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서석대> 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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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전남일보]서석대> 막장
김성수 정치부장
  • 입력 : 2023. 06.25(일) 16:39
김성수 부장
‘막장’

한때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가 하나의 ‘장르’처럼 유행한 적이 있다. 막장은 국어사전상의 의미로는 ‘끝장’의 잘못된 표기로 나온다. 사실 ‘막장’은 탄광의 맨 끝부분이나 그곳에서 일하는 광부를 칭하는 말이다.

원전, 신재생 등 에너지 정책 이전의 우리나라 에너지 산업의 주축은 ‘석탄’이었다. 1960~1980년대 광업은 그야말로 붐이었다. 광부 수도 많고 채탄량도 많아 세계 2위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 시절 광부들은 지하 수십, 수백미터에서 전등 하나에 의지해서 지하 갱도로 내려간 산업 전사들이었다. 채굴 도중 무너질 위험이 높은 곳인데다가 산소가 부족해, 거의 죽기 직전 상황까지 갔다는 경험담도 많다.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라도 나면 그야말로 생매장이나 다름없었다. 무너진 갱 속에서 광부의 생존소식은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였다.

산업화로 ‘막장’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전망이다. 118년을 이어온 대한석탄공사 화순광업소(화순탄광)이 오는 30일 폐광된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2021년 12월 석탄산업 장기 계획에 따라,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화순탄광을 폐광하기로 결정했다.

총면적 30.7㎢, 갱도 길이 80㎞의 화순탄광은 산업화 시기 정부의 석탄·광업육성 정책에 따라 무연탄을 생산해 왔다.

호황기를 누리던 1960년대에는 강원 삼척·영월· 태백 탄광 등과 함께 국내 4대 탄광으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1989년에는 근로자 1600여명, 연간 70만5000톤의 석탄을 생산하며 최대 정점을 찍기도 했다.

폐광이 결정되면서 화순탄광 소속 근로자 270명은 실직 위기에 놓여있다. 화순군은 조선업계 등으로 이직할 수 있도록 지원중이다. 근로자 대부분이 용접·절단·도색 기술과 면허를 갖고 있어 관련 산업 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광부 출신 이청리 시인은 광부의 삶을 ‘인간두더지’, ‘검은 쥐’ 등으로 표현했다. 광부는 지상의 하늘과 막장의 하늘이라는 두 개의 하늘을 이고 살아간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막장으로 가는 길목엔 이런 글귀가 써 있다. “아빠! 오늘도 무사히.”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갱도에서 석탄을 캐온 광부들이 막장이 아닌 또 다른 산업현장에 재취업, ‘제 2의 인생’을 성공적으로 이어가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