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 기획특집>“친환경 농산물, 미래세대 안전 먹을거리로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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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 기획특집>“친환경 농산물, 미래세대 안전 먹을거리로 최고죠”
전남을 농촌융복합산업 실리콘밸리로 만들자 12)사과와인 생산 프랑스 뤼엘농장
2021년 마크롱 佛대통령 찾아와
생물다양성·탄소중립 성과 청취
친환경사과와인 등 30여종 판매
화석연료 대신 억새로 겨울난방
농촌 관광, 멋·경관·볼품 있어야
  • 입력 : 2023. 08.16(수) 14:15
  • 글·사진=파리 박간재 기자
미쉘 갈멜 뤼엘농장 대표
더 빠르게, 더 많이, 더 싼값으로 돈을 벌려는 인간의 욕망에 반박하며 친환경농법을 통한 사과와인 등을 생산하는 농민이 있다. 프랑스 뤼엘농장 미쉘 갈멜 대표다. 욕망으로 만들어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연의 순리를 받들며 시간의 흐름에 따르고 있다. 비료·농약 대신 자연의 힘을 활용하고 있으며 열매 맺히는 시기를 서두르지 않고 생태계와 인간의 먹을거리를 만들어 내며 농업철학을 지켜가고 있는 농삿꾼이다. 그는 화석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겨울철 연료도 인근 밭에 심은 억새로 대신하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막겠다는 생각에서다.

파리에서 노르망디 외르(Eure)주 틸리(Tilly)에 있는 ‘뤼엘농장(La Ferme des Ruelles)’으로 간다. 유럽 특유의 지평선이 보이는 평야와 밀, 옥수수, 대파밭이 차창 밖으로 펼쳐진다.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은 ‘작물을 재배하고 나면 완벽한 경관 조경을 위해 농사에 사용했던 농기계는 반드시 창고에 보관해야 한다’는 법까지 제정돼 있다. 그래서였던가 보다. 유럽 어디를 가도 들녘 풍경이 마치 우편엽서 같은 분위기였음을.

농장으로 들어가니 중세 유럽시대 봉건 영주가 살았을 법한 웅장한 위용의 성채가 보인다. 뤼엘농장 사업장이다. 뒤편으로 사과농장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규모는 무려 60㏊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훤칠한 외모의 갈멜 대표가 반갑게 인사한다. 뤼엘농장의 선진농법을 한국에 알리기 위해 왔다고 했더니 시음용 와인과 달달한 토마토 몇톨을 안주로 내온다.

마크롱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가운데)

●2021년 마크롱 대통령 방문

“미쉘 갈멜 대표인가요?”

지난 2021년 1월. 갈멜 대표의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가 떴다. “네 제가 갈멜 대표입니다” “저는 프랑스 정부 농림부장관입니다. 대통령을 모시고 그 농장을 한번 찾아가고 싶습니다.”

그해 1월 파리에서 친환경 관련 국제회의가 예정돼 있었다. 프랑스 정부는 국제회의를 앞두고 프랑스 친환경 농업 선도업체를 찾던 중이었다. 농림부장관이 각종 포털 등을 검색해 보다 뤼엘농장을 발견, 갈멜 대표에 연락을 한 것. 마크롱 대통령은 전세계 친환경 관계자들과 만나기 전 바르바라 퐁필리 환경부 장관, 줄리앙 드노르망디 농식품부 장관 등과 함께 생물다양성과 탄소 관리 성과·현장 목소리를 듣기 위해 찾아왔다. 2시간 예정됐던 면담이 2시간 더 얘기를 나눈 뒤 돌아갔다.

뤼엘농장은 친환경적 농법으로 운영된다. 화학비료나 화석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대량생산이 아닌 소품종 고품질 생산이며 대농이 아닌 가족농 형태다. 미래를 생각하며 느리게 사는 삶을 추구하고 있다. 마을 주민과 협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야생사과로 얻는 사과와인과 야채, 과일 등 30여 종 제품만을 생산, 판매한다.

갈멜 대표와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제품을 구매하러 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농장에서 서식하는 85종의 동물들.

● 대량생산 대신 친환경 농업 추구

갈멜 대표가 친환경 농업을 고집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전남으로 치자면 수천마지기 밭을 소유한 만석꾼 수준인데 대규모 농기계 대신 기계도 다 버리고 소규모, 그것도 가족농만 고집한다니.

“이 만큼의 농장이면 대량생산에 해외수출도 꿈꿀 법 한데 왜 욕심을 내지 않는지요” “경제적인 부분보다 자연친화적인 농법으로 미래세대에게 깨끗한 농토를 물려주고 싶기 때문이죠. 철저하게 화학비료, 화석에너지를 배격하고 있습니다.”

그는 각종 퇴비 등을 살포한 뒤 자연적으로 땅이 비옥해 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가로 형태로 파놨던 밭고랑을 2~3년에 한번 세로 형태로 내며 물의 흐름을 바꿔준다. 그의 농삿법이 초창기 마을 주민들에게 웃음거리가 된 적 있다. 화학비료, 농약을 사용하지 않기에 그의 농장에는 각종 쥐나 새, 토끼 등이 천국을 이뤘다. 하지만 풍성한 먹을거리가 많은 이 곳에 독수리, 부엉이, 올빼미, 고양이 등이 출현해 자연스럽게 생태계 피라미드가 형성됐다. 땅속에는 지렁이가 많아 기름진 농토로 바뀌었다. 자연이 정화작용을 통해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있음을 증명해 준 사례다.

“대량생산 체제는 20~30년은 높은 소득과 경제적인 이득은 취할 수 있죠. 하지만 비료·농약 과다사용으로 점차 생산량이 줄게 됩니다. 반면 친환경농업은 소량생산 일지라도 꾸준히 수준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그 부분에 착안했다고 보면 됩니다.”

44도짜리 사과와인을 시음 한 갈멜 대표 발음이 살짝 꼬인다. 안 그래도 꼬여 들리는 불어가 더 꼬부랑으로 들린다.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유머도 던진다. “최근 파리에서 대규모 노동자 파업이 있었지만 여기선 파업이란 없답니다. 노동자들 대신 지렁이들이 열심히 땅을 파고 흙을 먹느라 데모할 틈이 없거든요.”

미쉘 갈멜 대표가 석유 대신 겨울철 난방용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 심어놓은 억새, 석유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44톤보다 적은 3톤의 탄소만을 배출하며 탄소 줄이기에 앞장서고 있다.

●석유 대신 억새로 난방 ‘에코시스템’

농장 앞쪽으로 나가보니 야생사과 농장이 나오고 더 앞쪽엔 키가 2m는 넘는 억새밭이 나온다. 겨울철 연료로 쓰일 땔감들이다. 억새 역시 그의 철학을 대표하는 작물이다. 석유연료에서 44톤의 이산화탄소가 나오는 반면 억새에서는 3톤 밖에 나오지 않는다. 2050년까지 탄소배출량을 더 줄일 수 있게 됐다.

매장에서 나와 교육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뤼엘농장의 과거와 현재를 지도와 현황판 등으로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놨다. 맨 앞 책상 안쪽 의자를 가리킨다. “이곳에 마크롱 대통령이 앉으셨고 제가 앞쪽에 앉아 설명을 해드렸던 곳입니다.”

그가 다시한번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프랑스는 94% 생산품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 중 34%가 운송비에 들어가죠. 반경 5000㎞ 에서 수입되는 품목들입니다. 하지만 제가 생산하는 호박즙은 반경 500m 이내에서 가져와 만든 제품이죠. 운송비 등이 없죠. 왜 소량생산으로 전환한 지 아시겠죠?”

프랑스 노르망디 외르주 틸리에 있는 뤼엘농장(대표 미쉘 갈멜)전경. 비료·화석연료 대신 철저한 친환경 농법을 통해 사과와인, 치즈, 농산물을 생산해 제조·판매하고 있으며 전세계 농촌관광 여행객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 농촌관광 방문객 쇄도 “멋·볼품 있고 잘 꾸며야”

얘기를 마치자 와이너리 창고로 안내한다. 1650년 지어진 건물이다. 어릴 적 쟁기, 삽 등 농기구를 보관했던 허름한 창고를 빼닮았다. 수백여개 오크통이 즐비하다. 벽에는 그동안 갈멜 대표가 받았던 각종 상장도 빼곡했다. 골드, 실버 등등 단어가 보이는 거 보니 유럽 주류 품평회에서 받은 상인듯 하다.

이곳이 프랑스 대표 친환경 농장으로 자리매김 된 데는 중세시대 성채 형태의 외관도 좋지만 농장이 잘 꾸며져 있으며 멋도 있고 농장 특유의 편안한 경관이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는 “농촌이 잘 살려면 반드시 멋이 있어야 하고, 잘 꾸며져 있어야 한다. 즉 볼품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1시간 이내 거리인 지베르니에 있는 인상파 화가 ‘모네의 집’도 한몫했다. 모네의 집을 방문하러 가기 전 농촌관광 코스로 사과와인을 구매하려는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우리나라도 관광지, 농촌융복합산업 업체를 묶어 관광코스로 개발해야 만이 비로소 상생할 수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주춤 했지만 한해 평균 7000명 이상이 이곳을 찾고 있다.

갈멜 대표는 지난 1992년 많은 빚과 함께 아버지에 이 농장을 물려 받았지만 후회나 아쉬움이 없다. 친환경농법을 추구하며 현재가 아닌 미래세대를 생각하겠다는 그 만의 농업철학이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농업은 경제적인 관점보다 자연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자연스런 전환을 꽤해야 할 때입니다.”
글·사진=파리 박간재 기자