장을 맡아 목포항쟁을 이끌었다.

해남읍교회
영암 상리제

●전남도경-안병하 경찰국장, 목포-이준규 경찰서장

전남도경에 안병하 경찰국장이 있었다면, 목포엔 이준규 경찰서장이 있었다. 이 서장은 신군부의 강경진압 명령을 거부했다. 나중에 신군부에 의해 파면 당하고 계엄사령부에 구속돼 고문도 받았다.

광주의 항쟁은 5월 27일 새벽, 계엄군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면서 끝났다. 목포는 광주보다도 하루 더 28일 새벽까지 진행됐다. 27일 밤 목포역광장에서 시민궐기대회가 열렸다. 시가행진도 이어졌다.

나주의 옛 금성파출소 예비군 무기고는 시민들이 많은 무기를 획득한 곳이다. 광주의 시민군이 무장을 하고 공수부대에 맞설 기회를 만들어줬다. 광주와 전남서남부를 이어주는 영강삼거리는 많은 시민군과 시위차량이 지난 곳이다. 시민들은 빵과 음료, 김밥 등을 시위대에 건네며 힘을 불어넣었다.

화순군청 앞에는 당시 경찰서와 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었다. 시위대는 경찰서에서 무기를 획득하고 군민들은 시위대에 음식을 제공하며 격려했다. 광주와 화순의 경계를 이루는 너릿재에서는 계엄군의 총격으로 시민이 사망했다. 화순광업소는 시민군의 든든한 뒷배가 된 다이너마이트를 제공했다.
목포 동아약국과 안철


영암 시종면사무

●영암 학생들, 2만5000발 실탄 획득 시민군에 전달

영암읍 사거리에서는 지역청년들이 광주시위대를 돕기 위한 성금을 모금하고 머리띠, 각목 등 시위용품을 만들었다. 박재택 등 신북지역 학생과 청년들이 도포 상리저수지 앞 도로에서 예비군 중대장으로부터 획득한 2만5000발의 실탄을 갖고 와 시민군 차량에 나눠 실어주기도 했다.

강진읍교회는 신도들을 중심으로 시위대를 지원하고 부상자 후송과 간호를 맡았다. 강진농고 학생들은 교복을 거꾸로 뒤집어 입고 시위를 하며 계엄철폐, 민주회복을 외쳤다. 남군청 앞 광장은 광주에서 내려온 시위대와 군민이 한데 모여 신군부의 내란을 성토하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버스를 탄 시위대는 해남경찰서와 완도경찰서에서 M1과 칼빈 소총을 획득했다. 해남읍 백야리에 있는 향토사단에도 찾아가 총기를 내줄 것도 요구했다.

해남 대흥사 앞 집단시설지구에서는 차량 7~8대에 나눠 탄 시위대가 해남JC 회원들의 도움으로 숙식을 해결했다. 광주여관, 안흥여관, 유선여관과 상인들은 시위대에 김밥과 음료를 내어주며 환대했다. 해남중학교와 해남읍교회에서도 주민들이 시위대에 식사와 음료를 제공했다.

해남 우슬재에선 31사단 93연대 2대대가 23일 오전, 우슬재를 넘어 읍내로 가려던 트럭에 총을 쏴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트럭에 타고 있던 나주고 학생 김귀환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강석신은 실명했다. 해남읍과 마산면의 경계인 상등리 국도변에서도 시위대가 군인들의 총격을 받았다. 해남고 학생 정상덕과 김병용이 부상을 당했다. 정상덕은 이듬해에 사망했다.
박간재·조진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